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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리] 이스라엘 이야기: 에돔과 이두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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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6-05 조회수7,826 추천수1

[이스라엘 이야기] 에돔과 이두매아


붉게 빛나는 광야엔 에사우와 야곱의 갈등 서려

 

 

- 요르단에 있는 광야 ‘와디 룸’. 출처 위키미디어.

 

 

이스라엘 옆 나라 요르단에는 붉고 노란 모래로 빛나는 광야가 있다. ‘와디 룸’이라 불리는 곳이다. 홍해에서 북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계곡인데,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화를 찍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와디 룸은 광야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장소다. 한 번 다녀오면 상사병에 걸린 듯 한동안 와디 룸 앓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발목까지 빠지는 붉은 모랫길을 걸을 때, 바로 여기가 에사우의 땅 에돔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에돔은 ‘붉다’, ‘빨갛다’라는 뜻으로 에사우의 피부색을 반영한 이름이다. 에돔은 성경에 자주 나오지만,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내용은 그리 많지 않다. 에사우가 조상(창세 36,1)이라는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알고 보면 모세의 형 아론이 에돔 경계에 있는 호르 산에 묻혔고(민수 20,22-29),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한 헤로데 임금도 부계 혈통으로 에돔인이었다. 에돔에 얽힌 이야기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야곱과 쌍둥이로 잉태된 에사우는 태 안에서부터 영역 다툼을 벌였다. 먼저 태어난 그는 몸이 붉고 털이 많아 ‘에사우’라 불리게 되었다. 동생은 형을 이기려는 듯 발꿈치를 붙들고 태어나 ‘야곱’이라는 이름을 얻었다(창세 25,25-26). 에사우는 에돔, 야곱은 이스라엘의 조상이 된다. 에사우는 배 속 싸움에서 승리했듯 육체적으로 우위였다. 커서도 솜씨 좋은 사냥꾼이 된다(창세 25,27). 그가 칼에 의지하여 살게 되리라는 구절(창세 27,40)도 에사우의 거친 성격을 암시해준다. 반면, 야곱은 천막에서 살아 온순한 이미지를 준다. 외형적으로는 에사우가 강했지만, 선택받은 아들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인생의 무게가 덜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선택받지 못했어도 그의 삶 또한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약삭빠른 야곱보다, 고집스럽고 무뚝뚝한 에사우에게 더 동정이 간다. 배고픈 형에게 그냥 줘도 됐을 콩죽으로 장자권을 앗아가고 형으로 분장해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에 비해, 야뽁 강에서 동생을 재회했을 때 호방히 용서할 수 있었던 형다운 모습(창세 33,4)이 마음에 든다. 하지만 그는 한순간의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장자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아우에게 뒤꿈치를 잡혔다. 그래서 에돔은 맏이답게 왕국을 먼저 확립하지만(창세 36,31), 다윗에게 정복당하여(2사무 8,14) 야곱의 우월을 증명해 주었다. 에사우가 들이킨 콩죽의 ‘붉은’ 색도 그의 다혈질적 성격과 에돔의 호전성(오바 10절)을 암시해준다.

 

에사우는 기름진 땅이나 하늘의 이슬 대신 칼에 의지해 살아갈 운명이 되었지만(창세 27,39-40), 나중에는 장정을 사백이나 거느릴 만큼 세력이 커진다(창세 33,9). 그가 정착해 산 곳은 세이르 지방이었다(창세 32,4 등). ‘털이 많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싸이르’라 하는데, 싸이르한 에사우가 세이르 곧 쎄이르 땅에 정착한 것이 흥미롭다. 본디 그는 가나안에 살았지만, 가산이 많아 가나안 땅이 야곱과 함께 살기에 좁았다고 한다(창세 36,5-8). 그 뒤 세이르는 대표적 에돔 영토가 되어, 에돔의 별칭으로 성경에 자주 등장한다(민수 24,18; 에제 35,15 등). 와디 룸보다 북쪽으로 좀 더 올라가는 산악 지대다. 사실 에사우는 아우에게 아버지의 축복을 빼앗긴 뒤, 살인을 생각할 정도로 오랫동안 앙심을 풀지 않았다(창세 27,41). 그의 원한은 야뽁 강에서 야곱을 다시 만났을 때 사라진 듯했지만, 은연중에 자자손손 이어져 에돔의 적개심과 복수 행각으로 표출되었다. 그러나 이사악이 야곱에게 내린 축복처럼, 에돔은 끝끝내 이스라엘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러다 기원전 6세기 유다가 바빌론의 손에 망하자 에돔은 오랜 앙금을 담아 유다에게 복수했으며(에제 35,5; 오바 12-14절 참조), 마침내 제 목에서 이스라엘의 멍에를 떨쳐버릴 수 있었다(창세 27,40 참조). 바빌론 유배와 제2성전기를 거치는 동안에는 에돔이 이스라엘 땅의 남부 지방으로 침투해온다. 그래서 이스라엘 남동쪽이던 본래 위치가 이동하게 되었으며, 이름도 ‘이두매아’라고 바뀌어 불린다(1마카 5,3 참조).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한 헤로데 임금의 아버지가 바로 이두매아 출신이다. 그러니 어찌 보면, 에돔은 유다의 왕좌를 차지한 헤로데를 통해 과거 역사를 묘하게 설욕한 셈이다. 붉고 노란 모래 속에 에사우의 흔적을 간직해온 와디 룸! 웅장하게 늘어선 바위산과 빛나는 토양은 에사우가 살아온 광야 같은 삶을 아름다운 색깔로 채색해준다.

 

* 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6년 6월 5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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