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성경의 세계: 판관 이야기 | |||
---|---|---|---|---|
이전글 | [문화] 성경, 문화와 영성19: 베드로의 십자가 |1| | |||
다음글 | [신약] 신약 여행7: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 |1| | |||
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07-11 | 조회수9,303 | 추천수2 | |
[성경의 세계] 판관 이야기 (1)
판관기는 구약성경 7번째 책이다. 히브리어는 쇼패팀(Shophetim)의 책이라 했다. 쇼패팀을 판관(判官)으로 번역한 것이다. 예전엔 사사(士師)라 했다. 주(周)나라 때 형벌을 맡아보던 관리가 사사였는데 그 용어를 차용한 것이다. 1977년 발간된 공동번역 성경에서 판관으로 고쳤다. 왕정 이전에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이다. 대부분 이(異)민족의 억압에서 군사적 영웅으로 화려하게 등장한다.
전쟁이 없을 땐 재판관이 되었고 전쟁에선 지휘관이 되었다. 하지만 12지파 전체를 장악하지는 못했다. 영향력은 한두 가문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 까닭에 강력한 권한의 왕정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사울을 첫 임금으로 공인한 사무엘이 마지막 판관이었다. 판관기는 극적인 삶을 살았던 12명의 쇼패트(shophet)이야기다. 이들 외의 판관도 물론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도 연대순으로 나열된 것은 아니다. 쇼패트는 판관 한 사람을 뜻하고 쇼패팀(Shophetim)은 여러 명의 판관을 가리킨다.
가나안 정착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숱한 전쟁을 겪었다. 12지파는 부족으로 연계되어 있었지만 느슨했다. 군사적 능력이 뛰어나면 쉽게 리더가 될 수 있는 구도였다. 출신이나 신분을 따질 개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히브리 족은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다. 판관의 등장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먼저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에 빠진다. 시간이 지나도 회개하지 않는다. 상황이 계속되자 인근 민족이 약탈한다. 고통이 커지면 그제야 왜 이런 일이 있는지 돌아본다. 주님의 징계와 보속임을 깨닫고 도우심을 청한다. 그러면 강력한 지도자를 보내 주셨다. 판관의 출현이다. 판관기 저자는 열두 지파에 맞추어 12명의 판관을 등장시킨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구전으로 전해졌기에 과장된 부분이 많다. 하지만 주제는 한결같다. 우상을 섬기면 이스라엘은 망한다는 것. 판관기는 이러한 교훈의 역사를 알리려 했던 책이다. 판관 역시도 괴력을 지닌 영웅이 본질은 아니다. 주님의 영을 받은 믿음의 사람이 본 모습이다. 판관시대는 여호수아 죽음을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 그의 죽음을 기원전 1250년경으로 보고 사울의 즉위를 기원전 1050년으로 본다면 200년 정도 된다. 다음은 12판관과 그들로 인한 평화 시기다. 오트니엘(40년) 에훗(80년) 드보라(40년) 기드온(40년) 삼가르(모름) 톨라(23년) 야이르(22년) 입타(6년) 입산(7년) 엘론(10년) 압돈(8년) 삼손(20년). [2016년 7월 10일 연중 제15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판관 이야기 (2)
첫판관 오트니엘(Othniel)은 칼렙의 동생인 크나즈의 아들이었다(판관 3,10). 조카인 셈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딸 악사(Aksa)와 혼인했기에 사위도 되었다(여호 15,17). 유목사회에서 근친혼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정착한 이스라엘은 토속 문화에 쉽게 빠져든다. 여호수아가 죽자 이 흐름은 빨라진다. 가나안 문화는 히브리인에겐 늘 매력이었다. 풍요와 다산을 주제로 한 쾌락문화였기 때문이다. 예언자들이 경계했 던 우상숭배의 본질이다. 결과는 언제나 이민족 지배라는 보속이었다.
오트니엘 이야기는 아람 나하라임(Aram-Naharaim)왕이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8년간 착취했다는 기록으로 시작한다(판관 3,8). 아람 나하라임은 메소포타미아 북부지역으로 아브라함이 초기에 머물렀던 곳이다(창세 24,10). 백성들은 뉘우치며 고통 속에서 구원을 갈구한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인물이 오트니엘이다. 주님께서 그를 택하시고 힘을 주셨던 것이다. 오트니엘은 민족을 구하고 판관으로 살아간다. 그의 치세 40년간은 평화가 유지되었다.
