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신약 여행5: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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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07-04 | 조회수6,356 | 추천수1 | |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5)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 완전한 하느님이시며 완전한 인간, 예수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작, ‘그리스도의 세례’ 일부, 1448~1450년, 내셔널 갤러리, 영국 런던.
예수님의 탄생과 짧은 유년기의 내용 이후에 본격적으로 그의 활동을 알리는 첫 사건은 바로 세례입니다. 또한 공관 복음 모두 예수님의 세례 이전에 세례자 요한의 설교 내용을 전해 줍니다. 세례자 요한은 죄의 용서와 회개를 위한 세례를 선포할 뿐 아니라 예수님의 세례, 곧 성령의 세례 역시 미리 예고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례자 요한은 철저하게 예수님의 활동을 준비한 인물로 나타납니다.
조금 특별한 것은 요한 복음서가 전하는 세례자 요한의 역할입니다. 공관 복음이 세례자 요한의 역할을 예수님보다 앞서 사람들에게 회개를 선포하고 세례를 베푼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요한 복음서는 세례자 요한을 통해 전해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을 강조합니다. 요한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두 번에 걸쳐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증언합니다(요한 1,29.36). 요한 복음 안에서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바로 이 증언입니다. 왜냐하면 요한 복음에서 ‘어린양’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안에 담긴 의미를 직접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세례자 요한의 증언은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을 미리 알려주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되어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베풀던 요한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에게 세례를 받습니다. 공관 복음이 전해주는 세례에 관한 이야기에서 강조되는 것은 예수님을 향한 하늘의 소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성령이 내려오시는 것을 보았고 하늘로부터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신원과 정체성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첫 시작에 복음서들이 공통으로 전해 주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세례 때의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십 일 동안 유혹을 받았다고 공관 복음은 이야기합니다. 광야에서의 사십 일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에 이를 때까지 광야에서 보냈던 사십 년의 역사와도 같습니다. 그렇기에 사십이라는 수는 하느님의 약속이 실현되기 전에 준비하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마태오와 루카 복음은 세 가지 유혹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순서에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빵으로 요약할 수 있는, 사람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들에게서 오는 유혹입니다. 사람의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것 역시 하나의 유혹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이외의 우상을 섬기는 것,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이 뒤따릅니다. 예수님께서 받은 유혹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저질렀던 잘못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무엇보다 먼저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고, 우상을 섬기기도 했으며 이런 일들을 통해 하느님을 시험한 모습으로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세례와 유혹은 예수님의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하는 역할을 합니다. 세례를 통해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유혹을 통해 다른 사람과 다름이 없음을 나타냅니다. 신학에서 말하는 완전하신 하느님이면서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역설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여느 사람들처럼 유혹을 받았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미 암시되었던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이 기다려 왔던 메시아는 기대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왕을 세우거나 예언자를 파견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제 하느님께서 직접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에 세례와 유혹을 통해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구원을 향한 당신의 사명을 시작하십니다.
[평화신문, 2016년 7월 3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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