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성경의 세계: 야곱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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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03-28 | 조회수9,550 | 추천수1 | |
[성경의 세계] 야곱 이야기 (1)
야곱은 이사악과 레베카의 아들이다. 레베카 역시 시어머니 사라처럼 늦도록 아이가 없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약속의 말씀을 믿으며 기다렸고 마침내 쌍둥이 아들을 얻었다. 선둥이는 에사우였고 후둥이는 야곱이었다. 당시 이사악은 환갑의 나이 예순이었다(창세 25,26). 야곱은 영악했다. 사냥에서 돌아온 형 에사우가 팥죽을 요구하자 장자권(長子權)을 요구하며 버틴다. 허기졌던 에사우는 승낙하며 팥죽을 먹었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 운명은 바뀐다. 에사우는 야곱 말을 귓가로 흘렸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 봐야 바뀔 수 있냐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야곱은 달랐다. 장자권이 확보되면 후계자 계승권을 받을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디어는 어머니가 제공했을 것이다. 두 사람 계획은 적중한다. 레베카는 눈이 어두워 분별력이 떨어진 이사악으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아낸 것이다. 아버지의 계승권이 둘째인 야곱에게 내리도록 수를 쓴 것이다.
야곱 이야기는 어딘가 어색하다. 하느님 축복을 속임수로 받아냈기 때문이다. 당연히 에사우는 분노했다. 동생을 죽이려했다. 아버지 이사악 역시 밝은 마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축복이 가능할까? 더구나 이들은 이스라엘 출발이 되는 사람들이다.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선善해야 하는 것 아닐까? 두 가지 교훈이 숨어 있다고 한다. 첫째는 하느님 계획을 인간적 판단으로 계산 말라는 것이다. 야곱이 불의하게 축복을 가로챈 듯 보이지만 처음부터 주님의 선택은 야곱에게 있었다는 것이다(창세 25,19). 다음은 약속을 지키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알리려는데 있다. 영악한 야곱이지만 축복을 허락하셨다.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지키신 것이다. 야곱이 잘났거나 에사우가 못나서 그런 것은 아니다. 불의하게 장자권을 이어받았지만 아브라함 후계자가 되었기에 축복을 이어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에사우는 야곱을 죽이려 했다. 유목사회에서 형제간 살인은 흔한 일이었다. 레베카는 야곱을 하란의 친정으로 보낸다. 메소포타미아 북쪽으로 피신시킨 것이다. 고생길이었다. 하지만 베텔을 지나면서 하느님 체험을 만난다(창세 28,19). 이 사건을 계기로 야곱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축복을 믿게 된다. 가장 힘든 순간에 가까이 계시는 주님을 깨달은 것이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 머물면서 야곱은 외사촌 라헬을 사랑하게 된다. 그녀를 아내로 맞으려 14년을 기다린다. 더 이상 연약한 야곱이 아니었던 것이다. [2016년 3월 27일 예수 부활 대축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야곱 이야기 (2)
야곱은 하느님의 축복에 도전하는 삶을 살았다. 어머니에 의지하던 초기의 약한 모습과는 달리 적극적이었다. 기어이 형 에사우를 따돌렸고 객지에서도 성공했다. 그랬기에 네 명의 아내와 열 명이 넘는 아들을 대동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라헬을 얻기 위해 14년을 버티었고 천사와 맞붙어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기도 했다. 축복이 현실화되도록 노력했던 인물이다. 그의 일생은 현실 타개를 위한 끈질긴 고투였다.
어느 날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난다(창세 31,21). 가족과 가축을 데리고 가지만 알리지 않는다. 뒤늦게 안 라반은 야곱을 따라잡고 말한다. 어찌 이럴 수 있는가? 왜 나를 속이고 몰래 달아나는가?(창세 31,27) 야곱은 당당히 항변한다. 온갖 고초를 겪으며 20년간 일했던 과거를 따진다. 14년은 두 딸을 얻으려, 6년은 가축을 얻으려 일했던 지난날이었다. 외삼촌이자 장인이었던 라반은 수그러들며 평화조약을 맺고 돌아갔다.
