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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의 세계: 판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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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7-11 조회수9,301 추천수2

[성경의 세계] 판관 이야기 (1)

 

 

판관기는 구약성경 7번째 책이다. 히브리어는 쇼패팀(Shophetim)의 책이라 했다. 쇼패팀을 판관(判官)으로 번역한 것이다. 예전엔 사사(士師)라 했다. 주(周)나라 때 형벌을 맡아보던 관리가 사사였는데 그 용어를 차용한 것이다. 1977년 발간된 공동번역 성경에서 판관으로 고쳤다. 왕정 이전에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이다. 대부분 이(異)민족의 억압에서 군사적 영웅으로 화려하게 등장한다.

 

전쟁이 없을 땐 재판관이 되었고 전쟁에선 지휘관이 되었다. 하지만 12지파 전체를 장악하지는 못했다. 영향력은 한두 가문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 까닭에 강력한 권한의 왕정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사울을 첫 임금으로 공인한 사무엘이 마지막 판관이었다. 판관기는 극적인 삶을 살았던 12명의 쇼패트(shophet)이야기다. 이들 외의 판관도 물론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도 연대순으로 나열된 것은 아니다. 쇼패트는 판관 한 사람을 뜻하고 쇼패팀(Shophetim)은 여러 명의 판관을 가리킨다.

 

가나안 정착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숱한 전쟁을 겪었다. 12지파는 부족으로 연계되어 있었지만 느슨했다. 군사적 능력이 뛰어나면 쉽게 리더가 될 수 있는 구도였다. 출신이나 신분을 따질 개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히브리 족은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다. 판관의 등장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먼저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에 빠진다. 시간이 지나도 회개하지 않는다. 상황이 계속되자 인근 민족이 약탈한다. 고통이 커지면 그제야 왜 이런 일이 있는지 돌아본다. 주님의 징계와 보속임을 깨닫고 도우심을 청한다. 그러면 강력한 지도자를 보내 주셨다. 판관의 출현이다. 판관기 저자는 열두 지파에 맞추어 12명의 판관을 등장시킨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구전으로 전해졌기에 과장된 부분이 많다. 하지만 주제는 한결같다. 우상을 섬기면 이스라엘은 망한다는 것. 판관기는 이러한 교훈의 역사를 알리려 했던 책이다. 판관 역시도 괴력을 지닌 영웅이 본질은 아니다. 주님의 영을 받은 믿음의 사람이 본 모습이다. 판관시대는 여호수아 죽음을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 그의 죽음을 기원전 1250년경으로 보고 사울의 즉위를 기원전 1050년으로 본다면 200년 정도 된다. 다음은 12판관과 그들로 인한 평화 시기다. 오트니엘(40년) 에훗(80년) 드보라(40년) 기드온(40년) 삼가르(모름) 톨라(23년) 야이르(22년) 입타(6년) 입산(7년) 엘론(10년) 압돈(8년) 삼손(20년). [2016년 7월 10일 연중 제15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판관 이야기 (2)

 

 

첫판관 오트니엘(Othniel)은 칼렙의 동생인 크나즈의 아들이었다(판관 3,10). 조카인 셈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딸 악사(Aksa)와 혼인했기에 사위도 되었다(여호 15,17). 유목사회에서 근친혼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정착한 이스라엘은 토속 문화에 쉽게 빠져든다. 여호수아가 죽자 이 흐름은 빨라진다. 가나안 문화는 히브리인에겐 늘 매력이었다. 풍요와 다산을 주제로 한 쾌락문화였기 때문이다. 예언자들이 경계했

던 우상숭배의 본질이다. 결과는 언제나 이민족 지배라는 보속이었다.

 

오트니엘 이야기는 아람 나하라임(Aram-Naharaim)왕이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8년간 착취했다는 기록으로 시작한다(판관 3,8). 아람 나하라임은 메소포타미아 북부지역으로 아브라함이 초기에 머물렀던 곳이다(창세 24,10). 백성들은 뉘우치며 고통 속에서 구원을 갈구한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인물이 오트니엘이다. 주님께서 그를 택하시고 힘을 주셨던 것이다. 오트니엘은 민족을 구하고 판관으로 살아간다. 그의 치세 40년간은 평화가 유지되었다.

