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바오로 영성의 주제들: 하느님의 자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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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04-20 | 조회수6,397 | 추천수1 | |
[바오로 영성의 주제들] 하느님의 자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산과 들이 생명의 싹을 틔우는 요즘 사순시기를 지내며 ‘죽음과 부활’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지난 호에서 우리는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하느님의 자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나누어 보겠습니다. 바오로는 하느님의 자녀는 아담을 따르는 삶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으로 넘어가려고 노력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체험으로 이해하는
지난 2월 예루살렘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유다인 대학살) 기념관에서 주최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역사 교육’이라는 워크숍에 참가했습니다.
야외에 여러 조형물이 있는데 특히 제 시선을 끈 것은 희생자를 상징하는 두 개의 큰 부조였습니다. 한쪽에는 고개를 푹 숙이고 힘없이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는 유다인들의 슬픈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그들의 얼굴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주님의 종’(53장)의 얼굴처럼 보였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억압에 맞서 싸운 사람들을 상징하는 투사들이 새겨져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나 로마 신화에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하늘을 보고 있는데 죽음에서 부활한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그 부조를 바라보면서 인간은 상황에 영향을 받지만, 그 상황에 종속되지 않는 자유와 존엄성을 지닌 존재라는 점, 인간의 기도가 하느님께 올려지지 않는 장소는 없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아담과 그리스도
바오로는 부활에 비추어서 인간을 이해했습니다. 부활하신 분을 믿는 인간은 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주제를 잘 다룬 본문이 로마 5-8장입니다. 바오로는 로마 1-4장에서 인간의 구원 방법, 곧 인간은 일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제 5-8장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로마 5-8장을 읽는데 도움이 되는 배경은 창세 1-3장에 나오는 아담의 불순종 이야기입니다. 바오로는 5-8장의 핵심 내용을 요약한 5,12-21에서 독자들이 ‘아담’이라는 이름을 통해 창세 1-3장에서 말한 인간의 창조와 타락 이야기를 떠올리기를 기대합니다. 아담은 인류의 원조지만,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세상에 죄와 죽음을 들여오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바오로는 죄의 보편성과 죄와 함께 죽음의 지배가 세상에 들어왔다는 것을 말하려고 아담의 죄에 대해 말합니다(5,12-14).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예형입니다”(5,14). 바오로는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한 최초의 그리스도인입니다. 바오로는 이 비교를 위해 구약성경 본문을 혁신적으로 사용합니다.
바오로가 생각하는 구세사 개념에서는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의 극적인 비교가 가능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처음에 아담을 창조하시어 인류가 지속하기를 바라셨듯이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을 창조하시기 때문입니다(창세 2,7).
아담은 인간의 원형이 되어야 했지만, 하느님의 법규를 어김으로써 자신의 소명에 실패했습니다. 로마 5,12-21에서 바오로는 창조보다 타락하고 변질한 인간으로서 아담에 초점을 맞춥니다. 아담은 불순종과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안에 갇혀 성장이 멈춘 인간, 생명력을 상실하여 어떤 생명도 꽃피울 수 없는 인간, 변화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 인간입니다. 또한 “나는 사람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시니 나는 그분처럼 살 수 없어. 변화는 불가능해.”라고 말하는 인간입니다.
새 아담 그리스도는 첫 아담이 실패한 곳에서 성공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아담의 불순종과 확연히 대조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의 인간상과 대조되는 새로운 인간상을 시작하십니다. 의로운 행위를 실천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지향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오로가 그리스도 체험을 한 뒤에 아담의 체험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오로는 삶의 목적인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깊어질수록, 그에 비례하여 자신 안의 아담적 성향들을 더욱 예민하게 의식했을 것입니다. 물이 맑으면 밑바닥까지 보이지만 물이 요동을 치고 탁하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로마 5,12-21에서 바오로는 아담과 그리스도를 병행합니다. 이 본문의 핵심 주제는 아담의 죄 이야기가 아니라, 시작하시고 완성하시며 인간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활동에 대한 찬미입니다. 바오로가 그리스도를 몰랐다면, 그분이 죄와 죽음, 무기력과 나태의 종살이에 빠진 인간을 새롭게 창조하시는지 절실히 체험하지 않았다면, 그는 아담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려웠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공유하는 아담의 체험을 소개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믿는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보았습니다. 이 용어는 단순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 심오하게 정의합니다. 언어학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손을 거쳐서’ 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쉽게 풀이하면 그리스도를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이 용어는 내가 부활하신 주님과 맺는 예외적이고 특별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내 삶을 그리스도의 힘 안에 맡기는 것,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삶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행위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결과를 내포합니다. 따라서 이 개념은 그리스도 사건을 묘사하고자 바오로가 사용하는 여러 용어와 표현법에 연결되며 어떤 공식이나 단순한 표현을 넘어선 깊은 뜻을 지닙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용어를 여러 가지 표상으로 소개하는데 세례가 가장 좋은 예에 해당합니다(로마 6장). 세례의 결과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세례받은 하느님의 자녀는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받으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도록 양육됩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결단하며 실천합니다.
