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성경 속의 지도자들: 대지의 어머니 하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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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01-23 | 조회수4,036 | 추천수1 | |
[성경 속의 지도자들] 대지의 어머니 하와
성경 속의 지도자들을 연재하며 먼저 떠오른 인물은 당연히 모세와 아브라함 그리고 노아와 바오로 등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인류 문명사를 시작하게 한 최초의 인물은 누구일지 고민하다가 하와라는 인물을 다시 들여다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여성이며 미국의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도 여성이다. 그리고 독일 총리도 여성이다. 여성의 힘이 점점 강해져 가고 있어서만이 아니라, 여성 지도자들이 떠오르고 있는 시대이니 하와를 재조명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정보기술(IT)과 서비스산업의 발달로 힘을 써야하는 1차산업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어, 그동안 여성이 가진 섬세함, 감성적 소통이 장점으로 발휘되고 있다.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었던 여성을 잘 활용하고, 특히 여성의 지도력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키우는 것은 앞으로 우리나라가 성장하는데 필요조건이다.
왜 하필이면 갈빗대에서
수천 년 역사는 남성중심 시대였다. 그럼에도 뛰어난 여성 지도자들이 적지 않았다. 남성들은 오랫동안 축적된 비법을 서로 전수해 역사를 만들어 갔지만, 간헐적으로 등장했다 사라져가는 여성들은 개인의 역량에만 철저히 의지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던 점도 여성 지도력을 역사적으로 좀 더 연구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하와를 어떤 지도자로 보고, 하와가 보였던 삶의 역정에서 어떤 지도력을 볼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들 것이다. 먼저 역사적으로 하와를 보는 시각을 살펴보자.
하와가 언제 탄생했느냐는 점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창세기 1장 27절에는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모습으로 동시에 탄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2장 22절에는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이런 불일치에 몇몇 신학자와 역사가는 성경의 신화시대에는, 당시 유다인들이 다른 중근동 지방의 종교들과 비슷하게 남녀 신을 함께 모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여성이 남성과 동시에 창조되었으며 그 모상이 신이기 때문에, 하느님 아버지라고 말하는 만큼 하느님 어머니라고 기도해야 한다고도 한다.
필자는 이런 논쟁에 대한 신학적 판단을 할 입장이 아니다. 다만, 신의 모습에서 가부장제의 권위만이 아니라, 어머니의 여러 긍정적인 모성을 발견하는 것은 개인과 사회의 성숙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유다의 옛 경전 ‘랍비 요수아’에는 하와가 왜 하필이면 갈빗대에서 태어났는지 꽤 자세히 설명한다. 예컨대, 귀에서 태어났으면 너무 많이 들으려고만 할 것이고, 눈에서 태어났다면 너무 많이 보려고 할 것이며, 입이라면 수다스러울 것이고, 머리라면 생각만 하느라 골치 아플 것이기 때문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갈빗대에서 하와를 만들어 겸손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하와가 아담의 갈빗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하와는 아담과 동등한 존재, 곧 어깨동무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일반인들의 해석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하와가 먹은 사과의 의미
하와한테서는 인류의 비약적인 의식의 확장과 발달을 관찰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새로운 것, 또는 금지된 것에 대한 호기심이다. 물론 짐승들도 무언가 나타나면 호기심을 보인다. 하지만 짐승의 호기심은 상대를 이길 수 있는 것인지, 또는 내가 먹거나 아니면 내가 상대에게 먹힐 것인지 등 생리적 본능에만 국한된다.
쉽게 말해 짐승에게는 외부의 자극에 대한 나의 관심을 추상적으로 이해하고 상상해서 상징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 없다. 상징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은 어떤 기호나 메시지를 줄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예컨대, 돌고래나 개, 유인원 등도 몇 개의 언어를 알고서, “빵!”하면 빵을 갖고 오고, “앉아!” 하면 앉기도 한다. 그러나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자만이….”할 때의 빵이 삶의 고단한 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은 오로지 인간만이 이해한다.
이런 관점에서 하와가 보인 사과를 지혜의 상징으로 이해하게 된 상황은 인류 역사상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곧 하와에게 사과는 맛있는 과일, 그 이상의 상징적 의미가 있게 된 그 시점이 바로 인간이 짐승과 차별되는 순간이란 뜻이다.
뱀은 독을 심을 수도 있고,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뱀은 아주 위험한 동물이니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그럼에도 하와가 뱀과 한 소통은 곧, 위험하고 고생스럽긴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 고통의 과정을 넘어 ‘아는 것’ 곧 ‘지혜’를 체득할 수 있게 되는 인간적 특징의 시발점이라는 것이다.
만일 하와의 호기심이 없었다면 아담과 하와는 영원히 에덴동산에서 살았을 것이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수고 역시 겪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인류가 시작된 그 시점부터 창조주께서 충분히 예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하느님의 금기를 어겼다는 점에서 하와는 원죄를 저지른 주동자가 되고, 바오로 사도는 이런 점 때문에 여성에 대한 강력한 경고와 비난을 하기도 했다. 초기 교부였던 테르툴리아노는 하와를 ‘악으로 가는 문’이라고 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도 인류가 죄악으로 떨어지게 된 책임을 하와에게 묻기도 하였다. 이런 반여성적 관점은 중세 마녀사냥 때 극단적으로 발전해서 여성혐오와 대량살상을 합리화하는 이론적 배경이 되기도 했다.
반대로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 영지주의 경전들은 하와를 생명과 동일시하기도 하고 ‘지혜’나 ‘빛의 여신’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이는 히브리어로 ‘하와’, 곧 ‘생명의 기원’이란 단어와도 잘 연결되어 현대의 여성주의 신학자들에게 좋은 이론적 기반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인류 최초의 지도자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아담을 유혹해서 지혜의 열매를 먹고 눈이 열려 자신들이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의지를 가진 최초의 인물이라는 뜻이 아닌가?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하와는 아담이 겪지 않아도 되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고통’을 품게 된다. 곧 자기의 의지와 결정에 따른 긍정적, 부정적 책임을 모두 지고, 그에 따른 아픔도 죽을 때까지 받아들이며 살았다는 점에서 인류 최초의 ‘지도자’였다고 할 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는 여성이다.
흔히 지도자에게는 거의 신의 경지에 가까운 완벽한 품성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의 지도자들은 결점과 실패 투성이다. 그런 지도자를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것도, 또 그런 지도자의 잘못 때문에 그 책임을 함께 나누는 것도 추종자들의 몫이며, 지도자 자신의 과제이기도 하다.
하와는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는 큰 잘못을 했지만, 죽을 때까지 자신의 죗값을 치르면서 결국 먼 훗날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탄생하실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에게서 원죄에 빠뜨린 죄인이라고 비난받았다. 하와가 없었다면 인류가 존재할 수 없었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현실의 지도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언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신천지를 개척하는데 앞장을 서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사람들에게 원망과 분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와의 추방과 고단한 삶의 역정은 우리의 많은 지도자가 찬사만 받는 것이 아니라 채찍과 저주와 조롱을 더 많이 받게 된다는 비극적 실존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다.
세상의 어떤 리더도 절대선이나 절대악으로 포장되지 않는다. 이 시대의 지도자들도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통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이나미 리드비나 -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 한국융연구원 지도분석가이며 서울대 외래교수를 맡고 있다. 「성서를 심리적으로 풀어본 슬픔이 멈추는 시간」, 「성경에서 사람을 만나다」 등의 책을 냈다.
[경향잡지, 2016년 1월호, 이나미 리드비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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