 

두 번째 판관은 에훗(Ehud)이다. 벤야민 지파로 왼손잡이였다. 고대 사회에서 왼쪽은 죽음과 연관된다. 태양이 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서방정토는 죽음 뒤의 서쪽이란 말이다. 성경의 최후심판도 왼쪽에 있던 이들을 지옥으로 보낸다(마태 25,41). 중세기사는 왼쪽 다리를 굽히며 절할 수 없었다. 이렇듯 왼손잡이는 편견 속에서 차별받았다. 그런데 에훗은 핸디캡을 딛고 당당히 판관으로 나선다. 하느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모압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판관기는 야자나무 성읍을 뺏겼다고 표현한다(판관 3,13). 오아시스가 있는 요충지를 강탈당한 것이다. 물론 우상에 빠진 보속이었다. 가나안 문화에 젖어 야훼신앙을 소홀히 했던 것이다. 에훗은 주님의 힘을 받아 모압 임금 에글론을 대담하게 살해한다. 모압 족을 몰아낸 뒤에는 80년간 평화를 지켰다.

 

세 번째 판관은 삼가르(Shamgar)다. 그에 관한 기록은 4장 31절이 전부다. 소몰이막대로 필리스티아인 육백 명을 죽이고 민족을 구했다는 내용이다. 드보라 노래에선 부정적으로 언급된다. 삼가르 시대에 상인은 끊기고 사람들은 큰길로 못 다녔다는 것이다(판관 5,6-7). 드보라의 등장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록을 축소한 것으로 여겨진다. 필리스티아인은 히브리인과 끝까지 싸웠고 한 번도 정복당하지 않은 이방인이었다. 그런 용사 600명을 막대기 하나로 제거한 삼가르였다. [2016년 7월 17일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판관 이야기 (3)

 

 

네 번째 판관 드보라(Deborah)는 여성이다. 어떻게 판관이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녀가 야자나무 아래 앉으면 사람들이 재판받으러 왔다는 기록만 있다(판관 4,5). 인적사항도 라피돗의 아내였다는 것이 전부다. 여성차별이 심했던 고대 사회에서 그녀의 출현은 신비스럽다. 두 번째 판관 에훗은 왼손잡이였다. 당시 관습으론 핸디캡이었다. 하지만 편견을 뛰어넘는다. 주님께서 뒤를 봐주셨기 때문이다. 드보라 역시 마찬가지다. 여성이지만 주님께서 함께하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더라도 남성중심의 유대민족이 드보라를 인정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학자들은 라피돗의 아내란 구절에서 현실적 답을 상상한다(판관 4,4). 라피돗에 대한 기록은 없다. 판관기의 기록이 유일하다. 그는 판관으로 살다 죽었고 드보라가 뒤를 이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주님께서 관여하신 일이었다. ‘여예언자 드보라’라는 구절이 입증한다.

 

당시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야빈 임금은 20년간 착취하며 히브리인을 괴롭혔다. 주님 눈에 거슬리는 행위를 한 결과였다(판관 4,1). 이스라엘이 울부짖자 주님께서 구원자를 보내셨다. 드보라다. 그녀는 가나안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주님께서 승리를 예언하셨다며 바락 장군을 전면에 내세운다. 하지만 그는 망설인다. ‘당신께서 함께 가지 않으면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그만큼 가나안 군대는 막강했던 것이다. 판관기는 철 병거 900대를 보유한 군대라고 이야기한다.

 

철 병거는 오늘날의 탱크다. 칼과 창으로 버티던 히브리인에게 가나안 군대는 공포였을 것이다. 더구나 철 병거 900대를 보유했으니 바락의 두려움은 당연했다. 하지만 주께서 개입하신 전쟁이었다. ‘당신은 오늘 승리할 것이오. 공격하시오.’ 드보라의 명령에 바락은 군사들과 함께 뛰어든다. 그녀 곁에 계시는 주님을 봤기 때문이다. 믿음의 군대로 돌변한 것이다. 이후 가나안 부대는 자멸하고 이스라엘은 승리한다. 신약의 히브리서는 바락을 믿음의 사람 대열에 넣었다(히브 11,32). 판관기 5장은 드보라의 승전가다. 기원전 12세기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구약의 가장 오래된 부분 중 하나다. 5장 이야기가 4장보다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전투에 참가했던 지파는 영웅으로 칭송되고 소집에 불응했던 지파는 비난받고 있다. 모든 지파가 참여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2016년 7월 24일 연중 제17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판관 이야기 (4)

 

 

다섯 번째 판관은 기드온(Gideon)이다. 그는 평범한 농부였다. 왼손잡이 판관과 여자 판관에 이어 보통사람 판관이 등장한 것이다. 빈약한 가문에 배경도 약했다. 하지만 주님께서 뽑으셨기에 위대한 기드온이 될 수 있었다. 그가 300명 병사로 미디안을 물리친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을 딴 단체와 조직도 후대에 많이 생겨났다. 소수정예로 큰일에 도전하겠다는 취지다.

