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성경의 세계: 아브라함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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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02-25 | 조회수7,352 | 추천수1 | |
[성경의 세계] 아브라함 이야기 (1)
아브라함은 노아의 10대손이다. 칼데아 지방 우르에서 태어났다. 오늘날 이라크 남부지역이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만나는 삼각지로 인근에 바스라(Basra) 항구가 있다. 이라크 두 번째 도시다. 이곳에 살던 아브라함 가족은 어느 날 북쪽 하란으로 이주한다. 아버지 테라와 함께였다(창세 11,31). 하란에 익숙해졌을 때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는다.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겠다(창세 12,2). 당시 아브라함은 75세였다. 한창 노인의 나이다. 그런데도 말씀에 순종하며 미지의 세계로 떠났다.
그때까지 그의 이름은 아브람이었다. 아브(아버지)와 룸(높다, 귀하다)이 합성된 이름이다. 직역하면 귀하신 아버지다. 훗날 주님께서는 계약을 맺으면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바꾸게 하신다(창세 17,4-5). 뭇 민족의 아버지란 뜻이다. 아브는 아버지고 라함은 많은 민족을 가리킨다. 이렇게 해서 70대 중반 노인은 이름까지 바꾸면서 새 삶을 시도했다. 놀라운 일이다. 훗날의 신앙인이 감동하는 이유다.
이후 그에게 주어진 일은 끊임없는 여행이었다. 대가족이 딸린 식솔을 이동시키는 일이었다. 온갖 위험이 도사린 시도였다. 잠자리와 먹을 걸 매일 준비해야 했다. 외부 침입에도 늘 대비해야 했다.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맞았고 그때마다 하느님의 개입을 체험했다. 고통스러운 사건을 통해 주님의 사람으로 단련되어 갔던 것이다.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었다. 사마리아의 스켐에 머물 때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 대한 말씀을 듣는다. 이후 베텔의 산간 부락에 머물다(창세 12,8) 이스라엘 남쪽 네겝(Negev)으로 옮겼다. 그러다 흉년을 만나 이집트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아내 사라는 뛰어난 미모 때문에 이집트 왕(파라오)에게 불려가는 사건을 겪기도 했다(창세 12,15). 이후 이집트를 나와 네겝으로 옮겼고 다시 베텔에 머물게 된다(창세 13,3).
아브라함의 마지막 거주지는 헤브론이었다(창세 13,18). 이곳에서 가나안 땅 전체를 주겠다는 말씀을 받는다(창세 17,8). 약속의 실현으로 사라가 임신할 것도 알게 된다. 아브라함이 100살 될 때 이사악이 탄생한다. 정식 후계자의 출현이었다. 이후 헤브론에서 사라는 죽었고(창세 23,2) 아브라함도 숨을 거둔다. 헤브론은 성조(聖祖)들의 무덤이 있는 땅이 된다. 아브라함과 사라, 이사악과 레베카 그리고 야곱과 레아가 묻혔다. 이런 이유로 훗날 다윗은 이곳에서 기름 부음을 받고 왕으로 선언되었다. [2016년 2월 21일 사순 제2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아브라함 이야기 (2)
아브라함이 처음 머물렀던 곳은 하란이다. 하란(Haran)은 아카드어로 길목을 뜻한다. 교통의 요지란 말이다. 아카드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언어로 당시 이곳 중심도시가 아카드였기에 이렇게 불리었다. 하란은 처음부터 상업으로 번창한 곳이다(에제 27,23). 메소포타미아에서 지중해로 가는 중간도시로 통상로가 교차했기 때문이다. 달月신 숭배지로 유명했으며 이곳에서 발굴된 비석에는 티글랏 필에세르(2열왕 16,7) 왕이 달에게 제사 드리는 장면이 부조되어 있다. 그의 아들이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사르곤 2세다.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약속의 땅으로 가라는 말씀을 듣는다(창세 12,4). 부친 테라는 하란에서 죽어 그곳에 묻힌 뒤였다. 그런데 동생 나호르는 함께 떠나지 않고 하란에 머문다. 이렇게 해서 훗날 나호르 손녀 레베카는 이사악의 아내가 될 수 있었다(창세 24,15). 레베카의 아들 에사우와 야곱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에사우는 동생이 축복을 가로챘다며 죽이려했다. 놀란 레베카는 야곱을 하란의 친정으로 빼돌린다(창세 27,43). 야곱은 그곳에서 12지파 어머니가 되는 4명의 아내를 얻었다. 이렇듯 하란은 아브라함 가문이 4대에 걸쳐 연고를 맺은 곳이다.
