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로마서 특강: 우리 조상 아브라함(로마 4,1-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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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03-11 | 조회수6,794 | 추천수1 | |
[로마서 특강] 우리 조상 아브라함(로마 4,1-25)
지난 호에서 로마서의 핵심 본문인 3,21-28을 함께 읽으면서 인간은 믿음을 통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의 의미를 성찰했습니다. 이번호에서는 로마서 4장에 나오는 아브라함 이야기를 함께 읽지요. 먼저 본문 전체를 낭독해보셔요. 4장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기 전에 믿음으로 의화되었습니다(4,1-8 참조). 그것은 할례(4,9-12)나 율법(4,13-17)과 상관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위대한 믿음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신앙의 모델이 됩니다.
하늘의 별 에리카 이야기
저는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일을 바꾸는 것이 휴식이라면 그림책 읽기는 저의 휴식이지요. 2주 전에 저의 그림책 멘토 선생님이 ‘에리카의 이야기(Erica’s Story)’라는 그림책을 건네주었는데 깊이 감동했습니다. 이 책은 에리카라는 유다 여인의 실화입니다. 이탈리아 그림책 작가 로베르트 이노첸스는 독일 로덴베르크 광장에서 가슴에 유다인을 상징하는 다윗의 황금별을 매단 에리카라는 여인을 만납니다. 이 책은 그녀의 이야기입니다. 1933~1945년에 6백만 명이나 되는 유다인이 나치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에리카는 1944년 어느 때 쯤 탄생했지요. 수용소로 끌려가던 에리카의 젊은 부모는 달리는 기차 안에서 아기 목숨을 살리기 위해 풀밭을 향해 아기를 던집니다. 아기는 친절한 아줌마의 돌봄으로 살아남고, 교육받고, 성장하여 가정을 꾸립니다.
이 그림책의 핵심은 세 아이의 엄마이자 손자손녀의 할머니 에리카의 마지막 말에 담겨 있습니다. “한때 우리 민족이 하늘 위에 별들처럼 많아질 거라는 얘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1933년과 1945년 사이, 그 별들 중에서 6백만 개의 별들이 졌습니다. 그 하나하나의 별은 잔인하게 생명을 빼앗기고 가족이라는 나무가 꺾어져 버린 우리 민족의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족은 다시 뿌리를 내렸습니다. 나의 별은 아직도 빛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별처럼 많아지리라고 한 약속을 에리카도 굳게 믿었습니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유다인들은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기억하기 위해 혼인할 때는 하늘의 별(아브라함의 별이겠지요!)이 내려다보이는 정원에 천막(후파)을 치고 식을 치릅니다.
바오로는 왜 아브라함을 소개하는가?
로마서로 다시 돌아갈까요? 바오로는 로마 3,21-31에서 인간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은총에 의해 의로워진다고 말한 후에 갑자기 구약의 아브라함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왜 그럴까요? 바오로가 보기에 아브라함은 3,21-31에서 말한 자신이 말한 내용을 지지해주는 성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는 4장에서 아브라함 이야기를 전할 때 의도적으로 창세기의 순서를 그대로 따라갑니다. 창세기 12-25장을 지금 천천히 통독해보셔요.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하란에 사는 유목민이었는데 늙은 나이에 가나안으로 가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떠납니다. 세겜, 베델, 헤브론, 그랄, 브엘세바를 거쳐 이집트까지 갔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지요. 그동안 온갖 역경을 물리치고 재산도 늘어나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영화를 물려줄 “자식 없이 살아가는 몸”(창세 15,2)인 자신의 신세를 탄식하게 됩니다. 그러자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오시어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이렇게 언약하십니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네 후손들이 그렇게 많아질 것이다.”(창세 15,5) 이어서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주셨다.”(창세 15,6)고 성서는 전합니다.