 

그가 등장할 때 이스라엘은 미디안 족 압제 아래 있었다. 원래이들 본거지는 남쪽의 아라비아 반도였다. 기드온 시대엔 요르단 동편까지 올라왔고 틈만 나면 히브리인을 괴롭혔다. 그들의 침략으로 이스라엘은 초토화되어갔다. 백성들은 산속 동굴이나 도피처를 만들어 피신하곤 했다. 이스라엘의 울부짖음에 주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셨던 것이다.

 

당시 기드온은 밀 이삭을 떨고 있었다. 대놓고 타작하면 미디안 족에게 털릴 것 같기에 숨어서 떨고 있었다. 포도즙 짜는 곳간 안이었다. 그런 기드온을 힘센 용사라 격려하며 천사는 접촉했다(판관 6,12). 그리곤 미디안을 누르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명한다. 당연히 기드온은 망설인다. 자신 없다며 물러선다. 주님께서 함께하신다고 하자 표징을 요구했다. 철없는 요구였지만 주님께선 들어주신다. 제물로 바친 고기가 불에 타는 기적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기드온은 선택받았음을 깨닫게 된다.

 

첫 작업은 마을의 바알 제단을 부순 일이다. 낮에는 못하고 밤에 했다. 사람들이 몰려와 제지할 걸 생각한 것이다. 아직은 실권이 없는 기드온이었다. 날이 밝자 부서진 제단을 사람들이 봤다. 기드온을 죽이려 들자 아버지가 나섰다. ‘바알이 살아 있다면 직접 나와 보시오.’ 바알 신이 존재한다면 그렇게 되도록 가만 뒀겠느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답 못했다. 이렇게 해서 여루빠알(Jerub-Baal)이란 별칭을 얻었다. 바알에 맞선 자란 뜻이다. 주님의 영이 기드온과 함께 있음을 사람들이 안 것이다.

 

마침내 미디안과의 전투가 있었다. 지원자는 많았지만 300명 소수 정예만 남겼다. 상대는 12만이 넘는 대군이었다(판관 8,10). 하지만 주님께서 개입하셨기에 숫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승리 후 기드온은 왕으로 추대된다. 당연한 추대다. 하지만 거절한다. 자신의 위치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기드온이 위대한 판관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 [2016년 7월 31일 연중 제18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판관 이야기 (5)

 

 

여섯 번째 판관은 톨라(Tola)다. 기드온의 아들로 폭군이었던 아비멜렉 뒤를 정리했다. 그와 일곱 번째 판관 야이르(Jair)의 기록은 짧다. 두 판관시대엔 외부 침략이 없었기에 전쟁을 통한 공적이 없었다. 톨라의 역할은 아비멜렉이 남긴 공포정치 후유증을 청산하는 일이었다. 에프라임 산악 지대에 살면서 23년간 판관으로 있었다. 야이르는 톨라와 달랐다. 길앗에서 세력을 키우며 영화를 누렸다. 서른 명의 아들이 있었고 모두 나귀를 탔다.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닌 것이다. 그들에게는 마을이 하나씩 주어졌다. 야이르의 부락이라 불린 특수지역이다. 상황에 이르니 민중은 우상숭배에 젖어들었다. 결과는 암몬족 침입이었다. 요르단 강 동편에 살던 이민족으로 중심 도시는 라빠였다(1역대 20,1). 현재의 요르단 수도 암만(Amman)이다. 암만은 암몬에서 유래된 말임을 알 수 있다.

여덟 번째 판관 입타(Jephtha)는 암몬족을 몰아낸 영웅이다. 하지만 유년시절은 참담했다. 아버지가 창녀와 관계해 낳은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형제들은 입타를 내쫓았다. 그는 도적이 되었고 비적두목으로 변신했다. 이스라엘이 암몬족 학대를 견딜 때였다. 이후 민중은 우상숭배를 뉘우치며 주님의 개입을 청했다. 이렇게 해서 발탁된 인물이 입타다.

그의 파워는 막강했던 것이다. 주님의 영이 입타에게 내렸기에(판관 11,29) 암몬과의 싸움에서 대승한다. 그런데 전투에 앞서 맹세를 했었다. 승리하면 환영하는 첫 사람을 번제물로 바치겠다고 한 것이다.

