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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식물] 이스라엘 이야기: 향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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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09 조회수5,392 추천수1

[이스라엘 이야기] 향백나무

힘과 권능의 상징, 성경 속 키 큰 나무의 전형



향백나무.


향백나무는 구약성경에 일흔 번 이상 언급되는 침엽수로, 천 년을 넘게 사는 장수 나무다. 성무일도에는 ‘체두르스’로 나온다. 이사야가 ‘레바논의 영광’(이사 35,2)이라고 칭송했을 만큼 향백나무는 아름답고 여러모로 유용하다. 레바논은 이스라엘 북쪽 경계 너머에 있는데, 히브리어로는 ‘하얗다’라는 뜻을 가졌다. 레바논 산맥의 고도가 높아 늘 눈으로 덮여 있는 까닭이다.

향백나무가 추운 지방에서 자라니 목질이 견고하고, 또 곧게 자라므로 건축재로 훌륭했다. 향이 짙고, 쉽게 벌레 먹거나 부패하지 않는다. 향백나무 기름은 곰팡이나 좀에서 보호하는 기능을 했다. 향백나무 진과 기름은 미라 방부제나 향수로도 쓰였다. 모세오경에는 악성 피부병에 걸렸던 사람을 정결히 할 때 향백나무와 우슬초 등을 사용하라는 율법이 나온다(레위 14,4-6).

레바논에 우거진 향백나무 숲은 이집트처럼 나무가 부족한 나라에 큰 매력이 되었다. 이집트는 천오백 년 동안이나 레바논의 침엽수들을 벌채해, 배, 신전, 성문 등 건축에 사용했다고 한다. 기원전 12세기부터는 아시리아도 레바논 목재 경쟁에 끼어들었고, 기원전 701년 유다를 공격한 산헤립 임금은 자기가 레바논의 나무들을 베어 정상까지 갔다고 떠벌린다(2열왕 19,23). 당시 레바논 숲은 페니키아 도시 국가인 티로 소유였다. 다윗은 티로와 돈독한 유대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예루살렘을 정복한 뒤(기원전 1000년경) 티로에서 수입한 향백나무로 궁전을 짓는다(2사무 5,11). 뒤이어 왕위에 오른 솔로몬도 향백나무로 성전을 봉헌하고(1열왕 5,19-24), ‘레바논 수풀 궁’이라는 궁전을 지었다(1열왕 7,2-3).

궁전과 성전 외벽은 돌로 만들지만, 내벽이나 천장은 단단하고 윤이 나는 향백나무로 꾸민 것이다(1열왕 6,15 참조). 그 뒤 향백나무는 왕실의 상징처럼 되어, 예레미야와 에제키엘은 다윗 왕실을 레바논에 견주었다(예레22,6.23 에제 17,3.12). 향백나무 건축물을 많이 보유했으니, 향백나무 숲이 우거진 레바논과 비슷해 보인 까닭이다. 바빌론 유배 뒤 제2성전을 지을 때도 향백나무가 사용되었는데(에즈 3,7), 그때는 바빌론을 꺾고 고대 근동을 제패한 페르시아가 레바논 숲의 주인이었다.

레바논 국기. 향백나무가 그려져 있다.


고대 가나안인들은 레바논의 향백나무 숲을 귀히 여겨 바알 신의 거주지로 섬기기까지 했다. 메소포타미아 판 홍수 신화인 길가메시(Gilgamesh)도 레바논의 향백나무 숲을 신들이 사는 곳으로 묘사한다(길가메시는 창세 6-9장에 나오는 노아의 대홍수와 비슷한 전설을 전하는 신화다). 성경에도 향백나무는 ‘주님의 나무’라고 불렸다(시편 104,16). 게다가 ‘하느님의 동산’ 곧 에덴동산에 자란 과실수 가운데 하나로도 기록돼 흥미롭다(에제 31,8 참조). 고대 유다 전승에 따르면, 아담과 하와 시대에는 향백나무가 열매를 맺었다고 한다. 원조들의 죄로 땅이 저주받은 뒤(창세 3,17), 생산성을 상실했다고 전한다(창세기 라바 5.9). 하지만 에제키엘은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날, 이스라엘 땅은 에덴처럼 풍요로워지고(에제 36,35) 향백나무도 열매를 맺는 기적을 보여주리라고 예언한다(에제 17,23).

향백나무는 성경에서 힘과 권능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래서 시편 92,8.12은 악인을 풀에, 의인은 야자나무와 향백나무에 견준다. 특히 향백나무는 키 큰 나무의 대표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성경은 키 큰 나무의 전형으로 향백나무를, 가장 작은 초목으로 우슬초를 언급한다(1열왕 5,13). 향백나무는 미의 상징이기도 해서, 아가 5,15은 연인을 향백나무에 비긴다. 그러나 향백나무가 늘 긍정적인 의미로 나온 것은 아니다. 큰 키와 우람한 풍채 때문에 자만을 상징하기도 했다(이사 2,13-14). 그래서 이사야는 향백나무와 참나무들 위로 주님의 날이 닥치면, 세상의 교만이 심판받으리라고 예고한다. 시편 29,4-9은 주님의 목소리가 향백나무를 부러뜨리고 사막을 뒤흔들 만큼 장엄하다고 찬양한다.

고대 근동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온 레바논의 향백나무 숲은 지금 안타깝게도 오랜 벌채 때문에 손상된 상태다. 이스라엘에서 향백나무를 키우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기후 문제로 성공하지 못했다. 만족을 모른 인간의 욕심에 경고등이 켜진 것일까? 천천히 오래 자라는 나무라 복구가 쉽지 않지만,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향백나무는 현 레바논 국기에도 장식돼, 찬란했던 옛 영광을 떠올려 준다.

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11월 8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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