두 번째 판관은 에훗(Ehud)이다. 벤야민 지파로 왼손잡이였다. 고대 사회에서 왼쪽은 죽음과 연관된다. 태양이 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서방정토는 죽음 뒤의 서쪽이란 말이다. 성경의 최후심판도 왼쪽에 있던 이들을 지옥으로 보낸다(마태 25,41). 중세기사는 왼쪽 다리를 굽히며 절할 수 없었다. 이렇듯 왼손잡이는 편견 속에서 차별받았다. 그런데 에훗은 핸디캡을 딛고 당당히 판관으로 나선다. 하느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모압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판관기는 야자나무 성읍을 뺏겼다고 표현한다(판관 3,13). 오아시스가 있는 요충지를 강탈당한 것이다. 물론 우상에 빠진 보속이었다. 가나안 문화에 젖어 야훼신앙을 소홀히 했던 것이다. 에훗은 주님의 힘을 받아 모압 임금 에글론을 대담하게 살해한다. 모압 족을 몰아낸 뒤에는 80년간 평화를 지켰다.
세 번째 판관은 삼가르(Shamgar)다. 그에 관한 기록은 4장 31절이 전부다. 소몰이막대로 필리스티아인 육백 명을 죽이고 민족을 구했다는 내용이다. 드보라 노래에선 부정적으로 언급된다. 삼가르 시대에 상인은 끊기고 사람들은 큰길로 못 다녔다는 것이다(판관 5,6-7). 드보라의 등장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록을 축소한 것으로 여겨진다. 필리스티아인은 히브리인과 끝까지 싸웠고 한 번도 정복당하지 않은 이방인이었다. 그런 용사 600명을 막대기 하나로 제거한 삼가르였다. [2016년 7월 17일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판관 이야기 (3)
네 번째 판관 드보라(Deborah)는 여성이다. 어떻게 판관이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녀가 야자나무 아래 앉으면 사람들이 재판받으러 왔다는 기록만 있다(판관 4,5). 인적사항도 라피돗의 아내였다는 것이 전부다. 여성차별이 심했던 고대 사회에서 그녀의 출현은 신비스럽다. 두 번째 판관 에훗은 왼손잡이였다. 당시 관습으론 핸디캡이었다. 하지만 편견을 뛰어넘는다. 주님께서 뒤를 봐주셨기 때문이다. 드보라 역시 마찬가지다. 여성이지만 주님께서 함께하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더라도 남성중심의 유대민족이 드보라를 인정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학자들은 라피돗의 아내란 구절에서 현실적 답을 상상한다(판관 4,4). 라피돗에 대한 기록은 없다. 판관기의 기록이 유일하다. 그는 판관으로 살다 죽었고 드보라가 뒤를 이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주님께서 관여하신 일이었다. ‘여예언자 드보라’라는 구절이 입증한다.
당시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야빈 임금은 20년간 착취하며 히브리인을 괴롭혔다. 주님 눈에 거슬리는 행위를 한 결과였다(판관 4,1). 이스라엘이 울부짖자 주님께서 구원자를 보내셨다. 드보라다. 그녀는 가나안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주님께서 승리를 예언하셨다며 바락 장군을 전면에 내세운다. 하지만 그는 망설인다. ‘당신께서 함께 가지 않으면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그만큼 가나안 군대는 막강했던 것이다. 판관기는 철 병거 900대를 보유한 군대라고 이야기한다.
철 병거는 오늘날의 탱크다. 칼과 창으로 버티던 히브리인에게 가나안 군대는 공포였을 것이다. 더구나 철 병거 900대를 보유했으니 바락의 두려움은 당연했다. 하지만 주께서 개입하신 전쟁이었다. ‘당신은 오늘 승리할 것이오. 공격하시오.’ 드보라의 명령에 바락은 군사들과 함께 뛰어든다. 그녀 곁에 계시는 주님을 봤기 때문이다. 믿음의 군대로 돌변한 것이다. 이후 가나안 부대는 자멸하고 이스라엘은 승리한다. 신약의 히브리서는 바락을 믿음의 사람 대열에 넣었다(히브 11,32). 판관기 5장은 드보라의 승전가다. 기원전 12세기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구약의 가장 오래된 부분 중 하나다. 5장 이야기가 4장보다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전투에 참가했던 지파는 영웅으로 칭송되고 소집에 불응했던 지파는 비난받고 있다. 모든 지파가 참여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2016년 7월 24일 연중 제17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판관 이야기 (4)
다섯 번째 판관은 기드온(Gideon)이다. 그는 평범한 농부였다. 왼손잡이 판관과 여자 판관에 이어 보통사람 판관이 등장한 것이다. 빈약한 가문에 배경도 약했다. 하지만 주님께서 뽑으셨기에 위대한 기드온이 될 수 있었다. 그가 300명 병사로 미디안을 물리친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을 딴 단체와 조직도 후대에 많이 생겨났다. 소수정예로 큰일에 도전하겠다는 취지다.
