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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이사야와 아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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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1-02 조회수6,196 추천수2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이사야와 아하즈



긴 이사야 예언서가 모두 한 예언자의 작품입니까?

그렇게 볼 수는 없습니다. 흔히 제1, 제2, 제3이사야로 나눕니다. 바빌론 유배 이전의 예언자를 제1이사야(이사 1-39장)로, 유배 기간의 예언자를 제2이사야(40-55장)로, 유배 이후의 예언자를 제3이사야(56-66장)로 구분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이사야를 셋으로 나누는지 그리고 제2, 제3 이사야는 누구인지는 차츰 보기로 합니다.


본디 예언자 이사야(제1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기는?

기원전 742년, 아직 젊은 나이에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은 이사야는 기원전 700년경까지 40년이 넘도록 예언자로서 활동합니다. 그는 아자르야라는 별칭을 가진 우찌야 임금 통치시절에 등장합니다(참조: 이사 1,1; 2열왕 15,1-7). 그때는 유다왕국이 부유해져 번영을 누리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부요와 번영은 겉으로는 행복을 가져다주었지만 큰 부작용을 낳게 됩니다. 소수가 토지를 독차지하여 지주계급이 생겨납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가난한 이들이 지주들 밑에서 억압을 당하는 일이 속출합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의 아시리아 제국은 무력으로 세력을 확장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시절에 이사야는?

하느님 뜻에 어긋나는 사회 불의를 고발하고 단죄합니다. 이사야는 정의를 거스르는 권력의 횡포를 단죄하고 하느님의 진노를 선포합니다. “너희가 나의 얼굴을 보러 올 때 내 뜰을 밟으라고 누가 너희에게 시키더냐?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이사 1,12-13) “너희는 정녕 잎이 시든 향엽나무처럼 되고 물이 없는 정원처럼 되리라. 강자는 삼베 조각이 되고 그의 행적은 불티가 되어 둘 다 타버리는 데도 꺼줄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1,30-31)


비슷한 시기에 예언자 아모스는?

이사야보다 몇 년 앞서서 이미 예언자 아모스가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왕국의 수도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이사야처럼 하느님의 진노를 선포했습니다.

“사마리아 산에 사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어라. 힘없는 이들을 억압하고 빈곤한 이들을 짓밟으며 ‘우리가 마실 술을 가져와요.’ 하고 저희 남편들에게 말하는 여자들아! 주 하느님께서 당신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셨다. ‘보라, 정녕 그때가 너희에게 다가온다. 사람들이 너희를 갈고리로 끌어가고 너희 가운데 마지막 한 사람마저 낚시로 채 가리라......’”(아모 4,1-3)


당시 이스라엘왕국과 유다왕국이 처한 시대상황은?

한마디로 혼란스러웠습니다. 한편으로는 막강한 아시리아에 대항하기 위해, 수도 다마스쿠스를 중심으로 한 아람왕국과 수도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왕국이 동맹을 맺어 연합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다왕국의 임금 아하즈는 오히려 아시리아 임금에게 굴복하여 그에게 조공을 바쳐가면서 그의 보호를 받기를 원했습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의 유다왕국 침공은?

막강한 이스라엘 연합군이 유다왕국으로 쳐들어옵니다. “유찌야의 손자이며 요탐의 아들인 유다 임금 아하즈 시대에, 아람 임금 르친과 르말야의 아들인 이스라엘 임금 페카가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왔지만 정복하지는 못하였다.”(이사 7,1) 그 당시 상황을 보는 유다왕국의 반응은 실로 엄청난 공포와 두려움뿐이었습니다. “아람이 에프라임에 진주하였다는 소식이 다윗 왕실에 전해지자, 숲의 나무들이 바람 앞에 떨 듯 임금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떨렸다.”(이사 7,2)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이사야의 반응은?

예언자가 유다 임금 아하즈에게 전하는 하느님 말씀을 들어봅니다. “진정하고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르친과 아람, 그리고 르말야의 아들이 격분을 터뜨린다 하여도 이 둘은 타고 남아 연기만 나는 장작 끄트머리에 지나지 않으니 네 마음이 약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이사 7,4) 이사야가 아하즈 임금에게 전하는 이 하느님 말씀은 어찌 보면 지금 유다왕국에 닥친 위급한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유다가 그들을 상대해 싸울 힘이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사야의 생각은?

분명히 달랐습니다. 유다 임금을 비롯한 유다 백성은 앞에 펼쳐진 군사력만을 놓고서 인간적으로 판단하지만, 예언자는 눈앞에 펼쳐진 현상을 인간의 눈으로만이 아니라 언제나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바라보고 그분의 안목으로 식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유다 백성의 눈에 용광로의 불처럼 엄청난 위력을 지닌 연합군이라 해도, 이사야의 눈에는 아주 미약한 존재로 보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이사야는 코앞에 진을 친 연합군을 보고도 ‘연기만 나는 장작 끄트머리’일 뿐이라고 하면서 유다 임금을 안심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사야가 여기서 강조하는 바는?

인간의 뜻은 한계에 부딪친다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분의 뜻에 어긋나는 인간계획은 좌절하거나 이루어질 수 없음을 가리킵니다. 이사야는 여기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다윗 왕실과 유다 백성에게 일깨우고자 합니다.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이사 7,9ㄴ) 하느님 백성의 미래는 전적으로 그들이 누구를 믿느냐 하는 그들의 결단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유다 임금 아하즈는?

눈앞에 닥친 현실이냐 아니면 미지의 하느님이냐를 놓고 갈등을 겪습니다. 바로 그때 이사야가 아하즈에게 파견되어 그분 말씀을 전합니다.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이사 7,11) 그러나 아하즈 임금은 부드럽게 거절합니다. 하늘의 표징을 청하지 않되 주님을 시험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성경말씀을 실행하기 위한 것처럼 보입니다. “너희가 마싸에서 주 너희 하느님을 시험한 것처럼, 그분을 시험해서는 안 된다.”(신명 6,16)


표징을 청하기보다 주님을 시험하지 않겠다는 아하즈?

아하즈의 점잖은 거절은 겉으로는 율법에 걸맞은 신앙인의 경건성에서 나온 응답인 듯 보입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영원하신 분께 대한 전적인 믿음이 부족한 데서 나온 응답일 뿐입니다. 그분을 따르려는 의지가 결여되어있으니 말입니다. 아하즈 임금은 오히려 자신의 길, 인간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이지요.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로 맘먹었다는 표현입니다.

하느님께 표징을 청하면 그 순간부터 자신의 계획이 아니라 그분 계획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하즈는 바로 그 점이 싫었던 것입니다. 임금으로서 세상에서 절대 권력을 누리고 있었으니까요.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1월호, 글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작전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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