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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바오로 영성의 주제들: 성령 안에서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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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5-17 조회수7,972 추천수1

[바오로 영성의 주제들] 성령 안에서 산다는 것은

 

 

지난 호에서 하느님의 자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다루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성찰했습니다. 이런 삶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으며 성령의 도움으로 가능합니다.

 

사실 성령은 우리 각자가 체험해야 할 존재이며, 이야기나 논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말씀도, 모습도 없기에 성령에 관한 논문이나 글을 쓰는 것은 ‘죽음에 입 맞추는 것’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다양한 차원에서 바오로의 성령 체험을 살펴보는 것은 아주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바오로에 따르면 영성생활은 성령 안에서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선물이다

 

바오로는 성령에 관한 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신학자는 아닙니다. 자신이 직접 체험한 성령 체험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눈 것이지요. 먼저 사도행전을 보면 바오로는 세례 때에 자신이 성령을 선물로 받았다고 증언합니다(9,17-19 참조). 바오로의 세례 체험은 성령의 선물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세례로 이어지는 안수는 성령의 선물을 뜻합니다.

 

초대교회에서 성령의 선물은 세례가 뜻하는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현실의 표징이었습니다(사도 10,44-49 참조). 성령은 인간 편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선물처럼 내려옵니다(갈라 3,2.5 참조). 하느님께서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믿었기 때문에 성령을 보내십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 백성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지혜를 계시하시고(1코린 2,6.8), 하느님 백성이 그것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깨닫도록 인도하십니다. ‘십자가를 담아내는 삶’이 되도록 이끄십니다. 바오로는 로마서에서 자신이 “표징과 이적의 힘으로, 하느님 영의 힘으로”(15,19) 사도직을 수행했다고 선언합니다. 바오로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는 성령의 힘이 “그리스도께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하도록” 바오로를 재촉합니다(15,20 참조).

 

성령의 활동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메시지와 절대 분리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게 하시려고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않으시고, 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당신 힘을 사용하십니다(1테살 1,5 참조). 성령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널리 전파될 때 하느님의 이름은 더욱 널리 알려지고 영광을 받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당신이 아니라 예수님을 알려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성령과 그리스도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제8장은 ‘성령에 관한 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성령에 관한 다양한 표현이 무려 32번이나 나옵니다. 그러나 첫 구절부터 마무리하는 찬미가(31-39절)까지 8장 전체에는 그리스도론적인 사고가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특히 9-11절은 바오로의 성령 체험을 잘 요약한 핵심 본문인데, 여기서는 성령과 그리스도 사이의 유사성을 분명히 소개합니다.

 

바오로는 여기에서 성령을 다양한 칭호로 부릅니다. “하느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9절),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11절),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다”(10절 참조)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바오로는 이 칭호를 통해 성령 안에서의 삶의 의미를 확장합니다. 하느님의 영이 그리스도인 안에 살고 있습니다. 성령이 머물고 있지 않다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 안에 계시면 그분을 죽음에서 일으키신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바오로의 관점에서 성령 안에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는 것, 부활하시어 영원히 사시는 주님 앞에서 사는 것을 뜻합니다. 영국의 성서학자 윌리엄 버클레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바오로에게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 날까지 당신 백성과 늘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하신 약속이 성취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과 힘

 

바오로에게 성령 체험은 그리스도 체험이자 ‘힘’의 체험입니다. 바오로의 사도로서의 삶이나 내적인 삶에서 성령은 ‘힘’으로서 드러납니다. 바오로는 나약한 가운데에서 하느님의 힘을 체험하며 사도직 활동을 했습니다. 구약과 유다 사상에서는 하느님의 영은 흔히 하느님의 도구로 선택된 특별한 사람들과 사건과 관련됩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성령께서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상생활을 지탱해 주고, 이끌어가며, 영감을 주신다고 말합니다.

 

바오로는 신자의 삶 안에서 성령의 긍정적인 현존을 강력한 ‘힘’으로 체험합니다. 모든 것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는 유일한 중개자이신 당신 아들을 보내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십니다. 오순절부터 시작해서 성령의 활동은 교회의 삶 안에서 지속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바오로는 특별히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이 하느님의 힘을 보았습니다(로마 1,4 참조). 이제 부활하시어 영광을 받으신 둘째 아담(그리스도)은 “생명을 주는 영”(1코린 15,45)이 되셨습니다. 이 주제는 바오로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맏물인 성령

 

바오로는 성령을 지칭할 때 ‘성령의 맏물’(아파르케 투 프네우마토스, 로마 8,23에서는 ‘첫 선물’로 번역한다.)이라는 특별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 구절에서 바오로는 믿는 이를 일컬어 성령을 ‘맏물’로 가진 사람들로, 나아가 성령 자신을 ‘맏물’로 정의합니다.