놀랍게도 첫 사람은 그의 딸이었다. 입타에겐 비극이었다. 딸을 잃은 슬픔인지 6년간 판관으로 있다가 죽었다. 입타는 에프라임 지파의 독주를 막았다. 에프라임은 요셉의 둘째 아들이다. 야곱이 이집트에 정착한 것은 요셉 때문이었다. 그런 연유로 장자권(맏아들 권리)을 줬다(1역대 5,2). 요셉 뒤를 잇는 것은 첫아들 므나쎄가 아니라 에프라임이었다(창세 49,20). 이런 배경으로 에프라임 지파는 특수신분을 자처했다. 솔로몬 사후 왕국 분열에서(BC 931) 주도권을 쥔 이유이기도 하다. 기드온 때 에프라임 지파는 자신들 동의 없이 미디안과 싸운 것을 문제 삼았다. 기드온은 몸을 낮추며 변명했다(판관 8,3).

에프라임 지파는 입타에게도 허락 없이 암몬과 싸운 것에 시비를 건다. 입타는 달랐다. 그들과 내전을 벌린 것이다. 하지만 실전을 치르고 온 입타 군대를 이길 수 없었다. 에브라임 지파는 42,000명의 전사자를 내고 대패했다(판관 12,6). [2016년 8월 7일 연중 제19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판관 이야기 (6)

 

 

아홉 번째 판관 입찬(Ibzan)은 자녀가 많았다. 30명의 아들과 30명의 딸이 있었다. 외동딸만 있던 입타완 대조적이다. 판관기는 60명 자녀들의 배우자를 일가 밖에서 데려왔다고 전한다(판관 12,9). 일가 밖이란 표현을 이방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대체로 타 지파 사람으로 보고 있다. 아들딸을 모두 타 지파에 혼인시켰다면 의도적인 행위다. 지파 간 유대 강화를 위한 혼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재력과 수완이 넘쳤다는 말도 된다. 입찬은 7년간 판관으로 있었다. 생애 마지막 7년이었다. 우호적 부족들이 그를 판관으로 추대했을 것이다.

열 번째 판관 엘론(Elon)은 10년간 판관으로 있었다. 즈불룬 지파였고 죽은 뒤 즈불룬 땅 아얄론에 묻혔다는 기록이 전부다. 짧은 기록에도 즈불룬은 3번 등장한다. 야곱과 레아 사이의 10번째 아들이 즈불룬이다. 하지만 라헬이 낳은 11번째 아들 요셉의 그늘에 늘 가려져 있었다. 그래서 강조한 것인지 모른다. 아얄론(Ajalon)은 예루살렘과 지중해 항구도시 텔아비브 사이에 있는 고원지대(분지)다. 현재의 중심도시는 얄로(Yalo)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발현하셨던 엠마오 역시 아얄론 분지에 있다.

11번째 판관은 압돈(Abdon)이다. 40명의 아들과 30명의 손자가 있었는데 나귀를 타고 다녔다고 전한다(판관 12,14). 유목사회에서 나귀는 화려한 교통수단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외제승용차를 몰고 다닌 셈이다. 재력가였음을 암시한다. 그런 이유로 판관에 추대되었을 것이다. 어떻든 아들과 손자까지 부를 누리게 했으니 대단한 아버지요 할아버지였다.

압돈은 피르아톤(Pirathon) 사람 힐렐의 아들로 소개된다. 소속 지파는 빠지고 인맥과 지연만 드러내고 있다. 그만큼 속화되었다는 표현이다. 피르아톤은 이스라엘 중앙을 관통하는 에프라임 산악지대 도시다. 나블루스(Nablus) 인근의 파라타(Farata)로 추정하고 있다. 다윗군대 장수였던 브나야의 고향이기도 하다(2사무 23,30). 압돈은 에프라임 지파였고 여덟 해를 판관으로 살다 숨졌다. 입타 이후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이방민족은 없었다. 그런 까닭에 특별한 사건은 없었고 기록 역시 단순하다. 입찬, 엘론, 압돈, 세 판관은 이 시대의 사법 책임자였을 것이다. 세 판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2명을 맞추기 위해 그들이 선택되었을 뿐이다. 12번째 판관 삼손이 등장할 때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 속국으로 등장하게 된다. [2016년 8월 14일 연중 제20주일 ·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 8월 21일 연중 제21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판관 이야기 (7)

 

 

열두 번째 판관은 단 지파 출신의 삼손이다. 40년간 이스라엘을 착취하던 필리스티아를 견제하며 20년간 판관으로 있었다. 부친은 마노아였고 모친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어느 날 천사는 이들에게 나타나 아들의 탄생을 알린다. 그러면서 모태에서 하느님께 봉헌된 아이라 했다. 이른바 나지르인(Nazirite)이다(판관 13,5). 술 마시지 않고 머리털 깎지 않고 시체를 가까이하지 않기로 서약한 이들이다. 구약의 수도자들이었다.

