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이스라엘 이야기: 다윗과 골리앗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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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05-08 | 조회수8,570 | 추천수1 | |
[이스라엘 이야기] 다윗과 골리앗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 예루살렘 다윗 성채 박물관에 있는 다윗상.
‘필리스티아’ 하면, 다윗이 쓰러뜨렸다는 골리앗을 떠올리게 한다. 골리앗의 민족 필리스티아는 기원전 12세기경 에게 해 방향에서 들어온 이주민이다. 지중해 쪽으로 정착하기 시작해, 이스라엘에서는 갓·에크론·아스돗·아스클론·가자라는 다섯 성읍을 차지했다.(여호 13,3) 이 가운데 우리에게 익숙한 가자는, 삼손이 필리스티아 신전을 무너뜨리고 최후를 맞은 곳이다.(판관 16,23-30) 갓은 골리앗의 고향이다.(1사무 17,4)
사울 시대만 해도 필리스티아는 이스라엘보다 우세했다. 이스라엘은 청동기를 사용한 반면, 필리스티아는 철기 문화를 독점하고 있었다. 청동이 철보다 약한 건 아니지만, 제작 방법이 까다로웠다. 성경은 사울과 요나탄을 제외하고 군사들은 칼도 창도 없었다고 전한다.(1사무 13,22) 백성이 농기구를 벼리려 해도, 필리스티아까지 가야 했다.(1사무 13,20) 필리스티아가 우위를 차지하던 상황은 다윗 시대에 가서야 역전된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길 당시 필리스티아에 몸을 숨긴 적 있었는데,(1사무 21,11-16) 그때 필리스티아의 생활 방식과 문화를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아닌가!
필리스티아는 이스라엘 중앙으로 진출하려고 늘 호시탐탐 엿보았기에,(1사무 7,7-14 등 참조) 이들 사이에는 전쟁이 잦았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전쟁은 1사무 17장에 나온다. 필리스티아는 소코와 아제카 사이에 진을 치고 있었고, 사울은 엘라 골짜기에 군사를 집결시킨 상태였다.(1-2절) 쉽게 말하면, 엘라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두 진영이 대치한 상황이다. 필리스티아에서 먼저 골리앗이라는 거구가 나와, 일대일로 겨루자고 도전해온다. 전 군사가 맞붙어 싸우는 게 아니라 일대일로 승부를 내는 건 필리스티아의 고향인 그리스에서 자주 사용하던 방식이었다.(「일리아스」 3권: 트로이아 장군 파리스와 헬레나의 전남편 메넬라오스의 대결 참조) 군사들이 흘릴 피를 최소화하려는 목적이었는데, 다윗 병사들도 나중에 사울 아들인 이스보셋 병사들과 전쟁할 때 비슷한 전법을 사용한다.(2사무 2,14-16 참조)
당시 다윗은 베들레헴 집에 있었다. 아버지 이사이는 출전한 세 아들의 안부를 살피려고 막내 다윗을 심부름 보낸다. 베들레헴에서 아제카까지 꽤 먼 거리였기에, 다윗은 아침 일찍 출발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20절) 그런데 그곳에서 할례받지 않은 한 부정한 필리스티아인이 하느님과 이스라엘을 조롱하는 걸 듣고,(26절) 자기가 나가 싸우겠다고 자원한다. 할례는 이스라엘 고유의 전통이 아니라 주위 이민족들도 행하는 관습이었지만, 필리스티아는 그리스 출신이라 할례를 받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할례받지 않은 자는 죽은 뒤에라도 포피를 잘라내야 할 만큼 부정하다고 여겼다.(1사무 18,27 참조) 이런 이방인이 하느님을 욕보인 것이다. 결국 다윗은 힘센 장정들을 제치고 골리앗과 겨루게 되는데, 양을 칠 때마다 맹수의 위협을 막아냈다는 그의 말(34-36절)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골리앗은 볼이 붉고 선연한 소년 하나가 다가오자 그를 업신여긴다. 다윗이 쥔 막대기가 얼마나 허약한지만 볼 뿐,(43절) 그가 챙긴 돌이나 머릿속에 세운 전략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다.
- 북서쪽이 에게해, 동쪽이 이스라엘이다. 붉은 색은 필리스티아인의 이동 경로다.
골리앗은 방패병의 호위까지 받고 있었으므로,(41절) 돌 몇 개 있는 다윗과 완전 무장한 그의 대결은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하지만 골리앗은 덩치가 너무 커서, 방패병이 얼굴은 가려줄 수 없었다. 다윗은 무릿매질로 방심한 골리앗을 쓰러뜨리는데, 당시 무릿매질은 아이들 놀이가 아니라 군인도 사용하던 전쟁 기술이었다.(판관 20,16 참조) 표적을 정확히 겨누어 쓰러뜨리려면, 날래고 숙련된 솜씨가 필요하다. 다윗은 둘 사이 간격이 적당히 좁혀지자, 돌을 조준하고 재빨리 이마에 명중시킨다. 그러자 태산 같던 골리앗이 얼굴을 땅에 박고 쓰러졌는데, 그 모습은 필리스티아 신전에서 얼굴을 땅에 박고 주님의 궤 앞에 쓰러진 다간 신상(1사무 5,4)을 떠올리게 한다.
이 전투를 두고 말콤 글래드웰은 이런 말을 했다. “강해 보인다고 강한 것이 아니며, 약해 보인다고 약한 것이 아니”라고. 이순신 장군도 임진왜란 때 보잘것없는 조선 수군의 힘으로 막강한 왜군을 격파했다. 장군이 총통을 쏴 적함에 접근하지 않고도 침몰시킬 수 있었듯, 다윗은 골리앗의 거구에 다가가지 않고도 무릿매질로 그를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 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6년 5월 8일, 김명숙(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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