바오로는 아브라함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바오로는 4장 전체에 걸쳐서 창세 15,6을 토대로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에 대해 세심하게 작업합니다. 여기서 바오로가 아브라함을 소개하는 목적은 3,21-31의 내용, 곧 인간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자신의 주장을 아브라함 이야기로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오로와 동시대 유다인들도 아브라함을 이상적인 인물로 여겼지만 그 기준은 아브라함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그의 행위, 곧 그가 율법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창세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에 아무 말 없이 순종한 것은 유다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유다인들은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이 겪은 이 시련에 비추어서 창세 15,6을 시련을 통해 인정받은 충실함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창세 15,6을 당대 유다인들과 다르게 해석합니다. 바오로가 보기에 그런 아브라함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일반적인 사례가 될 수 없습니다. 바오로는 의화가 할례와 율법을 지키는 것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성경에서 근거를 찾습니다. 창세 15,6은 성경에서 신앙과 의화의 관계를 처음으로 설정하는 구절입니다. 바오로는 아브라함의 신앙에 관한 의로움 이야기(창세 15,6)는 아브라함이 시련을 겪게 되는 이야기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주목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시련을 겪기 전에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으며, 그것으로 하느님 보시기에 의로움의 지위를 인정받았다는 것이지요. 바오로는 시편 32편을 인용함으로써 아브라함 이야기에 대해 자신의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아브라함 믿음의 본질은?
바오로는 할례(4,9-12)나 율법(4,13-17 참조)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주제를 마치면서 마침내 4,18-25에서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말씀을 믿었던 상황으로 돌아갑니다. 바오로는 아브라함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처지에서도 하느님을 믿었다는 것, 그리고 하느님을 찬미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요. “그는 불신으로 하느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믿음으로 더욱 굳세어져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로마 4,20). 아브라함의 믿음의 본질은 그가 하느님 약속을 불신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어 문장을 보면 4,20에서 ‘하느님의 약속’이라는 말이 제일 첫머리에 나옵니다. 이 문장 구조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정확한 것, 바로 하느님의 약속에 바탕을 둔 믿음임을 보여줍니다.
로마서 4장에서 바오로가 소개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느님은 어떤 분이시라는 정확한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믿는 하느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알고 굳세게 믿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느님은 생명을 원하시는 분이시며 믿음을 통해 인간을 살리시는 분, 믿음을 통해 꽃처럼 그의 인생이 활짝 피어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믿는 분, 곧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로마 4,17). 하느님은 어떤 분인지 알고 나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더욱 굳세어지고 성장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느님의 약속과 겉으로 보이는 것 사이의 갈등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방해를 극복한 데서 비롯됩니다.
아브라함은 굳세어지는 믿음으로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이 말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다.”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느님께 영광을 바친다.”라는 말은 아브라함처럼 오로지 하느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의 자세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로마 4,20에서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영광을 바친다는 것은 이런 일반적인 의미보다 더욱 구체적인 것, 곧 아브라함의 ‘믿음’을 더욱 깊게 표현하고 불신앙과 반대되는 기능을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이 약속을 끝까지 완성하실 능력이 있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믿음이 굳세어져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의롭다고’ 인정받은 이입니다(창세15,6). 바오로가 아브라함을 의화의 모델로 소개하는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늘의 별, 우리 이야기
우리는 로마서 4장의 아브라함에게서 참된 믿음을 배웁니다. 믿음은 내가 먼저 결단을 내리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인 하느님이 어떤 분인 줄 알고 그분이 우리에게 보내시는 일상의 표징들에 진실하게 응답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세는 바로 이런 믿음을 우리에게 가르치기에 유다인이든지 그리스도인이든지 하느님을 섬기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 조상 아브라함”(로마 4,2)이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동등하다면 바로 비슷한 종류의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죽음이 지배하는 곳에서도 생명을 일으키시는 분이 하느님이라는 사실에 바탕을 둡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은 죽은 이들 사이에서 일으켜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매우 가깝습니다.
아브라함은 우리가 하느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으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허공을 치는 권투선수처럼 목표를 잃고 달릴 위험이 있다는 것, 믿음 없이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순수한 믿음 자체가 하느님께 보다 큰 영광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게 내어 맡기는 것이 참된 의화라고 말하는데 바로 이런 삶의 표본을 아브라함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다인 에리카는 6백만 명의 동족 학살이라는 참극을 당했으면서 “나의 별은 아직도 빛나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별도 하늘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분 말씀에 순종하며 사랑으로 실천하며 응답하는 사람은 아브라함처럼 하늘의 별처럼 많은 믿음의 자손을 낳을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아버지 아브라함이시여, 우리도 그런 신앙의 은총을 얻을 수 있게 기도해주소서. 아멘!
[평신도, 2015년 가을호(VOL.49), 임숙희 레지나(엔아르케 성경삶연구소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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