세월이 흘러 가나안 정착 10년이 되었다. 사라는 여전히 임신하지 못했다. 그녀는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몸종 하가르를 취해 아이를 가지라고 청한다. 망설이던 아브라함은 결국 동의했고 86세에 아들을 얻었다(창세 16,15). 이스마엘이다. 하가르는 이집트 출신이었다. 나이가 어렸을 것이다. 아브라함 아이를 가지자 주인 사라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그 이유로 쫓겨난다. 광야에서 천사를 만났기에 돌아올 수 있었다. 주님의 부르심이었다. 이후 하가르는 이스마엘을 낳고 예전의 하가르가 아닌 모습으로 사라를 대한다.
하가르에 대한 기록은 없다. 아브라함이 이집트에서 얻은 종이라는 것뿐이다. 야훼신앙도 없었다. 천사의 보호가 없었다면 성경 무대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이스마엘도 천사가 알려준 이름이었다. 주님께서 들으셨다는 뜻이다(창세 16,11). 이스마엘이 태어나고 14년 지난 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사악을 낳는다. 정통 후계자였다. 사라는 이사악과 이스마엘이 함께 어울리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스마엘이 상속자가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스마엘을 지켜주셨다. 그 역시 아브라함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2016년 2월 28일 사순 제3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아브라함 이야기 (3)
하가르와 이스마엘을 내보내자는 사라의 청에 아브라함이 고뇌하자 주님께서 위로하신다. ‘그 여종의 아들도 네 자식이니 그도 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창세 21,13) 오늘날 유다인은 이스마엘을 베두인족 조상으로 여긴다. 이슬람에선 무함마드(마호메트) 직계 조상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이유로 예루살렘은 이슬람교 성지가 되었다. 아브라함과 연관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스마엘은 이스마일(Ismail) 아브라함은 이브라힘(Ibrahim)으로 발음한다.
아브라함은 재산 일부를 줘서 보냈다. 86세에 얻은 아들이었으니 허전했을 것이다. 이사악이 젖 뗄 무렵이었다(창세 21,8). 이스마엘은 16살 정도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 하가르와 함께 파란(pharan) 광야에서 살았다(창세 21,21). 시나이 반도 북동쪽에 있는 사막지대다. 이집트를 탈출했던 모세 일행이 정찰대를 보내기 위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민수 12,16). 이스마엘은 이집트 여인과 혼례를 맺고 부족을 이루며 살았다.
이스마엘을 보낸 후에도 아브라함은 아들로 인한 시련을 또 겪는다. 이번엔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이었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라. 그리고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창세 22,2) 성경엔 사라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아브라함은 사라와 상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얻은 아들인데 그를 죽인다 말입니까?’ 사라의 반대를 짐작했기 때문이다. 말씀을 들은 후 아브라함은 자신과의 싸움에 빠졌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바치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이튿날 번제물 사를 장작을 이사악 어깨에 지우고 담담히 떠난다. 시험은 끝난 상황이었지만 아브라함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사라는 127세에 헤브론에서 죽었다. 아브라함은 히타이트 사람에게서 땅을 매입해 아내를 안장했다(창세 23,19). 이후 아브라함은 재혼한다(창세 25,1) 크투라다. 그녀에게서도 아들 6명을 낳았고 재물을 나눠주며 동쪽 땅에서 살게 했다. 마침내 아브라함도 175세에 죽어 사라 곁에 묻혔다(창세 25,9) 창세기는 이사악과 이스마엘이 장례를 주도했다고 전한다. 아브라함 100살에 이사악이 태어났으니 그도 75살 노인이었다. 14살 연상인 이스마엘은 89세였다.
아브라함의 나이 175세는 가능한 나이였을까? 현대 의학으론 불가능한 나이다. 오래 살았다는 표현으로 봐야 할 것이다. 100세를 뺀다면 75세라는 말이 된다. 이 나이는 가능했을 것이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히브리인이라 불린 사람은 아브라함이었다(창세 14,13). [2016년 3월 6일 사순 제4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아브라함 이야기 (4)
사라는 아브라함 이복동생이었다(창세 20,12). 본래 이름은 사라이였고 90세에 사라로 바꿨다. 아들이 태어날 것이란 말씀을 듣고 바꿨다. 계약의 전수자를 낳을 것이니 새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었다. 고대 유목민의 경우 이름을 바꾸는 건 운명을 바꾸는 것과 같았다. 사라는 정실이었지만 아이를 낳지 못했다. 주님께서 후손을 약속했지만 임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약속이 자기완 무관하다며 체념했다. 나중엔 자녀를 얻기 위해 몸종 하가르를 아브라함에게 보낸다. 그녀가 임신하자 질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 사라가 이름을 바꾸고 새 삶을 시작한 것이다.
