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문화] 성경, 문화와 영성19: 베드로의 십자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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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07-11 | 조회수10,652 | 추천수1 | |
파일첨부 카라바조_성 베드로의 십자가형.jpg [1,390] | ||||
성경, 문화와 영성 (19) 베드로의 십자가
베드로는 갈릴래아 벳사이다 출신의 어부였다. 그의 이름은 시몬이었는데,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마르 3,16)에서처럼 예수님은 그를 베드로라고 부르셨다. 안드레아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요한 1,42) 베드로는 예수님 제자들 중의 으뜸이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지도자였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베드로 사도의 행적에 대한 기록을 읽는다. 그런데 베드로의 순교에 대한 전승은 그리스도교적 전설에 의해 전해진다. 특별히 신약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외경 중의 하나인 “베드로 행전”은 사도 베드로의 십자가형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카라바조는 이 베드로 사도의 마지막 순간을 포착하여 탁월한 해석과 함께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 사도 베드로의 순교
● “베드로 행전”은 180-200년 사이에 쓰였는데, 정확한 저자와 집필 장소는 불확실하다. 로마 혹은 소아시아에서 쓰였을 것이라고 추정될 뿐이다. 이 문헌에는 신약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사도 베드로 행적의 전설을 전하는데 그의 순교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사실 “베드로 행전”의 내용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쿼바디스(Quo vadis)』에 나오는 사도 베드로의 최후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 “베드로 행전”에 따르면, 사도 베드로는 로마에서 가르쳤는데, 아그리파 총독의 박해로 죽음의 위협을 느낀다. 그래서 베드로는 혼자서 로마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때 부활하신 예수님과 베드로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베드로가 성문을 나섰을 때 주님께서 로마로 들어가시는 것이 보였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십자가에 못 박히러 로마에 들어간다.”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가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베드로야.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다.”
● 결국 베드로는 다시 로마로 돌아가 십자가형을 당하게 되었다. 이것은 요한 21,18-19의 말씀대로이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 『쿼바디스』 소설과 영화에 따르면,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과 같은 방식으로 십자가에 달릴 자격이 없다고 말하며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리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 행전”에 따르면, 첫 인간 아담이 머리를 아래로 하고 태어났는데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림으로써 두 번째 아담이 되어 첫 아담에 의해 뒤바뀐 세상의 질서를 되돌려 놓으려 했다는 것이다.
■ 카라바조의 〈성 베드로의 십자가형〉
● 카라바조의 <성 베드로의 십자가형>(The Crucifixion of Saint Peter)은 1600-1601년 캔버스에 그린 유화로 230×175cm의 크기이며, 로마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Santa Maria del Popolo) 성당의 체라시(Cerasi) 경당에 소장되어 있다. 이 경당의 맞은편에는 같은 화가의 그림인 <성 바오로의 회심>이 전시되어 있다.
● 카라바조는 베드로 사도의 순교 장면을 사실적인 인물 묘사와 탁월한 빛의 처리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림의 배경을 이루는 짙은 어둠은 고요함을 표현한다. 빛은 그림의 왼쪽 위로부터 베드로의 주변으로 흘러내린다. 빛은 베드로가 허리에 두른 옷과 십자가 아래에 있는 이의 윗옷의 흰색, 그리고 황토색과 그림 왼쪽 위의 붉은색의 조합을 이루게 한다.
● 카라바조의 이 그림은 사도 베드로의 십자가형을 표현한 다른 화가들의 그림들과 비교된다. 많은 화가들은 베드로의 십자가형을 이미 일어난 사건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카라바조는 다른 방향에서 출발한다. 곧 그는 베드로가 못 박힌 십자가가 들어올려지는 순간을 묘사한다. 이와 같은 방식은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의 <성 베드로의 십자가형>과 유사한데, 이 그림은 현재 바티칸의 바오로 경당에 있는 프레스코화이다. 그러나 미켈란젤로 그림의 초현실적인 분위기와 많은 등장인물들의 묘사는 카라바조의 그림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곧 카라바조의 그림은 대단히 사실주의적이며 등장인물은 네 사람뿐이다.
● 카라바조가 그린 사도 베드로는 깊게 패인 주름의 이마가 벗겨진 백발의 늙은이이다. 그는 건장한 몸이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상태로 머리를 들어 고개를 돌리고 있는 베드로의 시선은 화면 밖 오른쪽 방향으로, 곧 체라시 경당의 제단을 향해 있다. 미켈란젤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몸을 뒤틀며 관람자를 응시하는 베드로를 그렸다면, 카라바조는 고통과 기도, 그리고 순교를 받아들이는 베드로의 모습을 그의 얼굴 표정에서 표현하고 있다. 카라바조의 베드로는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이 평범한 모습에서 화가는 못 박힌 손에서 보이는 극도의 고통을 감내하는 그리스도교적인 용기를 표현한다.
● 카라바조는 그림의 등장인물을 네 사람으로 제한한다. 베드로 주변에는 세 사람 이외에는 그 누구도 없다. 카라바조는 베드로 십자가형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필수적인 인물들인 순교자와 처형자들만을 등장시킨다. 베드로의 모습과 함께 사형 집행인 세 사람도 사실적으로 표현된다. 햇볕에 탄 얼굴, 더러운 발, 낡은 장비와 찢어진 윗옷 등의 모습은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고된 노동에 지친 하층 노동자의 모습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베드로가 못 박혀 있는 십자가를 세우려 애쓴다. 자신의 몸을 지렛대로 삼아 밧줄로 무거운 십자가를 끌어올리려 한다. 그의 얼굴은 밧줄을 잡은 두 팔 뒤에 가려져 있다. 베드로 사도의 얼굴 모습과는 달리 사형 집행인들의 얼굴은 가려져 있거나 불분명하게 나타난다. 다른 사람은 그를 도와 십자가를 들어 세우려 한다. 그림의 아래에는 삽과 베드로의 벗겨진 옷이 있다. 십자가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은 삽을 잡고 십자가를 세울 곳을 파고 있다. 삽질로 파낸 돌들이 보인다. 그림의 바닥은 이 십자가형 장면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큰 바위 위라는 것을 말한다. 이 바위는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마태 16,18)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이와 같이 카라바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베드로의 십자가형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카라바조는 이 그림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지금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리는 이는 누구이며, 그리스도의 고통에 동참하는 이는 누구인지를 질문하게 한다.
*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성서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연구소에서 성서학박사학위(S.S.D.)를 취득,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빛, 2016년 7월호, 송창현 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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