삼손은 괴력을 지녔지만 거인은 아니었다. 필리스티아 귀족이 삼손의 애인 들릴라를 부추기며 한 말이 있다. 그를 유혹해 어디서 힘이 나오는지 알아내라 한 것이다(판관 16,5). 보통 사람 몸매였기에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삼손은 당나귀 턱뼈로 천명의 필리스티아인을 죽였고 맨손으로 사자를 잡기도 했다. 주님의 영이 함께 하셨기에 가능했다(판관 14,6). 이끄심이 떠나자 그는 즉시 보통사람으로 돌아왔다.

삼손은 들릴라에 빠져 비밀을 털어놓는다. 힘의 원천이 머리털에 있음을 고백한 것이다. 들릴라가 머리털을 자르자 정말 힘을 쓰지 못했다. 그는 곧바로 잡혔고 눈이 뽑힌 채 맷돌 돌리는 노예로 전락한다. 히브리인의 판관에서 비웃음과 치욕의 포로가 된 것이다. 삼손은 지난날의 자만을 깨닫는다. 나지르인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의 최후를 판관기는 이렇게 전한다. 하느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한 번만 다시 힘을 주십시오. 그리하여 삼손이 죽으면서 죽인 필리스티아인이 사는 동안에 죽인 사람보다 더 많았다(판관 16,30).

히브리어로 태양은 쉐메쉬(shemesh)다. 삼손(Samson)의 어원으로 보고 있다. 유목사회에서 최고의 힘은 태양이었다. 그 힘과 삼손의 힘을 함께 본 것이다. 삼손의 비밀을 알아낸 들릴라는 히브리어 달랄(dalal)이 원형이다. 미약한, 연약한 뜻의 형용사다. 허약한 들릴라가 강한 삼손을 무너뜨린 것이다. 주님의 영이 떠났기 때문이다. 판관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느님의 영이 영웅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마지막 판관 삼손 이야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삼손 힘의 근원은 머리카락이 아니다. 하느님의 영(spirit)이다. 오늘날 힘을 지니려면 돈을 쌓고 권력을 가까이하며 인맥을 넓히라 한다. 하지만 언제라도 주님의 개입이 먼저다. 판관 이야기가 남긴 숨은 교훈이다. [2016년 8월 28일 연중 제22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판관 이야기 (8)

 

 

삼손의 상대역으로 등장했던 필리스티아인은 가나안 토착민이 아니다. 지중해 동쪽에서 이주해온 해양민족이다. 구약성경엔 이들에 관한 언급이 200회 이상 등장한다. 접촉이 많았다는 암시다. 히브리인보다 먼저 가나안에 들어와 정착했다. 통일국가가 아닌 5개 도시연맹체를 이루고 있었다. 다섯 도시는 다음과 같다. 가자(Gaza), 아스돗(Ashdod), 에크론(Ekron), 아스클론(Ashkelon), 갓(Gath). 소년 다윗이 꺾은 거인 병사 골리앗은 갓 출신이었다.

히브리인은 이들을 블레셋이라 했다. 필리스티아를 히브리말로 표기한 것이다. 새 번역(2005년 주교회의 발간) 성경에선 블레셋을 모두 필리스티아로 바꿨다. 히브리어 발음보다 원발음인 필리스티아를 선택한 것이다. 이제 성경에는 블레셋이란 용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새 번역 성경에서 야훼란 용어를 생략한 것도 같은 이유다. 히브리어 표기 야훼를 우리말 주님으로 모두 바꾼 것이다. 히브리인은 필리스티아를 PLST로 표기했다. 고대 히브리어는 자음만 있고 모음이 없다. 읽고 발음하는 건 오랜 관습으로 후대에 물려줬다. 이렇게 되자 8세기부터 유대인 학자들이 정확한 읽기를 위해 모음 기호를 개발했다. 점을 찍어 모음을 표시한 것이다. 이 표기에 따라 블레셋이란 단어가 등장했던 것이다.

