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문화와 영성 (11) 유딧과 홀로페르네스
구약 성경 중에는 역사서로 분류되는 유딧기가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유딧이라는 여인은 아시리아 군대의 수장 홀로페르네스를 살해하여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한 영웅이다. 그녀는 하느님에 대한 확고한 신앙과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적장을 살해한 것이다. 그래서 유딧 이야기는 중세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의 소재가 되어 왔다. 많은 문학가, 화가, 음악가들이 유딧 이야기를 다양한 형식의 예술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특히 유딧은 중세 교회 이후에 성모 마리아의 예형으로 받아들여져 여러 화가와 조각가들이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 구약 성경의 유딧 이야기
○ 유딧기는 일종의 역사 소설, 종교 소설로서 신학적 교훈 설화이다. 유딧기의 저자는 위기에 처한 유다 백성을 구원한 평범한 여인인 유딧에 관한 교훈 이야기를 통해 시련 중에 있는 동족에게 용기를 불어 넣으려 했다. 즉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당신을 저버리지 않는 한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엄청난 위험 속에서도 당신 백성을 저버리지 않으실 것이며, 원수들의 계획을 꺾어 버리실 것이라는 확신을 표현하고 있다. 유딧기는 본래 히브리어로 저술되었을 것이며, 기원전 2세기경 어떤 그리스어 편집자가 히브리어 원문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였던 것 같다.
○ ‘유다인 여자’라는 의미를 가진 유딧에 관한 이야기의 배경은 아시리아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대장군 홀로페르네스를 보내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배툴리아 성읍의 유다인들을 공격한 사건 당시이다. 아시리아의 임금이 킬리키아와 다마스쿠스와 시리아의 온 영토와 모압 땅의 모든 주민, 암몬 자손들, 온 유다 주민 등을 처단하기 위하여 자기 다음으로 가장 높은 군대의 대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출정하게 하였다. 그는 병거대와 기병대와 정예 보병대를 조직하여 여러 부족을 굴복시킨 다음 유다의 가파른 산비탈과 마주한 도탄 곁의 이즈르엘로 가서 진을 쳤다. 이에 유다는 홀로페르네스 부대와 맞서 항전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자 홀로페르네스는 부대를 움직여서 유다의 배툴리아를 포위하였다.
○ 유딧의 남편은 므나쎄라는 사람으로 유딧과 같은 지파, 같은 가문 출신이었는데 보리를 수확할 때에 죽었다. 그녀는 세 해 넉 달 동안 자기 집에서 과부 생활을 하였다. 그녀는 자기 집 옥상에 천막을 치고 살면서 허리에 자루 옷을 두르고 과부 옷을 입었던 것이다. 그녀의 남편 므나쎄가 금과 은, 남종과 여종, 가축과 밭을 남겼는데, 유딧은 그것들을 계속 소유하였다. 유딧에 관하여 좋지 않은 말을 하는 자는 하나도 없었다. 그녀가 하느님을 크게 경외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유딧은 용모가 아름답고 기품이 있으며 지혜와 용기를 갖춘 정숙한 여인이었다.
○ 그런데 홀로페르네스는 유다 배툴리아를 포위한 채 물을 차단하여 항복을 받아내려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느님의 길에 충실하게 살아 온 과부 유딧은 화사하게 치장하고 믿을만한 시녀와 함께 적진으로 찾아가서 홀로페르네스에게 신임을 얻은 후에 여러 날을 적진에서 지내게 된다. 홀로페르네스는 유딧을 넘보며 마련한 연회 때 술에 취하여 곯아떨어지게 되는데, 이때 유딧은 홀로페르네스의 칼로 그의 목을 베어 시녀에게 넘긴다.
○ 유딧이 홀로페르네스를 살해한 장면은 유딧기 13장에서 상세하게 서술된다. “유딧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맡에 있는 침대 기둥으로 가서 그의 칼을 집어 내렸다. 그리고 침상으로 다가가 그의 머리털을 잡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오늘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 하고 말한 다음, 힘을 다하여 그의 목덜미를 두 번 내리쳐서 머리를 잘라 내었다. 그러고 나서 그의 몸뚱이를 침상에서 굴려 버리고, 닫집을 기둥에서 뽑아 내렸다. 잠시 뒤에 유딧은 밖으로 나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자기 시녀에게 넘겼다. 여종은 그것을 자기의 음식 자루에 집어넣었다.”(6-10절) 시녀가 적장의 목을 음식 자루에 넣고 둘이서 무사히 유다 진영으로 돌아오자 온 백성이 환호한다. 이렇게 홀로페르네스를 살해한 유딧의 도움으로 유다인들은 아시리아 군대를 섬멸하고 배툴리아 성읍을 지켜낼 수 있었다.
○ 이와 같이 유딧 이야기는 나라를 구한 평범한 여인에 관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강한 이방인 대장군에 대한 약한 여인의 승리요, 억압과 폭력에 대한 정의의 승리이다. 유딧의 용기 있는 행동은 하느님에 대한 강한 믿음과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한없는 사랑으로 인해 가능했다. 이렇게 유딧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 여성의 힘, 그리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의 상징이다.
■ 카라바조의 〈유딧과 홀로페르네스〉
○ 카라바조의 〈유딧과 홀로페르네스〉(JudithHolofernes)는 1599년 캔버스에 그린 유화로 144×195cm의 크기이며, 1951년 밀라노의 한 전시장에서 처음 발견된 이 작품은 현재 로마 바르베리니 궁전(Palazzo Barberini)의 국립 고대 미술관(Galleria Nazionale di Arte Antica)에 소장되어 있다. 본래 이 그림은 은행가 옷타비오 코스타(Ottavio Costa)의 주문으로 그려졌다.
○ 한 여자가 술에 취하여 곯아떨어진 한 남자의 목을 칼로 내리친다. 그리고 같이 있던 다른 여자는 그 목을 받아들 준비가 되어 있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유딧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반쯤 자르고 있는 극적인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카라바조는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유딧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화가는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이 장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강한 빛이 그림의 왼쪽으로부터 유딧을 비추고 있다. 빛은 젊은 과부 유딧이 입고 있는 순백의 블라우스와 금색 머리카락, 그리고 홀로페르네스의 근육을 강조한다. 그림의 위쪽에는 진한 붉은 색의 천이 걸려 있는데, 마치 그림의 장면이 극장의 배경 막 앞에 위치하는 듯하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에서는 붉은 피가 흰색의 청결한 침대 시트 위로 세차게 뿜어져 나온다.
○ 카라바조는 유딧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장면을 매우 절제하면서 표현한다. 유딧은 목을 베는 순간 눈살을 찌푸리면서, 그에게서 멀어지려는 듯하다. 유딧은 미간을 찌푸리며 두려워하는 인간적이고 앳된 모습으로 묘사된다. 붉은 피가 적장의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끔찍한 장면은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살해당하는 홀로페르네스의 눈은 유딧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는 고통스런 아픔으로 몸을 뒤틀고 있다. 그의 놀람과 공포가 세밀하게 표현된다. 이렇게 카라바조는 근육질의 남자인 홀로페르네스와 연약한 여인인 유딧을 대비시킨다.
○ 유딧의 뒤에는 늙은 여종이 있다. 젊은 유딧과 늙은 시녀가 대비를 이룬다. 눈을 크게 뜨고 유딧이 적장의 목을 베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는 시녀는 베어진 머리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녀는 음식 자루를 들고 서 있다. 냉정한 듯 기다리는 그녀의 표정은 이 참혹한 장면의 극적인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월간빛, 2015년 11월호, 송창현 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www.wga.hu/art/c/caravagg/03/17judit.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