그가 등장할 때 이스라엘은 미디안 족 압제 아래 있었다. 원래이들 본거지는 남쪽의 아라비아 반도였다. 기드온 시대엔 요르단 동편까지 올라왔고 틈만 나면 히브리인을 괴롭혔다. 그들의 침략으로 이스라엘은 초토화되어갔다. 백성들은 산속 동굴이나 도피처를 만들어 피신하곤 했다. 이스라엘의 울부짖음에 주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셨던 것이다.
당시 기드온은 밀 이삭을 떨고 있었다. 대놓고 타작하면 미디안 족에게 털릴 것 같기에 숨어서 떨고 있었다. 포도즙 짜는 곳간 안이었다. 그런 기드온을 힘센 용사라 격려하며 천사는 접촉했다(판관 6,12). 그리곤 미디안을 누르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명한다. 당연히 기드온은 망설인다. 자신 없다며 물러선다. 주님께서 함께하신다고 하자 표징을 요구했다. 철없는 요구였지만 주님께선 들어주신다. 제물로 바친 고기가 불에 타는 기적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기드온은 선택받았음을 깨닫게 된다.
첫 작업은 마을의 바알 제단을 부순 일이다. 낮에는 못하고 밤에 했다. 사람들이 몰려와 제지할 걸 생각한 것이다. 아직은 실권이 없는 기드온이었다. 날이 밝자 부서진 제단을 사람들이 봤다. 기드온을 죽이려 들자 아버지가 나섰다. ‘바알이 살아 있다면 직접 나와 보시오.’ 바알 신이 존재한다면 그렇게 되도록 가만 뒀겠느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답 못했다. 이렇게 해서 여루빠알(Jerub-Baal)이란 별칭을 얻었다. 바알에 맞선 자란 뜻이다. 주님의 영이 기드온과 함께 있음을 사람들이 안 것이다.
마침내 미디안과의 전투가 있었다. 지원자는 많았지만 300명 소수 정예만 남겼다. 상대는 12만이 넘는 대군이었다(판관 8,10). 하지만 주님께서 개입하셨기에 숫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승리 후 기드온은 왕으로 추대된다. 당연한 추대다. 하지만 거절한다. 자신의 위치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기드온이 위대한 판관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 [2016년 7월 31일 연중 제18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판관 이야기 (5)
여섯 번째 판관은 톨라(Tola)다. 기드온의 아들로 폭군이었던 아비멜렉 뒤를 정리했다. 그와 일곱 번째 판관 야이르(Jair)의 기록은 짧다. 두 판관시대엔 외부 침략이 없었기에 전쟁을 통한 공적이 없었다. 톨라의 역할은 아비멜렉이 남긴 공포정치 후유증을 청산하는 일이었다. 에프라임 산악 지대에 살면서 23년간 판관으로 있었다. 야이르는 톨라와 달랐다. 길앗에서 세력을 키우며 영화를 누렸다. 서른 명의 아들이 있었고 모두 나귀를 탔다.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닌 것이다. 그들에게는 마을이 하나씩 주어졌다. 야이르의 부락이라 불린 특수지역이다. 상황에 이르니 민중은 우상숭배에 젖어들었다. 결과는 암몬족 침입이었다. 요르단 강 동편에 살던 이민족으로 중심 도시는 라빠였다(1역대 20,1). 현재의 요르단 수도 암만(Amman)이다. 암만은 암몬에서 유래된 말임을 알 수 있다.
[성경의 세계] 판관 이야기 (6)
아홉 번째 판관 입찬(Ibzan)은 자녀가 많았다. 30명의 아들과 30명의 딸이 있었다. 외동딸만 있던 입타완 대조적이다. 판관기는 60명 자녀들의 배우자를 일가 밖에서 데려왔다고 전한다(판관 12,9). 일가 밖이란 표현을 이방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대체로 타 지파 사람으로 보고 있다. 아들딸을 모두 타 지파에 혼인시켰다면 의도적인 행위다. 지파 간 유대 강화를 위한 혼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재력과 수완이 넘쳤다는 말도 된다. 입찬은 7년간 판관으로 있었다. 생애 마지막 7년이었다. 우호적 부족들이 그를 판관으로 추대했을 것이다.
