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이야기] 인신제
외딸을 제물로 바친 판관 입타의 비극
- 사우샘프턴시 미술관에 있는 죠반니 바티스타 피토니의 작품 ‘입타의 딸을 제물로 바치다’.
모세오경에는 인신제를 금하는 율법들이 다수 나타난다(레위 18,21 신명 18,10-11 등).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암암리에 인신제를 행했다. 그 가운데 외딸을 제물로 바쳤다는 입타 이야기(판관 11장)는 내용이 비극적인 만큼 의문도 함께 일으킨다. 고대 이스라엘이 인신제를 허용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 어느 아버지가 자식을 제물로 바칠 수 있을까? 사건이 충격적인 만큼, 입타의 이야기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 듯하다. 곧, 자초지종을 알게 될수록 전율처럼 전해오는 입타의 고통을 통해, 성경은 모종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이스라엘의 인신제는 페니키아 티로에서 주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암몬이나 모압 등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2열왕 3,27 참조). 입타의 고향도 암몬·모압과 이웃한 ‘길앗’이었다(판관 11,1). 이스라엘인들은 가나안의 옛 제단을 하느님 제단으로 바꾸기도 했으므로, 이전 악습이 서서히 되살아난 듯하다. 심지어 에제키엘서(20,25-26)에는 하느님이 인신제를 허락하셨다는 구절도 나온다. 언뜻 보면 ‘놀랄 노’자이지만, 이것은 이스라엘이 생명의 원천인 하느님 율법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인신공양을 포기 못하는 이스라엘을 보시고, 그들 성향에 맞추어 생명의 율법을 죽음의 율법으로 바꾸신 것이다. 곧, 그들이 죽음을 자초하도록 내버려 두셨다. 그런 다음 이스라엘의 죄를 벌해 깨우치시기 위함이었다. 이는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들어 이집트를 벌하신 뒤, 당신이 주님이심을 깨닫게 하신 것과 유사하다(탈출 11,9-10 참조).
이스라엘이 인신제를 주로 행한 곳은 ‘힌놈의 골짜기’였다(2열왕 23,10 등 참조), 예루살렘 도성 남쪽으로 패인 골짜기인데, 예레미야는 그곳을 ‘토펫’이라고 불렀다(예레 7,31). 골짜기 제단은, 지하에 가까운 위치 때문에라도 죽음에 결부된 의식이 자주 치러졌던 것 같다. 토펫의 의미는 다소 모호하지만, 아람어에 기초할 때 가마나 화덕으로 추정한다. 곧, 자식을 불살라 바치는 의식을 연상시키는 어원이다. 또는 히브리 어원으로 보아, ‘북을 치다’로도 풀이한다. 제물로 바친 아이의 비명을 북소리로 묻으려 했기 때문이다. 힌놈의 골짜기는 나중에 신약성경에서 ‘게헨나’로 발전해, 지옥의 상징이 된다(마태 5,29 10,28 등 참조).
- 힌놈의 골짜기 전경.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입타는 성경이 금지한 인신제를 제재 없이 바친 것으로 묘사돼, 의문을 자아낸다. 그는 힘센 용사였으나, 창녀의 아들로 태어난 천출이라 집에서 쫓겨났다(판관 11,1-2). 백성이 그런 그를 판관으로 세운 까닭은, 암몬과 전쟁을 앞두고 그의 힘이 필요했던 탓이다(7-8절). 곧, 입타는 철저히 이해 타산적 이유로 다시 받아들여졌다.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신변에 어떤 일이 생길지 장담할 수 없는. 게다가 어릴 때부터 필사적으로 생존해야 했던 그는,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품었던 그런 믿음은 갖기 힘들었을 것이다. 주님은 그가 ‘위험한 서원’을 하기 전에도 함께 싸워 주셨으나(29절), 삶이 전투 같았던 그는 끝끝내 확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암몬을 이기고 무사히 돌아온다면, ‘그를 맞으러 집에서 처음 나오는 이’를 바치겠다고 서원한다(31절). 곧, 입타는 누군가의 목숨을 조건으로 걸고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그 서원은 반드시 지켜야 했다. 주님 앞에서 맹세한 말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입타는 당대 사람들처럼(판관 10,6 등 참조) 주님 섬기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사실 위 31절을 직역하면, ‘저를 맞으러 문에서 처음 나오는 무엇이든’이다. 꼭 사람이어야 한다는 어감은 아니다. 그런데 하필 외딸이 나왔으니, 입타가 느낀 절망은 대단했다. 하지만 딸이 제일 먼저 나와 승전한 아버지를 반기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나? 아버지의 과오로 뜻하지 않게 희생양이 된 입타의 딸은 이름도 나오지 않는다. 어머니가 누군지도 알 수 없고, 외할머니는 천한 여인이었다. 그런 신분 탓에 입타의 딸은 배필 찾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끝까지 남자를 모르는 상태로 죽었다(39절).
성경은 최대한 말을 아끼고, 정말 중요한 사실만 언급한다. 그런데 이런 비극이 성경에 자세히 실려 있다는 것은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었음을 뜻한다. 아마 판관기 저자는 고대 이스라엘에 유행하던 인신제를 비판하려 했던 것 같다. 곧, 인신제를 하면 어떤 종말이 기다리는지, 입타의 고통을 통해 다른 이들이 간접적으로나마 깨닫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 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11월 29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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