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바오로 영성의 주제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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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01-23 | 조회수5,351 | 추천수1 | |
[바오로 영성의 주제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라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자비의 특별희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일 년 동안, 하느님 자비의 사도직에 헌신했던 바오로 사도의 영성, 곧 그가 살아낸 신앙의 주요 주제를 통해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전하는 봉사자가 되고자 하는 길을 함께 성찰해 보고 싶습니다.
바오로에게 접근하는 데는 여러 방식이 있는데 그 여정을 십자가에서부터 출발하겠습니다. 십자가와 십자가가 의미하는 모든 것이 바오로 영성의 핵심에 해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바오로 자신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1코린 2,2).
바오로 시대에 십자가가 지닌 의미는
바오로의 십자가 선포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먼저 바오로 시대의 그리스 · 로마 사회와 유다 사회에서 십자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 두 사회에서 십자가는 모두 아주 부정적인 표상이었습니다. 먼저 로마 세계에서 십자가는 노예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하고도 굴욕적인 고문에 해당하였습니다. 너무 잔인하여 로마 시민에게는 이 형벌을 금지하였습니다. 바오로 시대의 로마인들에게는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을 믿는 종교를 따르는 사람은 어리석음의 극치였습니다.
트라야누스 황제 당시 비티니아 총독이었던 소플라니우스(61-113년)는 2세기 초 예수님께 바치는 예배를 “비이성적이고 측정할 수 없는 미신”(편지 X, 96,4-8)이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유다인들도 골고타에서 십자가에 처형된 사람이 메시아라는 것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무력하고 비천한 메시아가 아니라 권능과 인간적인 성공, 정치적인 해방을 가져오는 영광스러운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이 십자가를 지독하게 싫어하게 된 다른 원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가 당시 로마의 잔인한 억압과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기원전 2세기 초부터 기원후 70년대 말까지 팔레스티나에서 많은 사람을 십자가형에 처했다고 합니다.
“죄수들의 숫자가 많아지자 십자가를 놓을 자리와 십자가의 희생자가 지고 갈 죄인들의 십자가가 부족할 정도였다”(「유다 전쟁」 V, 451). 이처럼 바오로 시대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 메시아임을 선포한다는 것은 로마 세계에서나 유다 세계에서나 모두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선포한 이유는
그럼에도 바오로 사도가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1코린 1,23)인 십자가를 담대하게 선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부활사건 때문입니다.
바오로는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 부활하신 분을 만나게 되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 부활하셨다는 것, 그분 안에서 유다인으로서 자신이 믿어온 하느님께서 활동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충실한 바리사이였던 바오로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길에 나선 것은 정치적인 동기가 아니라 순수한 종교적 이유 때문입니다. 감히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은 오로지 하느님만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훼손시키는 사람들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자신이 박해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유다인으로서 자신이 추구하는 하느님의 영광이 충만히 계시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마스쿠스 사건 이후 바오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본 사도’로서 충실히 살아갑니다. 이제 십자가는 바오로의 복음 선포의 핵심이 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은 누구인가
바오로는 다마스쿠스 체험을 통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의 참된 정체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은 자발적으로 종의 신분으로 당신을 낮추시어 ‘우리 죄들을 대신하여’ 가장 굴욕적인 죽음을 받아들이시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계시하십니다.
바오로는 자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라고 말하는데(로마 8,3; 2코린 5,21; 갈라 3,13 참조), 이 말은 능동적으로 표현하면 내가 예수님을 죽였다는 말입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는 유다인만이 아니라 모든 죄인이 그리스도 수난의 장본인이라고 가르칩니다(598항 참조). 우리가 악한 행위를 함으로써 그분을 부정한다면, 악습과 죄를 반복한다면 그것이 바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지금도 못 박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은 그리스도, 주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신” 아드님을 죽음 속에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들어 올리시어 ‘주님’으로 삼으셨습니다(필리 2,8-9 참조).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필리 2,10-11). 주님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지배자(kyrios)’이십니다.
셋째, 십자가는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얼굴과 십자가를 거부하는 인간의 죄스러운 얼굴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참한 죽임을 당하시면서도 모든 사람을 용서하시고 한 사람도 배제하지 않으시며 모든 인간을 십자가 아래로 모아들이시어 안아주십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지은 근본적인 죄를 계시해 줍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가 하느님을 부르면서 하느님 부재의 삶을 살고 있고, 우리에게 요구되는 사랑의 삶에서 너무나 멀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것은 이 세상에 사랑이 현존한다는 사실과 사랑이 미움과 폭력보다 강하고 사람들이 빠져 있는 온갖 악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자비」, 발터 카스퍼, 가톨릭출판사). “이 사랑을 믿는 것은 자비를 믿는 것입니다”(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 7항).
십자가를 어떻게 살아갈까
십자가가 중요한 것은 십자가 그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못 박히신 분, 그곳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분 때문입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응답하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첫째, 삶으로 영적 예배를 드리십시오. 바오로는 복음서의 예수님처럼 ‘자신의 십자가를 져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갈라 5,24)라고 말합니다.
바오로에 따르면, 믿는 이들은 사실상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로마 6,6; 갈라 5,24 참조) 있는 이들입니다. 바오로에게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자신의 욕망을 극복하는 삶의 이미지이자 ‘우리가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로마 12,1 참조), 곧 영적 예배로 살아가는 표징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마음을 간직하십시오.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의 그리스도 찬가에서 바오로의 십자가 신학은 절정에 이릅니다. 바오로는 우리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아 그분과 일치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바치는 삶을 영위하라고 권고합니다.
필리피서에서 겸손이란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2,3),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주는”(2,4) 자세입니다. 신앙 때문에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자신을 내어주고, 함께 기쁨과 슬픔, 고통을 겪는 것은 공동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껴안는 행위입니다.
셋째,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을 헤아려보고 감사하십시오. 에페 1,3-14을 천천히 읽고 되새겨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은 영적인 복과 은총이 얼마나 큰지, 하느님께 선택받은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우리 가난한 인생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가 얼마나 심오한 것인지 감사드리게 됩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께서 해주신 일 하나도 잊지마라.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낫게 하시는 분.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내시고 자애와 자비로 관을 씌워주시는 분”(시편 103,2-4).
십자가는 우리의 힘
자비의 특별희년이 시작된 12월 8일 성모님 대축일에, 가까운 친구가 「빵과 포도주의 마르첼리노」라는 책에 나오는 장면을 소재로 한 그림을 선물했습니다.
어린아이가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목을 꼬옥 껴안고 귀에 대고 이렇게 위로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내가 예수님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날 십자가와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를 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삶도 많습니다. 그러나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1코린 1,18).
십자가에 드러난 하느님의 자비는 자비의 봉사자인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세상 곳곳에 스며들 것입니다.
* 임숙희 레지나 -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영성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여러 권의 성경 교재를 번역했다. 현재 엔아르케성경삶연구소 대표이며, 대전가톨릭대학교 부설 혼인과가정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 서소언 스테파노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과와 인하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최근에는 「주님의 시선」 묵상집을 펴냈다.
[경향잡지, 2016년 1월호, 글 임숙희 레지나, 그림 서소언 스테파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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