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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말씀 그루터기: 오십시오, 주 예수님!(묵시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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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12 조회수4,911 추천수2

[말씀 그루터기] “오십시오, 주 예수님!”(묵시 22,20)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 마지막에 쓰려고 아껴 둔 주제입니다.

 

2010년쯤, 말씀 그루터기에 모세에 대해 쓴 적이 있습니다. 모세가 왜 요르단 강을 건너지 못하고 죽어야 했을까, 모세는 실패한 것일까, 이것이 질문의 시작이었습니다. 대답은 모세의 사명이 거기까지였다는 것. 모세가 할 일은 백성들을 저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었고, 결국 모세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론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모세 오경이 어떻게 끝나며 그 주제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연관됩니다. 모세가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났더라면 모세 오경의 주제는 땅의 소유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주제는 땅의 소유가 아닌 땅의 약속이 됩니다. 그래서 신명기 34장에서는 하느님께서 모세를 요르단 강을 건너기 전 느보 산에서 죽어 묻히게 하셨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모세 오경만 이렇게 어정쩡하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경의 첫 권인 창세기의 마지막은 요셉의 죽음입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죽었을까요? 형들의 손으로 팔려 갔던 이집트에서였습니다. 히브리어로 창세기의 마지막 단어는 “이집트에”입니다. 창세 12-50장에 걸친 성조사가, 낯선 땅 이집트에서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이집트에서 눈을 감으면서도, 하느님께서 반드시 야곱 집안을 찾아오시어 그들을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창세 50,24) 데리고 올라가실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때에 자기 유골을 가지고 올라가라고 당부합니다. 나중에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도착한 다음 그의 유골을 그 땅에 묻을 것입니다.

 

모세가 요르단 강을 건너지 못하고 느보 산에서 죽으면서도 그 땅을 바라보고 있었듯이, 요셉도 이집트 땅에서 죽으면서도 언젠가 그 땅으로 들어갈 날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약속은 주어져 있으나 아직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조들은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립니다.

 

오경이 끝나고 나면, 히브리 성경에서는 전기 예언서라고 하는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가 이어집니다. 현대의 성서 연구에서는 신명기계 역사서라고 하지요. 여호수아기부터 열왕기에 이르는 이 책들은, 모세가 세상을 떠난 후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이스라엘이 영토를 정복하고 분배한 때로부터 그 후에 왕국을 세우고 살다가 왕국이 멸망한 때까지를 전해 줍니다. 나라가 멸망한 후 그 원인을 생각하며 작성한 책이라고 봅니다.

 

그러다 보니 열왕기의 마지막도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이 아닌 바빌론에서 끝납니다. 실패한 역사 같지요. 멸망의 원인을 돌아보니 책에서는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열왕기의 마지막 장면에 주목합니다. 그 마지막 장면에서, 바빌론 임금 에윌므로닥은 임금이 되고 나서 유배지에 끌려가 있는 여호야킨을 감옥에서 풀어 주고 죄수복을 벗게 합니다. 이때부터 여호야킨은 바빌론 임금 앞에서 음식을 먹게 됩니다(2열왕 25,27-30). 이 결말은 작은 희망의 등불을 보여 줍니다. 아직 이스라엘은 바빌론 땅에 유배하고 있지만, 상황은 조금씩 호전될 기미를 보이는 것입니다. 여기도 낯선 땅에서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후기 예언서의 마지막은 말라키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성경에는 책들의 배열 순서가 달라져 있어 말라키서가 구약 전체의 마지막 책이 됩니다.

 

그런데 말라키서의 마지막 단락에서는 다시 약속이 주어집니다.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말라 3,23). 엘리야 예언자가 오면 이스라엘에게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게 하여,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게 할 것입니다.

 

여기서도 끝은 완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미래를 약속하면서, 기다림 가운데 끝납니다. 그리스도교의 성경 순서에 따르면 이 단락은 구약 전체를 신약에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이 말씀이 세례자 요한에게서 성취되었다고 보고 있기에, 구약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책이 됩니다.

 

한편 히브리 성경에서는 예언서 다음에 성문서가 이어지고, 성문서의 마지막 책은 역대기입니다. 역대기의 마지막은 키루스 칙령이고, 유다교에서는 신약 성경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히브리 성경은 키루스 칙령으로 모두 끝나게 됩니다. 키루스 칙령의 내용은 바빌론에 유배를 가 있는 이스라엘에게 바빌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가 귀환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2역대 36,22). 이것이 마지막 말입니다. 이 순간에도 이스라엘은 아직 바빌론 땅에 있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제 마음대로 쓰겠습니다. 좀 엉뚱할 수도 있고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르 1,15)라고 선포하십니다. 이제는 정말 기다림이 다 끝나고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이미 와 있는 것이면서도 아직 완성되어 있지 않은 나라이지요. 종말의 완성을 기다리고 있는, 아직도 우리에게 오고 있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 그대로 이 세상에 머무르셨다면 어땠을까요? 이것은 순전한 저의 상상입니다. 그랬더라면 정말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복음서들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은 승천하십니다.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제자들이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어쩌면 망연자실했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해서 복음서도 아직 미래를 기다리는 책으로 끝납니다.

 

사도행전의 첫머리에서는 그 장면에서 천사가 제자들에게 하는 말을 전해 줍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사도 1,11). 사도들이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멍하니 서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천사가 다시 말합니다.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 1,11)

 

다시 같은 주제의 반복입니다. 약속, 기다림. 사도들로부터 시작하여 우리까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립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신약 성경의 마지막 장면인 묵시 21-22장으로 갑니다. 거기서 요한은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묵시 21,2) 봅니다. 거두절미. 새 예루살렘은 완성되었을 때의 교회 공동체를 나타냅니다. 이제 다 이루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성전도 등불도 필요하지 않을 만큼 새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현존으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새 예루살렘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요한 묵시록은 요한이 마지막 때에 있을 일을 미리 본 것이지요. 묵시 21-22장의 일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경의 마지막 대화는 “내가 곧 간다.”(묵시 22,20)는 예수님의 말씀과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묵시 22,20)이라는 기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성경은 늘 완성되지 않은 채로 끝을 맺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완성에 대한 강한 믿음과 희망을 새겨 줍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은 그 중간에 있습니다. 아직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지 않았기에 늘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기를 기도하는 삶. 그러면서도 그 나라가 완성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삶. 그것이 신앙인의 삶일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은총이 모든 사람과 함께하기를 빕니다.”(묵시 22,21).

 

[땅끝까지 제90호, 2015년 11+12월호, 안소근 실비아 수녀(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성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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