야곱이 사랑했던 첫 여인은 라헬이었다. 혼인을 위해 7년을 일했다. 부친의 조건이었다. 그러나 7년 후의 혼인은 라헬이 아닌 언니 레아였다. 아버지가 동생 대신 언니를 첫날밤 들여보낸 것이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까? 야곱은 다시 7년을 일한 뒤 라헬을 아내로 맞이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였음을 암시하는 사건이다. 이후 6년은 주님께서 함께하신다. 재산을 모았고 하는 일마다 복이 뒤따랐다.
야곱은 형 에사우를 만나러 간다. 먼저 사람을 보내 형을 주인으로 자신은 종으로 표현했다. 최대한 낮춘 것이다. 에사우가 병사를 거느리고 오는 걸 알자 수백 마리 가축을 선물로 준비했다. 400마리가 넘는 양과 염소, 50마리 소와 30마리 낙타였다. 보복이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에사우는 야곱을 따뜻이 맞이했고 선물도 돌려보냈다. 장자권에 연연하던 편협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에사우는 태어날 때 살갗이 붉고 털이 많았다(창세 25,25). 남자답게 태어났다는 표현이다. 사냥꾼이 되었다고 성경은 전한다(창세 25,27). 야곱을 만난 뒤 세이르(Seir) 지방에 들어가 살았다(창세 36,8). 오늘날 사해 동쪽 산악지대다. 창세기는 에사우를 에돔족 조상으로 보고 있다(창세 36,43). 40세에 히타이트 여인과 혼인했고(창세 26,34) 뒤이어 히브리 여인도 아내로 맞이했다(창세 28,9). 그에게도 주님의 축복은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2016년 4월 3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야곱 이야기 (3)
야곱의 또 다른 이름은 이스라엘이다. 주님께서 주신 이름이다. 창세기 32장에 나온다.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 고향을 향하던 야곱은 잠시 혼자가 된다. 상념에 잠겨있던 그를 천사가 찾아와 흔든다. 씨름했다는 표현이다. 처음엔 천사가 주도권을 잡지만 시간이 지나자 야곱이 주도권을 쥔다. 시간에 쫓기자 천사는 엉덩이뼈를 치고 빠진다(창세 32,26). 야곱이 축복을 달라며 물고 늘어졌기 때문이다. 이후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는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이제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창세 32,29)
이스라엘은 이스라(Isra)와 엘(El)의 합성어다. 엘(El)은 전통적으로 하느님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스라(Isra)는 다스리다, 주도(主導)하다는 동사가 원형이라 한다. 직역하면 주님께서 다스리고 주도한다는 뜻이다. 하느님과 겨루었다는 뜻과는 거리가 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돌아보면 야곱은 누구와 겨루든 끈질기게 버티어 목적을 이뤄냈다. 형 에사우와 그랬고 외삼촌 라반과도 그랬다. 천사에게도 집요하게 부딪쳐 축복을 받아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다. 하지만 이젠 삶을 바꾸라는 것이다. 예전 야곱처럼 물고 늘어지는 삶을 살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줬다. 이제는 주님께서 주도하는 인생으로 살라는 의미였다.
이후 이스라엘은 야곱 후손인 유다인을 뜻하거나 그들이 세운 국가를 가리켰다. 솔로몬이 죽자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라진다. 북쪽은 수도를 사마리아로 정하고 이스라엘 국호를 선점했다. 남쪽은 어쩔 수 없이 유다국이란 새 이름을 선택한다. 하지만 북 왕조는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 정복되어 사라진다. 남쪽은 잠시 이때 이스라엘이라 했지만 바빌론에 무너지고 백성은 포로가 된다. 훗날 페르시아는 이들을 해방시키면서 이스라엘 명칭을 허락했다.
