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구약 여행63: 다니엘에게 말씀이 계시되었다(다니 1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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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04-04 | 조회수6,452 | 추천수1 | |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63) “다니엘에게 말씀이 계시되었다”(다니 10,1) 묵시문학, 그저 ‘이상한 책’만은 아냐
- 가브리엘 천사가 다니엘에게 환시를 풀이해 주다. 렘브란트 작 ‘다니엘의 환상’ 부분.
어렸을 때에 어느 날 저녁 유난히 붉게 물든 저녁놀을 보면서, 혹시 종말이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요한 묵시록의 내용이 생각났던 것이지요. 잘못 이해했던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묵시문학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묵시문학은 무엇일까요? 쉬운 질문이 아닙니다. 요한 묵시록이 묵시문학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그러나 묵시문학이 무엇인지 물으면 누구도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묵시문학을 어떻게 정의해야 좋을지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단, 묵시록이라는 단어는 요한 묵시록 첫머리에서 나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묵시 1,1). 여기서 ‘계시’로 번역된 단어가 다른 곳에서 ‘묵시록’, ‘묵시’로 번역되는 ‘아포칼립시스’입니다. 가려져 있는 것을 열어 보인다는 뜻입니다. 알지 못하는 것이 알려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묵시문학이라고 할 때에는 그러한 일반적인 의미보다는 더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특정한 형태로 된 문학 작품들이 여기에 속하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구약의 다니엘서와 신약의 요한 묵시록이 묵시문학에 해당하지만, 묵시문학 작품은 이 둘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많은 묵시문학 작품들이 생겨났고, 묵시문학은 이 시대의 특징적인 현상이었습니다.
대략이나마 묵시문학을 정의해 본다면, 묵시문학에서는 한 인물에게 어떤 초월적인 내용이 전달됩니다. 그 내용은 시간적으로는 종말의 일들과 관련된 경우가 많고, 공간적으로는 천상이나 다른 어떤 세계를 보여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우가 많다”는 표현을 되풀이하여 사용하는 것은, 모든 묵시문학에 공통된 특징이라는 것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하게 단정 지어 규정하다 보면 요한 묵시록은 묵시록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든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게 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흔히 나타나는 특징들을 열거해 볼 뿐입니다. 또 많은 경우는, 계시를 받는 사람이 그 받은 내용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천사나 다른 어떤 존재가 해석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니엘서에는 천사가 자주 등장하지요. 그만큼 계시의 내용이 신비롭다는 점을 강조하는 장치입니다. 환시를 본 사람 자신도 알아듣기 어려울 만큼 신비로운 내용이, 특별한 계시를 통하여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묵시문학은, 어떤 면에서는 예언서들과 유사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차이를 보입니다. 예언서들에서도 환시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지요. 아모스도 환시를 보았고 예레미야도 환시를 보았습니다. 특히 묵시문학에 가까운 것은 즈카르야의 환시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시대적으로도, 예언이 사라져가는 무렵에 묵시문학이 생겨나 꽃을 피우게 됩니다. 여기서도 대략 이야기를 해 본다면, 우리는 유배에서 돌아온 후 예언자들이 점점 종말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모스와 같은 유배 전 예언자도 ‘주님의 날’에 대해 말한 일이 있지만, 즈카르야와 말라키 등 마지막 예언자들에게서는 종말이 점점 더 중요한 주제가 되어 갔습니다. 묵시문학은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묵시문학에서의 종말은, 예언서에서보다 분명하게 현재의 세상과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여러 예언자가 심판을 예고했지만, 그들이 예고한 것은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의 멸망 등 많은 경우 역사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깊은 영향을 남긴 사건들임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묵시문학에서는 다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종말은 이 세상의 역사가 끝나고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시작됨을 의미합니다. 역사의 흐름이 단절되는 것입니다.
묵시문학의 다른 특징들로는 상징들을 통하여 표현한다는 것과 과거의 권위 있는 인물을 저자로 내세운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상징들은 요한 묵시록에서 많이 볼 수 있고, 다니엘서도 여러 가지 상징들을 사용합니다. 환시에 등장하는 여러 동물, 색깔과 숫자들 등은 모두 무엇인가를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묵시문학에서는 실제 저자가 아닌 인물을 저자로 내세웁니다. 대개 창세기의 에녹과 같이 매우 오랜 고대의 인물을 저자로 제시하거나 아니면 이미 확고한 권위를 가진 어떤 인물을 내놓습니다. 이렇게 다른 인물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그 권위에 의지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상징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직접적인 표현을 피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수단들을 사용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일단은 묵시문학의 내용이 현재 상황에서 내놓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다니엘서가 작성되던 시기에 당시의 지배자였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의 몰락을 말한다거나 요한 묵시록이 작성되던 시기에 로마의 멸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에 분명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특수한 형태의 책인 묵시문학의 역할은, 단순히 미래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역사 전체를 하느님의 시각에서 새롭게 바라보게 함으로써 앞이 보이지 않는 현재를 하느님의 계획 일부로 이해하게 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다니엘서나 요한 묵시록을 보면서 우리는 그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책이라고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저자와 독자들에게 이 책들이 지닌 의미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틀림없이 알아들을 수 있었고, 이 책들이 말해 주는 역사 이해는 그들에게 어두운 시대를 견딜 수 있는 희망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4월 3일,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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