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신약 여행7: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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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07-17 | 조회수7,026 | 추천수1 | |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7)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7) 모든 것 버리고 따라 나선 첫 제자들
- 예수님(왼쪽에서 두번째)이 부르시자 형 야고보(가운데)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무릎을 꿇고 있으며, 한 손에 가슴을 올린 채 동생 요한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마르코 바사이티 작, ‘제베대오의 아들들을 부르심’, 1510년, 아카데미아 갤러리, 이탈리아 베네치아.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에 만나게 되는 것은 제자들을 부르시는 이야기입니다.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제베대오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첫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어부였습니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에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시던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 표현의 원래 의미는 “나의 뒤로 (오너라)”입니다. 물론 ‘따라오라’는 의미도 담고 있는 것이지만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를 나타내는 표현처럼 들립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뒤에 있는 이들입니다. 철저하게 스승을 따르는, 그분을 본받는 이들이고 이것이 제자들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또한 마태오와 마르코는 이러한 부름에 제자들이 ‘곧바로’ 그물과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전합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부름과 그것에 지체 없이 응답한 제자들의 모습을 강조합니다.
루카 복음서가 전하는 첫 제자들의 이야기는 조금 더 구체적입니다(루카 5,1-11). 루카 복음이 전하는 이야기의 배경은 겐네사렛 호숫가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갈릴래아 호수는 여러 이름으로 불립니다. 갈릴래아 호수, 겐네사렛 호수, 티베리아스 호수(요한 6,1)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갈릴래아’라는 지명은 비교적 자주 찾을 수 있지만 ‘갈릴래아 호수’라는 표현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단지 ‘킨네렛 호수’(민수 34,11) 또는 ‘킨네렛 바다’(여호 12,3)라는 표현만 사용합니다. 구약 성경 시대에는 호수의 모양을 따라 킨네렛(수금 하프와 비슷한 이스라엘의 악기)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루카 복음은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르치기 위해 베드로의 배에 오르셨고 그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밤새도록 고기잡이에 실패한 베드로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 말씀에 따라 그물을 치고 상상하지 못할 만큼 많은 고기를 잡습니다. 이것에 놀란 베드로는 떠나 달라고 청하지만 이때에 예수님은 그를 부르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릅니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이지만 공관 복음서에서 공통되는 것은 첫 제자들이 모두 어부였고 예수님은 그들을 제자로 삼아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첫 제자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 가장 차이가 나는 것은 요한 복음입니다. 요한 복음에는 호수도 어부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아와 이름을 모르는 한 제자가 세례자 요한의 소개를 듣고 예수님을 따라가 함께 머뭅니다. 그들을 초대하는 요한 복음의 표현은 “와서 보아라”입니다(요한 1,39).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안드레아는 자신의 형인 베드로를 찾아가 말합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요한 1,41).
다른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첫 제자가 된 사람은 베드로입니다. 하지만 요한 복음에서 베드로를 예수님께 소개하는 인물은 안드레아입니다. 요한 복음은 첫 제자를 부르는 이야기에서도 특징을 보여줍니다. 요한 복음은 제자를 부르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증언’이라는 측면을 강조합니다. 안드레아는 베드로에게, 그리고 그 뒤에 등장하는 필립보는 나타나엘에게 예수님을 증언합니다(요한 1,43-51).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해 증언하는 것 역시 첫 제자들이 보여 주는 모습입니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들이지만 제자들을 부르시는 예수님 이야기는 공생활의 처음을 장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당신의 지상 사명을 이루어 갑니다. 이미 이때부터 교회는 잠재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시작한 것처럼 지금도 교회와 함께 구원을 이뤄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교회의 사명 역시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실현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7월 17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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