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이사야 신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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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04-05 | 조회수6,627 | 추천수1 | |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이사야 신학?
스위스의 여러 민족들은?
그들은 라틴계 게르만계 할 것 없이 서로 생각이나 생활습성뿐 아니라 언어까지 다르면서도 서로를 이해해주려는 마음, 받아들여주고 배려하는 마음, 사랑과 관용의 정신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그들 문화와 전통의 바탕에는 겉으로는 쉽게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 신앙이 깔려있 습니다. 그러한 영성을 바탕으로 오늘의 스위스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이사야의 선포대로 인간에게가 아니라 주님께 의지하는 법을 깨우쳤습니다.
제1이사야의 신학을 몇 가지로 요약한다면?
위대한 예언자 이사야의 신학을 간단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봅니다. 첫째로 하느님을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으로 묘사한다는 점입니다. 둘째로 이사야는 하느님에 대한 순종을 요구합니다. 셋째로 인간의 나약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나약성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강자에게 의존하려는 성향과 다른 하나는 자신을 드러내려거나 과대평가하려는 교만으로의 성향입니다.
이사야 신학의 첫째 특징은?
하느님을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로 묘사합니다. 이사야는 부르심 받을 때 그분을 ‘거룩하신 분’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섰을 때 얼떨결에 스랍들 곧 천상존재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외치는 환호소리를 듣게 됩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이사 6,3ㄴ) 이사야는 훗날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질책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바라보지도 않고 주님을 찾지도 않는다.”(이사 31,1ㄷ)
여기서 이사야가 말하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이스라엘 민족만을 보살피시는 분을 이르는 표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선택된 민족으로서 다른 민족에 앞서 긴 역사적 과정 안에서 직접적, 간접적으로 하느님 자비와 구원을 체험해왔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곧 ‘이스라엘의 하느님’이나 다름없이 자신을 선택하신 하느님과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 간의 고유한 관계성을 말해줍니다. 이사야가 체험한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인간을 떠나서 존재하는 그런 거룩함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 대한 그분의 자비로운 모습을 계시해주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향해 언제나 정의를 실천하시는 분으로 이해하며 그래서 이스라엘 또한 그분을 향해 정의롭게 살기를 요청하시는 분으로 체험합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정의는?
그 정의가 곧 오늘날 사람들이 흔히 일컫는 사법적 정의 개념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정의는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나아가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펼쳐지는 개념입니다. 곧 외적 행위뿐 아니라 행위가 시작되는 마음 자세까지 포함하여 거기서 나오는 모든 행위의 과정과 그 결과를 포괄적으로 이르는 넓은 개념입니다.
한 구절을 예로 든다면?
“주님께서는 정의를 실천하시고 억눌린 이들 모두에게 공정을 베푸신다.”(시편 103,6) 이 구절에서 ‘주님께서 이루시는 정의’는 곧 그분의 구원행위 일체를 다 일컫는 개념입니다. 이 시편의 하느님은 억눌린 이들과 맺으신 계약을 충실히 실현하심으로써 그들에게 구원을 선사하시는 분으로 우뚝 서 계십니다.
이사야의 예언활동은?
그의 예언활동 목표는 자신이 체험한 ‘거룩하신 분’께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악 때문에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버렸다고 예언자는 확신했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죄로 인해서 하느님과의 관계가 아주 빗나갔으며 삐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 선민 이스라엘에게 지금 또 앞으로 무엇을 바라시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슨 계획을 전개하실 지를 깨우쳐주고자 합니다.
이사야 신학의 두 번째 특징은?
하느님께 대한 순종입니다. 이사야는 선민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인해 그분과의 관계가 어긋났음을 고발합니다.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7,9ㄴ)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한마디로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며 이스라엘은 그분 백성이라는 사실에 기초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은?
단지 외적인 관계에서 끝나지 않고 마치 부모와 자식처럼 이 둘은 서로 끊어서도 안 되며 끊을 수도 없는 근본적인 실존의 관계입니다. 이사야는 배반한 이스라엘을 두고 한탄하시는 주님 모습을 전합니다. “내가 아들들을 기르고 키웠더니 그들은 도리어 나를 거역하였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제 주인이 놓아 준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1,2ㄴ-3)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이 무엇인지 다음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들은 거역하는 백성, 거짓된 자식들이며 주님의 가르침을 들으려 하지 않는 자식들이다.”(30,9)
이스라엘의 순종은?
마지못해서 하는 억지순종이 아니라 맘속으로부터 우러나와서 하는 능동적 순종, 즐겨 귀 기울임, ‘적극적 주님말씀경청’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분 말씀에 가치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는 예전에 그들[그릇된 사제들과 예언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곳은 안식처이니 고달픈 이들을 편히 쉬게 하여라. 이곳은 쉼터이다.’ 그러나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28,12)
이사야의 경고?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그분께 순종하지 않는 태도와 그런 태도의 결과는 예언자가 다음에서 답을 줍니다. “백성들은 서로가 서로를, 저마다 제 이웃을 괴롭히고 젊은이가 노인에게, 천민이 귀인에게 대들리라.”(3,5) 2700여 년 전에 이사야가 앞을 내다보고 선포한 말씀이 오늘 우리 현실을 깨우쳐주고 있지 않습니까? “불행하여라, 도움을 청하러 이집트로 내려가는 자들! 군마에 의지하는 자들! 그들은 병거의 수가 많다고 그것을 믿고 기병대가 막강하다고 그것을 믿으면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바라보지도 않고 주님을 찾지도 않는다.”(31,1) 벌써 그 옛날 이사야는 외적인 힘에만 매달리는 오늘 우리 현실을 내다보았습니다. 아니면 그 시절에도 오늘도 꼭 같은 일이 되풀이 되는 것일까요?
이사야 신학의 세 번째 특징은?
인간의 교만을 고발합니다. 이스라엘이 눈에 보이는 것, 가시적이고 현세적인 것에만 전적으로 의지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하느님을 뒷전으로 밀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교만의 죄가 인간 내면에서 고개를 들게 됩니다. 이사야는 남자들은 물론이고 여자들까지 교만으로 가득 차 있다고 고발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시온의 딸들이 교만을 부리고 목을 빼고 걸어 다니면서 호리는 눈짓을 하고 살랑살랑 걸으며 발찌를 잘랑거린다.’”(3,16)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4월호, 글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작전동성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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