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바오로 영성의 주제들: 육이란 무엇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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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06-18 | 조회수6,382 | 추천수2 | |
[바오로 영성의 주제들] 육이란 무엇인가
지난 호에서 ‘성령 안에서 산다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서, 그분께서 주시는 힘 안에서 사는 것임을 함께 성찰했습니다. 세례 받은 신자들은 성령 안에 깊이 잠겨서 살고 있습니다. 이 성령 체험은 머리나 생각이 아니라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의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체험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호에서는 바오로가 생각한 ‘육(희랍어로 사륵스, sarx)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나누려 합니다.
‘육’의 의미는
‘육’은 바오로 사상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서간에서 바오로가 ‘육’에 대해서 한 말들은 쉽게 이해하기 힘듭니다. 서간의 맥락마다 의미가 다르고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복잡하지만 바오로가 생각한 ‘육’은 대략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살(로마 2,28; 1코린 15,39), 인간의 몸(갈라 3,13; 에페 5,29), 살과 피를 가진 인간(로마 3,20; 갈라 1,16)을 가리킵니다. ‘육’은 또한 쉽게 변질되고, 빠르게 지나가는 인간의 나약한 실존(갈라 2,20; 필리 1,22.), 또는 하느님의 관점이 아니라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고 자랑하는 명예나 인간적인 업적(필리 3,3-4)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바오로가 생각한 ‘육’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할 때, 우리는 ‘육’이 인간의 성적인 활동에만 제한되지 않으며, 더욱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인간은 육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지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철학에서는 전형적으로 몸과 영혼을 구분합니다. 몸과 영혼의 구분은 후대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한 것이지 바오로 자신이 그렇게 구분한 것이 아닙니다.
바오로는 인간의 인격에 대한 유다인의 이해를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인간은 살아있으며 혼이 있는 몸입니다.
육과 죄의 결합
바오로가 사용한 ‘육’의 용법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육과 죄를 결합시켰다는 것입니다. 육은 죄의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로마 6,19; 7,5; 갈라 5,13). 우리는 ‘육이 저지르는 주된 죄들’이라고 할 때 성적인 죄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오로의 관점에서 육의 죄는 그런 성적인 죄가 아니라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갈라 5,19-21).
훌륭한 신앙 교육자인 바오로는 하느님을 닮아가도록 부름 받은 우리의 소명을 거부하게 하는 죄,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우리 몸을 파괴시키는 바이러스 같은 죄들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했습니다. 바오로는 죄에 대해 생각할 때 구체적인 계명이나 법규를 어기는 것보다는 죄가 스며들 수 있는 인간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영향을 받는 인간은 너무나 쉽게, 그리고 자주 하느님의 지혜보다 인간의 지혜를 선택합니다(1코린 1,18-31; 2,6-7 참조). 이러한 선택은 ‘하느님의 힘’(로마 1,16; 1코린 1,18)보다 ‘세상의 힘’에 의존하는 어리석음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에페 6,12).
바오로는 이런 거대한 ‘힘’에 맞서 싸우려면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철저하게 무장하고 영적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어떤 설명보다 에페소서 6,10-17을 소리내어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힘이 아닌 다른 힘에 자신을 맡기면 우상숭배, 곧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는 악에 이끌리게 됩니다. 바오로는 우상숭배보다 ‘죄’(로마 3,9)의 힘에 훨씬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오로가 그리스도교 영성에 크게 공헌한 점이 있다면, 인간이 죄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능력을 성장시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깊이 깨닫고 하느님을 만나게 되며 새롭게 창조되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죄를 직접적으로 깊이 대면할 때입니다.
이탈리아의 영성가 라니에로 칸타라메사 신부님은 로마서 해설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세상은 죄의 의미를 상실했습니다. 육을 신체의 의미로만 생각하고 죄를 상실한 현대 세상은 복음에 따라 살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양심을 잠들게 하는데 이것은 일종의 영적 안락사입니다.
그리스도교 백성은 자기의 참된 원수가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그를 노예로 삼고 종살이를 하게 하는 주인을 모릅니다. 많은 사람이 죄에 대해 말하지만 모두 적절하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가 여기에 있다!’ ‘죄가 저기에 있다!’라고 사람들이 말할 때 믿지 마십시오. 죄는 바로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이 죄와 투쟁하십시오. 아니 더 나아가 죄에 대한 잘못된 개념과 싸우십시오.”
