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이스라엘 이야기: 발라암과 나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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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06-11 | 조회수8,432 | 추천수1 | |
[이스라엘 이야기] 발라암과 나귀 천사를 본 나귀 덕에 목숨 구한 예언자 발라암
- 유다 광야에서 볼 수 있는 나귀 택시.
유다 광야에는 베두인 목동들이 키우는 나귀가 많다. 자기들도 타지만, 대개는 광야 순례자들에게 택시(?)라고 권하며 호객 행위를 한다. 다소곳이 주인 처분만 기다리는 나귀 택시들을 보노라면, 억울하게 발라암에게 얻어맞고 하소연하던 나귀가 떠오르곤 했다. 이 콧대 높은 예언자는 미물 나귀를 통해서 목숨을 구하게 되는데, 그 이야기가 민수기 22,22-35에 나온다.
사연은 이러하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이 모압 벌판에 도착하자, 모압 임금 발락이 두려움을 느끼고 백성을 저주하려고 발라암을 초빙했다. ‘발라’는 ‘삼키다’, ‘암’은 ‘친족’을 뜻하므로 발라암은 ‘친족을 삼키는 자’, ‘파괴자’를 뜻한다. 발라암의 파괴적인 주술 능력을 암시해주는 듯한 이름이다. 1967년 요르단에서 발견된 ‘데이르 알라 비문’(기원전 9-8세기)에도 발라암의 이름이 언급되므로, 그가 당시 근방에서 유명한 예언자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방 예언자였지만, 민수기에서는 그가 하느님의 신탁을 듣는다. 발라암이 발락을 따라가지 말라는 주님 대답을 듣고 청을 거절하자, 발락은 극진한 보답을 보장하며 다시 꼬드긴다. 이에 마음이 동한 발라암이 주님 신탁을 재차 확인하니, 이번에는 따라가도 좋다는 대답이 내려 나귀와 함께 길을 나섰다.
그런데 별안간 주님의 천사가 그 길을 막아선 것이다. 천사를 본 나귀가 비켜나서 밭으로 가자, 발라암이 나귀를 때린다. 그의 눈이 가려 나귀도 본 천사를 못 본 탓이다. 이때 주님께서 나귀의 입을 풀어 주시니, 나귀는 영문도 모르고 자기를 세 번이나 때린 발라암에게 꾸짖듯이 하소연한다. 발라암은 칼만 있었어도 말대꾸하는 나귀를 죽였으리라고 위협하지만, 저주의 ‘말’로 이스라엘을 해하기 위해 고용된 그가 언변으로 나귀를 당해내지 못한 건 역설적이다. 게다가 나귀를 죽이려 할 때는 ‘칼’이 필요했다. 발라암은 주님께서 눈을 열어 주셨을 때에야 천사를 알아보고, 나귀 덕에 목숨을 구하게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 모압 땅의 모래 폭풍.
발라암이 도착하자 발락은 장소를 바꿔가며 저주를 시도하지만, 발라암은 주님 뜻을 어기지 않고 이스라엘을 끝까지 축복해주었다(민수 23-24장). 그런데 민수 31,16을 보면, 갑자기 프오르에서 모압 여인들이 이스라엘을 우상 숭배로 끌어들인 범죄(25장)가 발라암의 음모였다는 말이 나온다(“프오르에서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발라암의 말에 따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님을 배신하게 하여”). 언뜻 발라암에 대한 전승이 엇갈리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애초부터 발라암은 발락이 제안한 복채의 유혹에 넘어간 상태였다. 발락을 따라가지 말라는 답이 내렸는데도, 발락이 파격적인 대가를 제시하자 주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어 하지 않았나? 바로 여기에 뇌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모습이 반영된 것이다. 발라암이 재차 문의했을 때 주님은 당신 뜻을 바꾸시고, 가도 좋다는 허락을 내리셨다. 하느님은 뜻을 마구 바꾸시는 분이 아니지만, 그릇된 자에게는 그릇된 모습으로도 드러내신다(2사무 22,27: “깨끗한 이에게는 깨끗하신 분으로 대하시지만 그릇된 자에게는 비뚤어지신 분으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참조). 주님 천사도 발라암의 검은 속마음 때문에 길을 막고 그를 죽이려 했던 것이다. 결국 금품에 미련이 남은 그는 이스라엘을 해할 요량으로 모압 여인들을 보내, 주님의 분노를 사게 된 듯하다.
신약성경에는 발라암의 이미지가 더욱 부정적으로 발전하여, 불의한 돈벌이를 좋아하고 그릇된 길을 보여주는 자로 묘사된다(2베드 2,15). 발락을 부추겨 이스라엘 앞에 걸림돌을 놓고,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우상과 불륜을 저지르게 한 자로도 평가 받는다(묵시 2,14). 그런데 이런 발라암이 예수님 탄생 성화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아마 이것은 모압 평야에 진을 친 이스라엘을 보며 그가 신탁을 내릴 때 메시아 관련 예언을 남겼기 때문으로 보인다(민수 24,17: “나는 한 모습을 본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그래서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는 모습 옆이나 뒤로 발라암과 나귀를 그려 넣어, 그 옛날 이방 예언자도 구세주 신탁을 선포했음을 알리려 했다. 본디 민수기가 발라암 이야기를 서술한 목적도, 이방 예언자마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주님이심을 인정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발라암의 목숨을 구해준 나귀는 훗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이 타신 짐승으로 나온다.
* 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6년 6월 12일, 김명숙(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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