기원후 70년 로마가 예루살렘을 정복하자 유다인은 끈질기게 저항한다. 하지만 두 차례 독립전쟁의 패배로 팔레스티나에서 쫓겨난다. 로마는 이들이 이스라엘 명칭을 사용하는 것도 금지시켰다. 1948년 5월 유엔은 지금의 이스라엘 국가를 태동시켰다. 숨어 있던 유다인 세력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인근 팔레스타인 국가는 인정하지 않았다. 국가인준이 시작된 그 날 밤 바로 침공했다. 두 민족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유다인은 고난의 대명사에서 이제는 다른 의미로 바뀌고 있다. [2016년 4월 10일 부활 제3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야곱 이야기 (4)
야곱의 이름 해석엔 두 이야기가 있다. 첫째는 창세기 기록이다. 태어날 때 쌍둥이 에사우의 발뒤꿈치를 잡고 있어 야곱이라 불렀다는 것(창세 25,26). ‘뒤꿈치를 잡은 자’란 뜻이다. 경쟁적 이미지를 담고 있다. 또 하나는 주님의 보호라는 야아코벨(Ya aqovel) 단어에서 왔다고 본다. 어원적 해석이다. 구약의 히브리어는 야고프(Yaaqov) 신약의 희랍어는 야코보스(Iakobos) 라틴성경은 야코부스(Iacobus) 영어는 제이콥(Jacob)과 제임스(James)다.
[성경의 세계] 야곱 이야기 (5)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 인근 우물가에서 라헬(Rachel)을 만난다(창세 29,11). 양떼를 몰고 등장한 여동생이었다. 첫눈에 운명 같은 인연을 직감한다. 라반이 품삯을 거론하자 야곱은 라헬과의 혼인을 청했다. ‘라헬을 주신다면 칠 년간 일하겠습니다.’ 유목사회 혼인에선 남자가 지참금을 냈다. 딸을 시집보내면 그만큼 노동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노역으로 대신할 수 있었다. 가진 게 없던 야곱은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칠 년 뒤 첫날밤을 지낸 신부는 언니 레아(Leah)였다. 외삼촌은 야곱을 속였던 것이다. 우리 고장에선 작은딸을 맏딸보다 먼저 주는 법이 없다네. 초례주간 채우고 다시 칠 년을 일한다면 라헬을 주겠네(창세 29,26). 초례주간은 7일이다(판관 14,12). 야곱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초례주간 7일을 지내면서 야곱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무튼, 7일 후 그는 라헬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다(창세 29,28). 다시 7년을 더 일한다는 조건으로.
정말 야곱은 레아를 라헬인 줄 알고 첫날밤을 지냈을까? 추측은 가능하다. 우선 외삼촌이 신부를 바꾸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야곱은 순수했고 라반은 노련했다. 다음은 당시 풍습이다. 유목사회에선 신부가 베일로 온몸을 가리고 신방에 들어갔다. 레아는 아버지 계획에 동의했을 것이다. 그녀 역시 야곱을 좋아했다는 증거다. 당연히 라헬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한편 야곱에겐 7년을 기다린 혼인이었다. 잔치에서 술을 많이 마시고 취했을 것이다. 장인 또한 엄청 권했을 것이다. 하지만 레아가 첫 부인이 되는 건 섭리였다. 그녀 아들 유다가문에서 메시아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레아는 아들 6명을 낳았다. 르우벤, 시메온, 레위, 유다, 이사카르, 즈불룬이다. 건강한 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야곱보다 먼저 죽었고 아브라함과 이사악이 묻힌 막벨라 묘소에 안장되었다(창세 49,31).
라헬은 늦게 아들을 낳는다.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이다. 하지만 막내 벤야민을 낳다가 죽는다(창세 35,19).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므나쎄와 에프라임을 자신의 아들로 선언해 12지파 시조가 되게 했다. 라헬에 대한 아쉬움이었을 것이다. 요한복음엔 야곱의 우물이 등장한다. 사마리아 시카르 도시에 있었다(요한 4,6). 야곱이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곳이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눈 우물로 유명해졌다. 훗날 사마리아 여인은 초대교회 신자가 되었고 순교했다. 성녀 포티나(Photina)다. [2016년 4월 24일 부활 제5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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