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이스라엘 이야기: 계약 궤의 행방 | |||
---|---|---|---|---|
이전글 | [신약] 신약 여행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1| | |||
다음글 | [성경용어] 새 창조 - 갈라티아서 6,15 |1| | |||
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06-27 | 조회수8,445 | 추천수1 | |
[이스라엘 이야기] 계약 궤의 행방 전설로만 내려오는 주님 현존의 상징
- 예루살렘 이슬람 황금사원(사원 내에 머릿돌이 보관돼 있다).
이스라엘의 옛 성막과 성전에서 우리는 계약 궤와 커룹 장식을 기억한다. 십계명을 보관하던 계약 궤는 주님 현존의 상징이었다. 성막이나 성전을 지은 목적도 본디 계약 궤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탈출 38,21 참조). 그러다 예루살렘 몰락(기원전 587/6년) 즈음하여 계약 궤가 자취를 감춘 뒤, 숱한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여럿 만들어냈다.
계약 궤(민수 10,33 등)는 ‘하느님의 궤’(2사무 6,12 등), ‘증언 궤’(탈출 25,22 등)라고도 불린다. 하느님의 궤는 그 이름에서부터 주님 현존의 상징임을 짐작게 한다. 증언 궤라는 호칭은 ‘증언판’(탈출 31,18 등)인 십계명 돌 판을 궤 안에 두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십계명 돌 판이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계약을 ‘증명’해주는 까닭이다(1열왕 8,21 참조). 커룹을 계약 궤 위에 장식한 건 그 안에 담긴 십계명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커룹들은 얼굴을 속죄판(계약 궤 덮개)으로 향하고, 날개는 펴서 속죄판을 덮었다. 커룹이 맡은 이런 보호자 역할은 원조들이 에덴에서 쫓겨났을 때, 커룹이 동산 입구를 지킨 창세기 3장 24절에도 드러난다. 인간이 에덴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지켰듯, 여기서도 속인들이 계약 궤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리고 커룹은 주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역할도 했다. 하느님은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분이기 때문이다(탈출 25,22; 1사무 4,4 등). 커룹들이 얼굴을 속죄판 곧 아래쪽으로 향한 것도, 십계명을 보호하는 의미 외에 자기들 위에 앉으신 하느님을 직접 보지 않기 위함이었다(주님의 어전에서 사랍들이 날개로 얼굴을 가린 이사 6,2 참조). 커룹 장식이 이렇듯 주님 왕좌를 상징하는 것이니, 그 아래 놓인 계약 궤도 왕좌의 일부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구체적으로는 발판에 해당한다(1역대 28,2). 주님 발판 앞에 엎드린다는 시편 찬송(99,5; 132,7)도 지성소 안에 모신 계약 궤 방향으로 엎드린다는 뜻이다.
십계명을 궤에 담아 성막/성전 안에 보관한 건, 나라 간 체결한 계약이나 법적으로 중요한 문서들을 신전에 보관하던 고대 근동 관습에서 기원했다(1사무 10,25 참조).
이스라엘 주변 민족들은 이런 문서들을 신상의 발아래 두었는데, 그 내용이 잘 지켜지도록 신들이 감독해 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기원전 13세기 파라오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 임금 하투실리스 3세도 쌍방이 맺은 계약을 이집트 신 라와 히타이트 신 테슙 밑에 놓았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신상을 만들지 않았기에, 주님과 맺은 계약의 증서인 십계명을 주님 발판에 해당하는 계약 궤 안에 두었다. 그러다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유배가 임박하자, 계약 궤의 종적이 묘연해진 것이다.
- 느보산 정상을 알리는 표지판.
탈무드는 요시야 임금이 계약 궤를 감추었다는 전승을 전하고(요마 53b-54a), 2마카 2,5는 예레미야가 느보산의 한 동굴에 숨겼다고 전한다.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자기들이 계약 궤를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모두 확인할 방법은 없는 전승들이지만, 그렇다고 계약 궤의 실종이 이스라엘 신앙에 가공할 만한 위기를 가져온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시대가 오면, 계약 궤가 필요하지 않게 되리라고 예고했다(예레 3,16-17). 그때는 하느님의 도성이 주님 옥좌라 불리고, 민족들이 주님의 이름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모여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배가 끝난 다음 제2성전에서는 ‘머릿돌’(foundation stone)이 계약 궤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요마 54b). 머릿돌은 주님의 천지창조를 기념하는 바위인데, 지금은 그 위로 이슬람 사원이 세워져 있다.
자취를 감춘 뒤 감질나는 이야기들만 무성하게 키워온 계약 궤는 묵시 11,19에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지상 성막이나 성전이 하늘 성전을 본 떠 지은 것이듯(탈출 25,9; 1역대 28,19 참조), 계약 궤도 본디 천상의 궤를 본 떠 만든 것이다. 묵시록에 나타난 건 바로 천상의 원형이다. 2마카 2,4-8은 하느님이 백성을 도로 모으시어 자비를 보이실 때까지 계약 궤가 숨겨진 채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묵시록에 나타난 계약 궤는 하느님이 새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실 것임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반면, 지상의 계약 궤는 예수님이 육화되어 인간 세상에 오신 이후 주님 현존을 상징하던 옛 의미를 잃었으므로, 그 행방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만 남게 되었다.
* 이번 호로 이스라엘 이야기 연재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수고해 주신 필자 김명숙 박사와 애독해 주신 독자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부터 구약성경에 대한 새 기획이 시작됩니다. 주원준 박사(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가 집필을 맡습니다.
* 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6년 6월 26일, 김명숙(소피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