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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이스라엘 이야기: 이집트 신학의 중심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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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5-25 조회수8,457 추천수1

[이스라엘 이야기] 이집트 신학의 중심 ‘심장’


심장에 감정과 기억 지혜가 자리한다?

 

 

- ‘사자의 서’ 파피루스 일부.(저울 왼쪽에 망자의 심장, 오른쪽에 마아트의 날개가 있다. 저울 아래 앉아 있는 괴물은 ‘아미트’다.)

 

 

고대 이집트 신학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 중 하나는 이집트인들이 심장에 부여한 중요성일 것이다. 지금도 감정을 표현할 때 우리는 ‘심장이 쫄깃하다’는 신조어를 비롯해, ‘심장이 뜨겁다’, ‘강심장’ 등 몸의 기관 가운데에서도 심장을 자주 끌어들인다. 이는 예부터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에서도 비슷했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있듯 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지, ‘뇌’하기에 달렸다고 하지는 않는다. 마음 심(心)자도 심장 모양을 본따 만들어진 글자라고 한다. 고대 근동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성경에 나오는 ‘마음’은 대부분 심장을 의역한 말이다.(창세 8,21 등) 옛 이집트인들도 감정과 기억, 지혜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은 뇌가 아니라 심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라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보관한 것도 심장이었다. 뇌는 필요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해 내버렸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보유한 높은 의학 수준에도(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 참조), 뇌와 심장의 역할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특히 심장에 관련된 이집트인들의 신학은 탈출기에도 반영되어 있어, 성경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보낸 세월을 감안하면, 이런 영향 관계는 무척 자연스럽다. 솔로몬이 맞아들인 왕비도 파라오의 딸이었듯(1열왕 3,1), 왕정 시대에도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의 문물 교환은 활발하게 이어졌다.

 

-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에 있는 ‘오시리스 신상’.

 

 

이집트 신학에서 심장이 맡은 역할을 확인하려면,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을 알아야 한다. 사자의 서는 망자가 하게 될 사후 여행에 대한 안내서로, 그가 저 세상에 잘 도착하도록 도와줄 주문을 다수 기록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주문은 망자의 심장을 마아트의 깃털과 함께 달아 무게를 재는 의식에 관한 것이다. 망자가 내세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지 판단하는 의식인데, 사자의 서에 담긴 주문이 해당 의식을 무사히 통과하도록 이끌어준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망자를 묻을 때 사자의 서를 함께 매장하곤 했다. 이 의식에서 망자의 심장 무게를 가늠하게 될 깃털은 우주적 진리와 화합의 상징인 ‘마아트’의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마아트를 법과 정의 · 조화 · 진리 · 지혜의 여신으로 섬겼다. 태양신 라의 딸이며, 달의 신 토트의 아내다. 마아트는 보통 깃털을 머리에 꽂거나, 새의 날개를 양손에 든 모습으로 등장한다. 만약 망자의 심장이 마아트의 깃털보다 가벼우면, 망자는 저승의 신인 오시리스에게 갈 수 있다. 오시리스는 사후 법정에서 재판관 역할을 맡은 신으로, 법정의 수호 여신인 마아트의 뜻을 받들어 최대한 공정하게 판결을 내린다. 그런데 만약 망자의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우면, 그는 아미트라 불리는 괴물에게 먹힌다. 아미트는 악어, 사자, 하마의 모습이 섞인 괴물이다. 이 괴물에게 먹혀 버리면 망자는 저승에 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 모든 걸 종합해 알 수 있는 건 심장이 무거운 사람은 죄 많은 사람, 심장이 가벼운 사람은 죄 없는 사람을 뜻한다는 사실이다.

 

이제 성경을 열어 탈출 10,1을 보자. 주님께서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 마음을 완강하게 하셨다는 말씀이 나온다. 이 구절을 히브리어 본문에서 직역하면, 이집트 관점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뜻이 담겨 있다. ‘완강하게 하다’라는 말이 사실은 ‘무겁게 하다’이기 때문이다. 곧, ‘주님께서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 심장을 무겁게 하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구절이 전하는 직설적 의미는 그들 심장을 무겁게 만들어 죄를 짓게 하시겠다는 것으로, 이집트인들을 겨냥한 말씀에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지금도 우리는 ‘마음이 무겁다’ 또는 ‘가볍다’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으니, 얼마나 흥미로운가?

 

성경에 반영된 이집트 문화는 이것 말고도 많다. 공정한 통치로 세상에 마아트를 유지시킬 의무가 있던 파라오는 이집트어로 ‘페르-아’(per-aa)라 하는데, ‘큰 집’을 뜻하는 말이다. 임금이 사는 궁전을 가리킨다. 이는 우리나라 왕조 시대에 왕비를 ‘중전’이라 부른 것과 유사하다. 중전은 ‘중궁전’(中宮殿), 곧 왕비가 거처하던 궁을 일컫는 말이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조선시대 문장가 유한준의 말처럼, 단순하게 지나갈 수 있는 성경 구절도 그 숨은 의미를 찾아 다시 보면 새롭다.

 

* 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6년 5월 22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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