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신약 여행2: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요한 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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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06-11 | 조회수7,081 | 추천수2 | |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2)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요한 1,1) 예수에 대한 ‘네 가지 시각’ 네 복음서
네 복음서의 시작 서문
네 복음서는 모두 짧거나 길게 복음서의 시작에 서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오는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마르코의 시작은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입니다. 비록 짧은 표현이지만 이 서문들은 각 복음서가 지니는 특징을 잘 드러냅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소개하는데, 이것은 다른 복음서들에 비해 유다교적인 전통을 강조하는 마태오 복음서의 특징을 잘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마르코는 처음 기록된 복음서에 어울리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분은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것은 마르코 복음서에서 그리고 다른 복음서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핵심적인 내용이기도 합니다.
서문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루카와 요한 복음서입니다. 루카 복음서는 비교적 긴 서문(루카 1,1-4)을 통해 복음서가 어떠한 과정 안에서 기록되었는지 알려 줍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사건에 대해 목격자들이 전해 준 것을 엮은 것으로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모두 진실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이러한 과정에는 많이 이들의 수고가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요한 복음의 서문은 말씀의 찬미가
가장 독특한 서문을 전해 주는 것은 요한 복음서입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는 표현으로 시작하는 요한 복음서의 서문은 ‘로고스(말씀) 찬미가’로 불리기도 합니다(요한 1,1-18). 형식이나 내용 그리고 표현에 있어서 요한 복음서는 특징이 뚜렷합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말씀으로 표현되는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시고, 빛이시며 그분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탄생을 통해 알려졌지만 그분은 이 세상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곧 창조 이전부터 계셨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한처음에”라는 표현은 창세기를 시작하는 표현이며 창조 이전의 시간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말씀이셨던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왔지만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세상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빛이신 분을 받아들이지 않은 세상은 당연히 빛이 없는 어둠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분을 믿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세상에 있는 일부의 사람들만이 받아들였고, 이제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고 불립니다. 이것은 복음서가 기록될 당시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서들은 서문에서 앞으로 전할 내용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 다른 시각을 보여줍니다. 마치 지금도 우리가 하나의 사건을 바라볼 때, 보는 관점에 따라 강조하는 내용이 조금 다른 것처럼 복음서들 역시 그렇습니다. 똑같은 예수님의 드라마를 전하지만 그 안에서 강조되는 내용은 복음서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다른 것이 아니라 복음서들이 갖는 고유한 시각입니다. 이런 독창성이 지금 우리가 보는 것처럼 네 가지의 복음서를 태어나게 했습니다. 하나의 사건, 곧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전하지만 그것을 듣는 사람들에 따라, 또 살았던 문화적인 배경에 따라 설명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전해 주는 네 가지의 관점이 있는 셈입니다. 다양한 관점은 우리에게 그만큼 다양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지난 역사를 회상하며 기록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서들은 모두 70년 이후에, 마르코 복음서를 시작으로 마태오와 루카 그리고 요한 복음서의 순서로 기록되었습니다. 결국 모든 복음서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점령당하고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 쓰였습니다. 복음서는 신문의 기사처럼 사건을 보도(報道)한 것이 아니라 지난 역사를 회상하며 기록되었기에 사건과 함께 신학적인 내용 역시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복음서들이 전하는 것은 역사 안에서 벌어진 예수님의 드라마인 동시에 초기 교회 공동체가 이해한 예수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평화신문, 2016년 6월 12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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