삼손시대엔 이스라엘이 필리스티아에 맞섰지만 그 이후엔 힘을 쓰지 못했다. 사무엘 때 미츠파 전투 승리로 숨을 트지만(1사무 7,10) 길보아 싸움에선 대패한다(1사무 31,7). 임금 사울은 전사했고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 속국이 되었다. 이후 다윗이 왕으로 등장하자 그를 제거하려 여러 번 전쟁을 걸어왔지만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그러면서 점점 세력이 약해졌다. 솔로몬시대에는 이스라엘과 이집트 양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가 등장하자 이스라엘은 적대관계를 청산한다. 공동의 적 아시리아에 맞서기 위해 손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스라엘과 필리스티아는 아시리아 군대에 무참히 깨졌고 이후 바빌론과 페르시아, 희랍과 로마의 지배를 받다가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스라엘은 20세기 다시 등장하지만 필리스티아는 돌아오지 못했다. 필리스티아인 땅이란 뜻의 팔레스티나(Palestina) 용어만 살아남았다. 로마인이 유대 독립전쟁(AD 132~135)을 끝내고 만든 지명이었다. 가나안 땅은 유대인 땅이 아니라 그들과 적대관계였던 필리스티아인 땅이란 의미였다. 그만큼 당시 로마인들은 유대인에게 넌더리가 나 있었던 것이다. [2016년 9월 4일 연중 제23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판관 이야기 (9)

 

 

이스라엘 판관은 정확하게 몇 명이었는지 모른다. 판관기 12명은 열둘이란 숫자에 맞추기 위한 설정이었을 뿐이다. 예수님 제자도 12명만은 아니다. 열둘에 맞추기 위해 12사도가 등장한 것이다. 이스라엘 12지파도 같은 맥락이다. 고대사회는 해와 달을 숭배했다. 달이 삭망 현상(초승달 - 상현달 - 보름달 - 하현달 - 그믐달) 열두 번 일으키면 한 해가 되었다. 열둘을 우주 조화의 숫자로 본 것이다. 12가 신성한 숫자로 등장하는 배경이다. 이후 근동에서 12는 완벽숫자였다.

 

마지막 판관은 사무엘이다. 그가 이스라엘 왕정(王政)을 도입했고 사울을 첫 임금으로 공인했다. 레위지파 출신으로 부모는 엘카나와 한나였다(1사무 1,19). 한나는 아이를 못 낳는 여인이었지만 간절한 기도로 사무엘을 낳았고 주님께 봉헌했다. 나지르인으로 키운 것이다. 이후 사무엘은 당시 판관이며 대사제였던 엘리의 제자로 들어가 후계자가 된다. 주님의 말씀이 늘 그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1사무 3,21).

 

엘리와 사무엘은 실로(shiloh)에서 활약했다. 당시 실로는 이스라엘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였다. 계약 궤가 모셔져 있었기 때문이다(1사무 3,3). 여호수아는 실로에서 지파별 땅 분배를 시작했고(여호 18,10) 전쟁이 시작되면 모두 이곳에 모였다(여호 22,12). 그만큼 중요한 장소였다. 엘리는 막강한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힘이 약했다. 군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파워는 지파 대표들에게 있었고 엘리는 종교적 업무만 수행할 뿐이었다. 말년에는 아들 때문에 곤혹스러워했다. 판관 신분으로 사기를 치고 다녔기 때문이다. 사무엘은 자연스

레 엘리의 후계자가 되었다.

 

이후 그는 우상타파를 시도한다. 민족의 시련은 우상으로 인한 보속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 민중은 우상을 멀리했고 이민족 침입도 없었다. 사무엘도 나이 들자 아들을 판관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아버지완 달랐다. 뇌물에 넘어가고 이권 개입으로 물의를 일으키곤 했다. 판관통치에 염증을 느낀 지파들은 왕정을 요구하게 된다. 임금이 통치하는 강력한 체제를 원했던 것이다. 그들은 사무엘에게 체제전환의 주역으로 나설 것을 주문한다. 이 또한 주님의 이끄심이었다(1사무 8,22). 사무엘은 미츠파에서 이스라엘 첫 임금을 선언했다(1사무 10,24). 벤야민지파 출신의 사울이다. 판관자리에서 물러난 사무엘은 고향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죽었다(1사무 25,1). [2016년 9월 11일 연중 제24주일 · 9월 18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이동(연중 제25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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