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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이스라엘 이야기: 창가의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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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1-25 조회수5,265 추천수2

[이스라엘 이야기] 창가의 인물들


모함에 흔들리지 않고 창가에서 기도한 다니엘



- 코라진 유적에서 발굴된 집. 입구 오른쪽으로 창 두 개가 아주 조그맣게 뚫려 있다.


높고 푸른 하늘을 보면, 학창 시절 꾸었던 꿈들이 생각난다. 자습이 끝난 뒤 창 가에 서서 그려본 미래와 이상은 지금도 어린 시절의 낭만으로 남아 있다. 필자에게 창문은 하늘과 연결하고 꿈을 키워주는 통로였다. 창문이 시 소재로도 자주 사용되는 걸 보면, 다른 이들에게도 비슷한 의미를 주는 듯하다. 특히 ‘창가의 여인’이라는 소재는 가을 단풍이나 비 오는 날의 운치 등의 심상을 일으킨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사람들 생각이 달라지듯이,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창가의 여인이 낭만적 감성과 거리가 멀었다. 성경을 보면 궁정이나 귀족 여인들이 창가에 있었고, 가난한 사람이 창을 내다봤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일하느라 여유가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 이유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조금 달랐다.

창가에서 벌어진 사연이 가장 많은 이는 사울의 딸 미칼이다. 미칼은 성경에서 ‘사랑에 빠졌다’는 말이 직접적으로 표현된 유일한 여인이다(1사무 18,20). 그이는 아버지에게 미움받는 남편 다윗을 구하려고 창문으로 탈출시켰다(1사무 19,12). 세월이 흘러 다윗이 임금이 된 뒤에는, 다윗이 계약 궤를 들여오며 덩실덩실 춤추는 모습을 창가에서 조롱하며 내려다보았다. 이 조롱 탓인지 미칼에게는 그 뒤로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2사무 6,23). 다윗을 향한 미칼의 뜨거운 사랑이 냉소로 바뀌기까지 여러 사연이 있었겠지만, 그 과정에는 창문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창가에 선 귀부인 이야기는 판관기에도 나온다. 판관 4-5장은 드보라가 타보르 산에서 하초르 장군 시스라에 맞서 싸운 전쟁을 보도한다. 시스라는 전쟁에서 패하자, 카인 족 여인 야엘의 천막으로 도망가 피신처를 구하려 했다. 당시 카인 족이 하초르와 동맹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스라는 이 동맹만 믿고 방심해 잠들었다가 야엘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그래서 여인에게 패하고 여인의 손에 쓰러진 시스라는 당시 가부장적 사회에서 가장 치욕적인 죽음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의 전사를 알지 못한 시스라의 어미는 창밖으로 목을 늘이며 그를 기다렸다. 자식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어머니 마음은 시대·민족을 막론하고 같을 텐데, 여기서는 어머니의 애타는 마음이 창문을 통해 전해져 온다. “시스라의 어미가…… 창살 틈으로 소리쳤네. 그의 병거가 왜 이리 더디 오느냐? 병거의 말발굽 소리가 왜 이리 늑장을 부리느냐?”(판관 5,20).

한 유다교 회당의 내부. 정면으로 창이 보인다.


이번에는 열왕기를 보자. 1열왕 17-19장은 북왕국 임금 아합과 엘리야의 대립을 보도한다. 아합은 정치적으로 매우 유능했지만, 종교적으로는 타락한 임금이었다. 시돈의 공주 이제벨과 정략결혼한 뒤 아내의 종교인 바알·아세라교를 인정해, 종교 갈등을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런 아합이 어느 날 나봇의 포도밭을 탐내며 앓아눕는다(1열왕 21,4). 그러자 이제벨은 불량배를 시켜 나봇을 모함하고 죽인 뒤, 포도밭을 남편에게 주었다. 엘리야는 이 부도덕한 행실을 꾸짖으며, 아합 집안은 이스라엘에서 잘려나가고 이제벨은 개에게 먹히게 되리라고 예언한다. 그 뒤 쿠데타로 왕위를 차지한 예후가 이제벨이 창문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던 틈을 타 떨어뜨려 죽인다(2열왕 9,30-37). 그 시신은 엘리야의 예고대로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다.

창에 얽힌 사연은 궁정 남자에게도 나타난다. 이사악이 가뭄을 피하려고 그라르로 내려갔을 때, 그곳 임금 아비멜렉은 창밖을 보다가 레베카가 이사악의 아내임을 알게 되었다(창세 26,8). 바빌론 유배자로 살았던 다니엘은 눈부신 지혜를 드러내며 재상 자리까지 오르지만, 다른 귀족들에게 모함을 당한다(다니 6장). 그들의 음모로 신께 바치는 기도가 금지되었을 때도, 다니엘은 여전히 예루살렘 방향으로 난 창가에 장궤하고 기도를 올렸다. 이 용기 있는 행동에 탈무드는 다니엘의 모범을 본받아, 기도할 때는 항상 창 있는 곳에서 할 것을 권고했다(브라콧 31A).

위 이야기들은 모두, 고대에는 부유층만 집에 창을 두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비싼 건축재로 집을 지은 뒤 구멍을 내어 창을 만드는 작업은 가난한 이들이 누리기 힘든 사치였다. 다윗 임금 궁전 터에는 창문 유적이 보존되지 못했지만, 코라진이나 마싸다 등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지금은 창문이 일상의 일부지만,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이처럼 흥미로운 사연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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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6년 1월 24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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