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도시] (77 · 끝) 로마
그리스도교의 심장
- 바티칸시티의 성 베드로 광장. [CNS]
로마는 외국 여행을 가는 사람들, 특히 성지순례를 하는 사람들이 꼭 들르는 장소다. 무엇보다 볼거리가 많은 탓이다. 고대 제국에 있어서 정치 문화의 중심지요 사도 시대 이후에는 그리스도교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가톨릭의 중심지로서 교황이 국가 수반으로 있는 바티칸시티가 로마 시내에 있다. 최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폭발적 인기(?) 덕분에 교황 일반 알현이 있는 날이면 베드로 광장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교황 덕분에 이탈리아 관광객이 늘어났다고 하니 그 인기가 실감이 난다.
예수님 당시 강대한 로마제국은 로마시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넓은 영토와 함께 전성시대를 이뤘다. 로마가 세계에 준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국가 조직 및 정치 그리고 문화 윤리 및 철학 등 다양한 문화를 서방에 전파하는 역할을 하였다. 로마제국은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건설되어 동ㆍ서로마제국으로 분열된 후 서로마제국이 476년, 동로마제국이 1453년에 멸망하기까지 계속돼 서양 문화 형성에 커다란 역할을 한 대제국이다.
로마는 그리스도교의 생성과 발전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수님은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유다 지방에서 태어나 활약하다 ‘유다인의 왕’이라는 죄목으로 로마법에 따라 재판에 회부돼 십자가형을 받으셨다. 초대 교회 역시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스도교는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시작돼 시리아, 아시리아, 메소포타미아, 페니키아, 소아시아, 요르단, 이집트 같은 근동 지방으로 퍼져나갔다. 로마 제국은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칙령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고, 얼마 후 국교로 자리 잡게 된다. 서기 8세기부터 1870년까지 로마는 교황령의 수도가 됐다. 이탈리아 통일 후 1871년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로마는 이탈리아의 수도로 자리 잡고 있다.
성경에서 바오로 사도는 당시 세계의 가장 크고 중요한 이방인들의 도시였던 로마에서 선교하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로마에 있는 여러분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나의 소원입니다”(로마 1,15).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로마 선교 계획을 여러 번 주변에 이야기했다. “이런 일들이 끝난 뒤, 바오로는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고, ‘거기에 갔다가 로마에도 가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사도 19,21). 그러다 결국 바오로 사도는 죄수의 몸이 되어 로마에 들어가게 된다. “형제들이 로마에서 우리 소문을 듣고 아피우스 광장과 트레스 타베르내까지 우리를 맞으러 왔다. 그들을 본 바오로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용기를 얻었다. 우리가 로마에 들어갔을 때, 바오로는 자기를 지키는 군사 한 사람과 따로 지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사도 28,15-16).
바오로 사도는 2년 동안 죄수의 몸이었지만, 비교적 자유롭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로마에서 전하게 된다. “바오로는 자기의 셋집에서 만 이 년 동안 지내며,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다. 그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사도 28, 30-31). 그러다 네로 황제 때에 교회의 두 기둥인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가 로마에서 순교하면서 로마는 더욱 큰 종교적 의미를 갖게 된다.
‘영원한 도시’라 불리는 로마는 현재도 여전히 세계의 중요한 도시 중 하나다. 서양의 예술과 문화가 집대성된 장소이며, 고대 정신문화와 그리스도교의 결합에 의해 형성된 유럽 문화의 본산이다.
[평화신문, 2016년 1월 24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 ‘성경 속 도시’는 이번 호로 마칩니다. 다음 호부터는 계속해서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기도’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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