 

‘맏물’이라는 은유 자체는 구약 성경의 희생제사와 제사 관습에서 나오는데 땅에서 수확한 곡식과 포도주, 기름, 양털 따위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을 뜻합니다(민수 18,12; 신명 18,4 참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맏물을 하나의 상징으로 주님께 가져갔고, 앞으로 계속될 추수 전체가 주님께 속해있다고 여겼습니다. ‘맏물’로서의 성령은 믿는 이에게 지금 주어진 성령의 선물이 완전한 것이 아니라 장차 역사의 마지막 때에 받게 될 선물의 일부, 곧 ‘첫 선물’임을 보여줍니다.

 

바오로는 이‘맏물’이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역사의 마지막 때가 되면 지금 ‘맏물’로 주어진 그들의 영광스러운 상태(몸의 속량)를 보게 될 것을 강조하면서, 현재의 고통 안에서도 희망을 품으라고 격려합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의 맏물로 정의하기도 하는데(1코린 15,20.23)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와 인간의 근본적인 연대를 강조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하느님의 힘으로 일으켜지시지 않았다면 맏물이 되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분과 함께 믿는 이들도 영원한 생명으로 일으켜질 것입니다(1코린 6,14 참조).

 

 

하느님 자녀의 여정과 성령

 

성령을 ‘맏물’로서 이해하면 바오로가 ‘이미 그러나 아직’이라는 관점에서 성령의 활동을 해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 8,1-17에서 이 현재의 삶의 상태를 자세히 소개하는데 8,23에서는 이 내용을 더 확장하여 종말론적인 맥락 안에서 ‘맏물’이라는 용어로 성령의 활동을 소개합니다.

 

바오로는 로마8,1-13에서, 생명을 가져오는 성령을 따르는 삶과 죽음을 가져오는 육을 따르는 삶을 소개하며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어서 8,14-17에서 로마 신자들이 성령을 따르는 삶을 선택했다는 것을 전제하며, 인간을 하느님의 자녀로 만드는 성령의 활동을 심오하고 아름답게 소개합니다.

 

예수님과 하느님 사이의 내적인 끈은 제자들에게도 전달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덕분에 믿는 이들은 영원한 아버지의 자녀가 됩니다.

 

로마 8,26-27에서도 성령께서 현재 하느님 자녀들의 삶에서 하시는 구실을 소개합니다. 놀랍고 기쁜 소식은 성령이 우리 안에서 기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은 성령과 기도의 관계를 명시적으로 밝힌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기도신학의 기초를 제공합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 자녀로서 어떻게 맞갖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기도할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이것 때문에 성령은 내적인 스승이요 영적 지도자이십니다.

 

인간의 자유는 늘 성령의 안내를 받아야 합니다. 바오로는 현재 고통 받는 신자들에게 성령께서 그들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인내를 가지고 하느님의 계획을 기다리라고 위로합니다. 모든 것이 합하여 하느님의 선에 협력할 것입니다(로마 8,29-30 참조).

 

 

공동체 건설을 위한 은사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인의 내면에서만 활동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선물, 곧 은사를 받습니다. 이 은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공동체 건설입니다. 교회의 시작 때부터 이미 많은 은사가 있었는데,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통하여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십니다.

 

성령은 각자에게 따로따로 은사를 나누어주십니다(1코린 12,7-10 참조). 개별적인 은사 외에 사도, 예언자, 교사처럼(1코린 12,28) 교회 건설과 관련된 은사도 있습니다. 은사의 가치를 판단하는 근본적인 기준은 공동체 건설의 관점에서 그것이 유용한지입니다(1코린 14,12). 어떤 은사든 그 안에 사랑이 없다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1코린 13장 참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삼월 마지막 날 목련꽃이 참 아름답습니다. 성령에 관한 글을 쓰며 목련꽃을 바라보니 성령의 꽃처럼 보였습니다.

 

문득 가수 안치환의 노래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온갖 고통과 어려움에도 성령의 힘 안에서 하느님 자녀로서 충실히 사는 사람은 어떤 꽃보다도 아름답겠지요.

 

그래서 바오로 사도처럼 기도합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에페 3,16). 아멘!

 

* 임숙희 레지나 - 아르케성경삶연구소 대표이며, 대전가톨릭대학교 부설 혼인과 가정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영성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6년 5월호, 글 임숙희, 그림 서소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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