바오로는 늘 바쁘고 여행을 많이 해야 했던 선교사입니다. 그런 바오로가 한가한 틈을 타서 책상에 앉아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개념을 정리한 것이 아닙니다. 이 용어는 바오로가 그리스도를 만난 뒤부터 생애 마지막까지 살았던 그리스도교 체험의 핵심이자 생명이었습니다.
바오로처럼 특별한 사람들, 영적으로 높은 단계에 있는 사람만이 이런 체험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오로는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모든 사람이 이것을 알게 되며 체험한다고 여겼습니다.
우리도 바오로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바오로와 같은 체험을 하게 되지만 말로는 표현하기 힘듭니다. 바오로의 공헌은 그리스도인의 공통적인 체험을 성령의 안내를 받아 명확하게 표현하여 우리 체험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첫 인간과 둘째 인간
아담과 그리스도 이야기를 1코린 15,44-49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는 죄의 관점에서 아담을 소개하는 로마 5,12-21의 내용을 다시 설명하지 않고 존재의 관점에서 첫 아담과 둘째 아담을 소개합니다. 첫 인간의 정체성은 죄인이지만 그것에만 인간을 축소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둘째 아담이십니다. 그분을 아담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첫 아담처럼 사람이 되셨고 죽음까지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둘째 아담이신데 땅이 아니라 하늘에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첫 아담과 달리 둘째 아담은 ‘영적인’ 존재로서 부활을 통해 만물을 다스리는 권능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의 옛 자아는 첫 인간과 같으며 새 자아는 둘째 인간(그리스도)과 같습니다. 옛 자아는 썩지만 새 자아는 영원히 썩지 않을 것입니다. 옛 존재는 자연적이고 육체적이지만 새로운 존재는 초자연적이고 영적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는 이러한 대조를 발견하고 기뻐하면서 부활에 대한 가르침으로 아담과 그리스도를 더욱 확실하게 대비시킵니다.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1코린 15,49). “이 썩는 몸은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은 죽지 않는 것을 입어야 합니다”(15,53). 바오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죽음에서 자유라는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15,57 참조).
첫 인간과 둘째 인간에 대한 바오로의 설명은 그의 권고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그는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라고 권고합니다(15,58 참조). 첫 인간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계획에서 부름 받은 자신의 소명을 완성할 수 없었다면, 둘째 인간인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을 죄에서 해방하시어 인간이 그분을 닮아가며 하느님 모상으로서 자신의 소명에 적합하게 살도록 이끄십니다.
우리를 흔들리게 하는 상황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장차 되어야 할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하느님께서 당신 계획을 위해 우리를 보내주신 자리에서 조용히 일하면서 굳게 서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변화될 수 있는가
지난해 말 함께 성경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일 년 동안 자신이 무엇을 배웠는지 나누었습니다.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성경을 배우고 보니 삶에서 혼란스럽게 보이던 것들이 정리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기준들이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바오로는 하느님의 자녀에게 아담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삶으로 넘어가고자 노력하라고, 이 현세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부활 뒤의 삶이 있기에 더 높이 더 멀리 인생을 보라고 가르칩니다.
인간은 그리스도를 따를 때 ‘새 사람’이 된다고 확신합니다. 이 가르침은 아름답지만, 우리 공동체나 자신을 보면 인간이 그렇게 극적으로 변화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인내로우시고 자비로운 분이시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다보면 우리도 둘째 인간 그리스도와 닮게 되리라 희망합니다. 시편 저자처럼 이렇게 기도하며 삽니다. “당신 얼굴이 당신 종 위에 빛나게 하시고, 당신의 법령을 저에게 가르쳐주소서”(119,135).
* 임숙희 레지나 - 아르케성경삶연구소 대표이며, 대전가톨릭대학교 부설 혼인과 가정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영성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6년 4월호, 글 임숙희, 그림 서소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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