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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 여행64: 신비를 드러내시는 하느님(다니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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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4-11 조회수6,367 추천수1

[안소근 수녀와 함께하는 구약 여행] (64) “신비를 드러내시는 하느님”(다니 2,28)


인간 역사의 흐름을 쥐고 계신 하느님

 

 

- 안토니오 프란시스코 리스보아, 다니엘 상.

 

 

제가 만일 어떤 인물에 대한 소설을 쓰는데 주인공의 이름을 놀부라고 한다면, 읽는 이들은 그 이름만 보고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하겠지요. 다니엘서의 저자도 그와 비슷한 일을 했습니다. 다니엘은 고대 근동의 전설들에도 등장하는 인물이고, 에제키엘서 14장 20절에도 다니엘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은 이미 다니엘이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었고, 저자는 그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다니엘서를 쓴 것입니다.

 

다니엘서에서는 주인공 다니엘이 여호야킴 제3년(기원전 606년)부터 페르시아의 키루스 제3년(기원전 536년)까지 했던 활동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기원후 3세기부터 이 책의 실제 작성 연대가 기원전 2세기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 때라는 의견이 제시되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시대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예견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가 기원전 167년에 예루살렘 성전을 모독한 사건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암담한 박해의 시대에 다니엘서는, 이 세상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를 말해 줍니다.

 

다니엘서 2장에서는, 이 책이 세상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잘 보여 주는 대목이 나옵니다.

 

다니엘은 바빌론에 유배를 갔지만 그곳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왕궁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꿈에 “머리는 순금이고 가슴과 팔은 은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청동이며, 아랫다리는 쇠이고, 발은 일부는 쇠로, 일부는 진흙으로”(2,32-33) 되어 있는 신상을 보는데,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는데 돌이 그 신상을 쳐서 부수어 버립니다. 임금은 꿈의 내용을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채 꿈을 해몽하라고 바빌론의 현인들을 다그칩니다. 그들은 꿈의 내용을 모르고서는 해몽을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임금은 그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위협합니다. 이때에 다니엘이 나타나 그 꿈을 알아맞히고 그 의미도 풀이해 줍니다.

 

다니엘이 네부카드네자르에게 풀이해 주는 바와 같이, 네부카드네자르가 꿈에 본 신상은 네부카드네자르와 그의 뒤를 이을 왕국들을 가리킵니다. 부분적으로 의견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 대략 그 신상은 바빌론, 메디아, 페르시아, 그리고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봅니다. 사람이 손을 쓰지 않았는데 돌이 날아와 신상을 부서뜨린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직접 개입하시어 인간 제국들의 역사를 끝내심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에는 하느님께서 세우실 한 나라가 영원히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네부카드네자르는 왜 먼저 꿈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그는 자신의 왕국이 멸망하리라는 예고에도 놀라지 않고, 오히려 꿈을 알아맞히고 해몽을 하는 다니엘의 지혜에 탄복합니다. 다니엘의 풀이를 들은 다음 네부카드네자르가 하는 말은 그의 왕국의 운명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그대들의 하느님이야말로… 신비를 드러내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그대가 이 신비를 드러낼 수 있었다”(2,47)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2장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 측면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다니엘서가 묵시문학으로서 지니는 특성입니다. 묵시문학에서는 감추어진 신비가 어떤 사람에게 계시된다고 했지요. 네부카드네자르에게는 꿈을 통하여 계시가 주어지고, 다니엘에게는 “밤의 환시 중에”(2,19) 신비가 드러납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감추어진 신비를 드러내 보이신다는 것은 묵시문학의 기본 전제입니다.

 

둘째는, 꿈의 내용이 보여주는 역사관입니다. 그 꿈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관한 것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 일들을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이 점 역시 여러 묵시문학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역사의 흐름은 결정되어 있고 거기에는 분명한 끝이 있습니다. 특히 그 신상이 머리는 순금이지만 아래로 갈수록 점점 가치가 떨어지는 재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인간의 역사가 점점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이 세상에 악이 점점 더 증가하며 그 악한 세상을 하느님께서 끝내시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꿈의 내용에 따르면, 다니엘서가 작성된 시기인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 시대는 악이 더할 수 없이 커진 시대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심판도, 이 세상의 끝도 임박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다니엘서의 하느님이 역사의 흐름을 쥐고 계신 분이시라는 점입니다. 환시를 통해 다니엘에게 신비가 드러난 다음 그는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지혜와 힘이 하느님의 것이니 하느님의 이름은 영원에서 영원까지 찬미받으소서. 그분은 시간과 절기를 바꾸시는 분, 임금들을 내치기도 하시고 임금들을 세우기도 하시며 현인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예지를 아는 이들에게 지혜를 주시는 분이시다”(2,20-21). 여기에 다니엘서 2장의 신관이 요약돼 있습니다. 하느님은 다른 어떤 존재에 의해 결정된 바를 통보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행하시는 일을 알려 주시는 것이며, 사람들의 눈에는 감추어져 있는 당신의 계획과 당신의 통치를 드러내 보이십니다. 인간들의 왕국을 무너뜨리고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하늘의 하느님”(2,44)이시기에, 누구도 흔들어놓을 수 없는 당신의 주권을 드러내십니다.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가 성전을 모독한 시대는, 악이 가득하여 온 세상이 캄캄하던 때였습니다. 묵시문학인 다니엘서는 그 짙은 어둠 속에서, 이제 하느님의 결정적 개입으로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을 불어넣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4월 10일,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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