이 말씀은 바오로 자신이 로마서에서 표현한 체험과 유사하게 들립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율법은 영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육적인 존재, 죄의 종으로 팔린 몸입니다. …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줄 수 있습니까?”(7,14-24)
바오로는 여기에서 자신의 육의 지체 안에 어떤 것이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게 하고, 자신을 죄의 종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합니다.
바오로는 이 본문에서 ‘육’이라는 말을 인간 전체, 몸, 영혼, 이성, 그리고 그의 모든 기관이 포함된 것에 대해 사용합니다.
성적인 활동의 영역 안에서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 안에서 하느님과 반대로 살아가도록 부추기는 무절제한 애착이나 갈망, 우리 안에서 폭군처럼 우리를 마음대로 부리는 인격적인 존재, 거대한 ‘힘’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사람?
바오로는 인간의 육이 지닌 한계를 알았지만 그것을 무조건 단죄하지 않았습니다. 공동체 신자들이 죄를 짓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늘 교정하고 권고하면서 신자들이 자신 안에 스며든 죄의 힘을 제대로 바라보고 의식하도록 교육했습니다. 바오로는 공동체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사목적 지침을 내립니다(1코린5-11장 참조).
대부분의 문제는 코린토인들이 인간의 몸을 그리스 이원론에 따라 잘못 이해한데서 비롯됩니다. 당시에 아폴로라는 복음 선포자가 코린토에 와서 인기를 끌었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다인 철학자 필론(기원전 20-45년 무렵)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필론은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 물질이 이성에, 몸이 영혼에 종속된다고 보았습니다.
필론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코린토의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사람’인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얻을 수 없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며 영적 자만심에 빠져 분열과 파당을 일삼았습니다. 정신이 물질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여긴 코린토인의 그릇된 사고는 그들 삶의 방식에도 깊이 영향을 끼쳤습니다. 어떤 코린토 신자들은 물질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을 더 우위에 놓으면서 육체에 대해 의문을 갖고 인간의 지혜에 따라 “저마다 제 눈에 옳게 보이는대로”(판관 17,6; 21,25) 판단하고 결정했습니다.
몸은 중요하지 않으므로 전례에서 ‘예복의 관습’을 무시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므로 ‘성적인 죄’에 대해 자신들은 관대해야 하며, 몸의 부활은 의미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영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보다 우월하다고 이해한 코린토 신자들은 인생에서 중요한 본질 하나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몸으로 하는 것이 영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 것이지요.
바오로는 어땠을까요? 바오로는 몸을 천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당시 그리스인들과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는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성적인 부정은 성령께서 머무실 거룩한 성소가 되도록 창조된 몸에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불륜을 멀리하십시오. 사람이 짓는 다른 모든 죄는 몸 밖에서 이루어지지만, 불륜을 저지르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1코린 6,18-19)
바오로는 “몸은 불륜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몸을 위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1코린 6,13)라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몸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어떤 평가에 대해서도 반대하는데 그리스도께서 당신 몸으로 부활하셨고, 그분 몸 안에서 인간 본성은 무한한 존엄성을 획득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도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로마 8,23). 바오로에게 몸은 성화, 인간화, 자기 증여가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몸으로 바치는 영적 제사
몸은 하느님께서 즐겨 받으시는 영적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성전입니다(로마 12,1-2참조). 예수님께서도 당신 몸을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분께서 인간의 몸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으셨다면,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분 안에 계신 아버지의 신성도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힐라리오 성인(315-367년?)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이 하신 모든 일은 정말 하느님의 일이었습니다. 물 위를 걸으신 것, 바람에게 명령하신 것, 물을 포도주로 바꾸거나 빵을 많게 하신 것, … 악령을 추방하신 것, 신체의 질병을 치유하신 것, 눈 먼 이를 보게 하신 것, 죄를 용서하신 것, 죽은 사람을 살리신 것. 이 모든 것은 그분이 육신을 갖추고 살아계셨을 때 하신 것이며, 육신을 가지고 하신 일들을 통해서 당신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삼위일체에 관하여」, 7,34-36).
오소서, 성령님, 날마다 저희에게 힘을 주시어 새롭게 하소서. 몸이 하는 일을 통해 저희가 하느님 자녀로 더욱 성장하게 하시고, 아버지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 임숙희 레지나 - 아르케성경삶연구소 대표이며, 대전가톨릭대학교 부설 혼인과 가정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영성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6년 6월호, 글 임숙희, 그림 서소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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