[성경의 세계] 판관 이야기 (7)
열두 번째 판관은 단 지파 출신의 삼손이다. 40년간 이스라엘을 착취하던 필리스티아를 견제하며 20년간 판관으로 있었다. 부친은 마노아였고 모친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어느 날 천사는 이들에게 나타나 아들의 탄생을 알린다. 그러면서 모태에서 하느님께 봉헌된 아이라 했다. 이른바 나지르인(Nazirite)이다(판관 13,5). 술 마시지 않고 머리털 깎지 않고 시체를 가까이하지 않기로 서약한 이들이다. 구약의 수도자들이었다.
[성경의 세계] 판관 이야기 (8)
삼손의 상대역으로 등장했던 필리스티아인은 가나안 토착민이 아니다. 지중해 동쪽에서 이주해온 해양민족이다. 구약성경엔 이들에 관한 언급이 200회 이상 등장한다. 접촉이 많았다는 암시다. 히브리인보다 먼저 가나안에 들어와 정착했다. 통일국가가 아닌 5개 도시연맹체를 이루고 있었다. 다섯 도시는 다음과 같다. 가자(Gaza), 아스돗(Ashdod), 에크론(Ekron), 아스클론(Ashkelon), 갓(Gath). 소년 다윗이 꺾은 거인 병사 골리앗은 갓 출신이었다.
[성경의 세계] 판관 이야기 (9)
이스라엘 판관은 정확하게 몇 명이었는지 모른다. 판관기 12명은 열둘이란 숫자에 맞추기 위한 설정이었을 뿐이다. 예수님 제자도 12명만은 아니다. 열둘에 맞추기 위해 12사도가 등장한 것이다. 이스라엘 12지파도 같은 맥락이다. 고대사회는 해와 달을 숭배했다. 달이 삭망 현상(초승달 - 상현달 - 보름달 - 하현달 - 그믐달) 열두 번 일으키면 한 해가 되었다. 열둘을 우주 조화의 숫자로 본 것이다. 12가 신성한 숫자로 등장하는 배경이다. 이후 근동에서 12는 완벽숫자였다.
마지막 판관은 사무엘이다. 그가 이스라엘 왕정(王政)을 도입했고 사울을 첫 임금으로 공인했다. 레위지파 출신으로 부모는 엘카나와 한나였다(1사무 1,19). 한나는 아이를 못 낳는 여인이었지만 간절한 기도로 사무엘을 낳았고 주님께 봉헌했다. 나지르인으로 키운 것이다. 이후 사무엘은 당시 판관이며 대사제였던 엘리의 제자로 들어가 후계자가 된다. 주님의 말씀이 늘 그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1사무 3,21).
엘리와 사무엘은 실로(shiloh)에서 활약했다. 당시 실로는 이스라엘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였다. 계약 궤가 모셔져 있었기 때문이다(1사무 3,3). 여호수아는 실로에서 지파별 땅 분배를 시작했고(여호 18,10) 전쟁이 시작되면 모두 이곳에 모였다(여호 22,12). 그만큼 중요한 장소였다. 엘리는 막강한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힘이 약했다. 군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파워는 지파 대표들에게 있었고 엘리는 종교적 업무만 수행할 뿐이었다. 말년에는 아들 때문에 곤혹스러워했다. 판관 신분으로 사기를 치고 다녔기 때문이다. 사무엘은 자연스 레 엘리의 후계자가 되었다.
이후 그는 우상타파를 시도한다. 민족의 시련은 우상으로 인한 보속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 민중은 우상을 멀리했고 이민족 침입도 없었다. 사무엘도 나이 들자 아들을 판관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아버지완 달랐다. 뇌물에 넘어가고 이권 개입으로 물의를 일으키곤 했다. 판관통치에 염증을 느낀 지파들은 왕정을 요구하게 된다. 임금이 통치하는 강력한 체제를 원했던 것이다. 그들은 사무엘에게 체제전환의 주역으로 나설 것을 주문한다. 이 또한 주님의 이끄심이었다(1사무 8,22). 사무엘은 미츠파에서 이스라엘 첫 임금을 선언했다(1사무 10,24). 벤야민지파 출신의 사울이다. 판관자리에서 물러난 사무엘은 고향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죽었다(1사무 25,1). [2016년 9월 11일 연중 제24주일 · 9월 18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이동(연중 제25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