사라는 젊은 시절 매우 아름다운 여인으로 등장한다. 아브라함 일행이 흉년을 피해 이집트로 간 적이 있었다. 그곳 임금은 사라의 모습에 반해 왕궁으로 데려갔다(창세 12,15). 주님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왕궁에 주저앉았을 것이다. 사라의 히브리말 어원은 사라르(Sarar 다스리다)다. 사라는 몰랐지만 그녀의 삶은 철저하게 주님 계획아래 있었던 것이다. 젊은 나이에 아들을 낳았더라면 그녀 성격으로 보아 자만에 젖었을 것이다. 미모와 지적 능력을 갖췄기에 아브라함을 좌지우지했을지도 모른다.
주님께서는 사라의 임신능력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셨다. 더 이상 생리가 없게 되자 사라는 포기한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사악을 주셨다. 임신 가능한 상황에서 아이를 낳은 것과 불가능한 상황에서 낳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자신의 몸을 알고 있던 사라였다. 이름을 바꾸는 결단은 이렇게 해서 나타났다. 그런데 정말 90세에 낳았을까? 육체적 나이 90보다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생리가 끝나는 나이를 50대 중반으로 본다면 50대 후반으로 생각해도 될듯하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숫자가 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이사악이라 했다. 주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창세 17,19) 어원은 ‘웃다’ 동사다. 주님께서 사라의 임신을 알리자 아브라함은 엎드린 채 웃으며 생각한다. 90의 사라가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단 말인가(창세 17,17). 그러면서 이스마엘이나 오래 살게 해달라고 청한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진정한 웃음을 주고자 하셨던 것이다. 아랍 이름 가운데 가장 흔한 이름은 압둘라(Abdullah)다. 신(알라)의 종이란 뜻이다. 두 번째는 하산(Hasan)으로 선량한 사람을 뜻하고 후세인(Husayn)은 작은 하산이란 의미다. [2016년 3월 13일 사순 제5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아브라함 이야기 (5)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라. 그곳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창세 22,2). 말년의 아브라함을 혼란에 빠뜨린 말씀이다.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든 말씀이었을 것이다. 사라와 함께 끔찍이도 기다렸던 아들이다. 주시지 않는다고 포기했을 때 태어난 아들이었다. 그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 하신다. 아브라함은 죽음보다 더한 고뇌에 빠졌을 것이다. 번제(燔祭)는 직역하면 태우는 제사다. 제물을 죽여 피를 제단에 뿌린 뒤 불에 태워 연기가 올라가게 하는 제사다(레위 1,3-9).
아브라함은 말씀을 따른다. 모든 걸 받아드리며 아들과 함께 모리야 땅으로 간다. ‘아버지 물과 장작은 있는데 번제물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 창세기 22장 7절이다. 아브라함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이다. 그러나 담담하게 답한다. 주님께서 마련해 주실 것이다. 내적싸움은 이미 끝났음을 알 수 있다. 훗날 아브라함의 애환이 깃든 모리야 땅에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다.
솔로몬은 왕이 되자 수도 예루살렘의 확장을 원했다. 첫 시도가 성전을 지어 계약 궤를 모시는 일이었다. 아버지 다윗의 유언이기도 했다. 역대기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 모리야 산에 주님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곳은 주님께서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으로 본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었는데 다윗이 집터로 잡아 놓은 곳이었다.’(2역대 3,1)
모리야 산에는 역사적으로 세 번의 성전이 건축되었다. 솔로몬 성전과 즈루빠벨 성전 그리고 헤롯 성전이다. 솔로몬 성전은 기원전 10세기 7년의 공사 끝에 완공되었다. 전승에 의하면 이곳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려 했던 바위라 한다. 성전은 이 바위를 중심으로 지어졌다. 오늘날 황금색 돔으로 유명한 예루살렘 성전은 이슬람 모스크로 바뀌었다. 안에는 엄청나게 큰 바위가 있다. 솔로몬 시대부터 전해져 오는 제단 바위다. 회교도들은 이 바위에서 무함마드가 승천했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예루살렘을 메카와 메디나에 이어 이슬람 3대 성지로 여긴다.
솔로몬 성전은 400년간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기원전 586년 바빌론 침공으로 파괴되고 민중은 잡혀갔다. 바빌론 포로생활이다. 이후 바빌론을 정복한 페르시아는 유다인을 본국으로 돌려보냈다(BC 537년). 이렇게 해서 재건된 성전이 즈루빠벨 성전이다. 즈루빠벨은 초대 총독으로 5만의 포로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 재건을 지휘한 유다인이다. 그의 뒤를 이은 총독이 느헤미야다. [2016년 3월 20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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