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자비의 해에 읽는 구약성경: 성역과 제단 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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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08-13 | 조회수10,571 | 추천수1 | |
[자비의 해에 읽는 구약성경] 성역과 제단 뿔
우리나라에서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20세기 후반에는 명동성당이 항쟁자들에게 성역이 되어주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1831년)에서는 성당 종지기 콰지모도가 위험에 놓인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성당으로 끌어들여 구했다.
- 브에르 세바 유적지에서 발견된 뿔 달린 제단.
이런 성역은 구약시대부터 이어진 전통으로, 당시에는 제단에 달린 뿔이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성막과 성전 제사의 중심이던 제단은, 백성이 제물을 바쳐 죄를 씻는 곳이자 하느님께서 당신을 백성에게 드러내시던 곳이다(레위 9,23-24; 1열왕 18,38 등 참조). 그 위에 달린 뿔은 자비의 상징으로, 우발적으로 살인하거나 억울하게 누명을 쓴 이가 뿔을 잡으면 주님의 용서와 보호를 바랄 수 있었다.
제단 제작과 봉헌
모세오경은 제단 짓는 지침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다. 특히 탈출 20,25은 다듬은 돌로 제단을 만들지 말라고 규정했다. 정을 대면 제단이 부정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 그대로의 돌로 제단을 지어 창조주 하느님을 섬기라는 뜻으로 보인다. 고대 유다 법전인 미쉬나(미돗 3,4)는 제단을 이렇게도 설명했다.
“제단은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관계를 화해시켜 주는 구실을 하지만, 정의 재료가 되는 철은 인간의 수명을 단축하는 무기 제작에 사용되어 왔다. 화해의 장소인 제단과 무기로 사용되는 철은 서로 융합될 수 없다.”
제단은 전례에 정식으로 사용되기에 앞서 기름을 부어 성별되어야 했다(탈출 40,10). 속죄 제물도 바치고(탈출 29,36-37) 그 피를 발라 정화시켜야 했다(레위 8,15 등 참조). 사람의 경우에는 속죄 제물이 죄를 대신하는 구실을 하지만, 제단 같은 기물의 경우에는 주님의 신성에 합당하지 못한 오염과 부정을 닦아내는 구실을 한다. 곧, 속죄 제물이 제단에 묻은 오염과 부정을 대신 짊어지고 사라지는 것이다. 제물의 피를 제단에 바르는 것은, 피가 곧 생명이므로 속죄의 힘을 지니기 때문이다(레위 17,11).
또한 피를 제단에 뿌림으로써, 희생 제물의 생명이 창조주 하느님께로 돌아가게 해준다. 그러한 이유로 이스라엘에서는 피를 먹는 것이 금지되었다(창세 9,4). 백성이 짐승을 사냥해도 짐승이 흘린 피를 땅에 묻어주어야 했는데(레위 17,13-14), 이 또한 창조주께 그 생명을 돌려드리려는 것이었다.
히브리어로 ‘거룩하다’라는 말은 ‘카도쉬’라고 하는데, ‘분리된’ 또는 ‘속세에 속하지 않은’을 뜻한다. 그래서 한때 속세에 속했던 물건을 거룩하게 하려면, 성유와 속죄 제물로 오염을 없앤 뒤 세속에서 분리해야 했다. 그러면 그 제단이 성역이 된다.
제단 뿔
제단은 백성이 속죄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곳에서 바친 번제물의 연기나 분향 제단의 향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주님의 분노를 누그러뜨려주었다(창세 8,21: “주님께서 그 향내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셨다.” 참조). 이런 제단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무엇보다도 잘 보여주는 부분은 뿔이다.
제단 뿔은 외부에서 만들어 가져다 붙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제단과 하나로 만들어야 했다(탈출 27,2; 30,2). 실제로 이런 형태의 제단이 ‘브에르 세바’나 ‘므기또’ 유적지 등에서 발굴되었다. 뿔은 제단의 핵심이므로, 피를 뿔에 바르면 제단 전체를 정화하는 의미를 지녔다(레위 4,18; 8,15). 뿔을 자르면 제단 전체를 파괴하는 행위가 되었다(아모 3,14 참조).
뿔이 제단의 핵심이 된 이유는 그것이 힘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황소와 같은 짐승의 힘을 떠올리게 한다(신명 33,17; 예레 48,25 등 참조).
시편은 하느님의 권능을 기리며 주님을 “구원의 뿔”(18,3)이라 찬양했다. 주님께서 다윗에게 뿔이 돋게 해주신다고도 찬송한다(132,17). 반대로 애가 2,3에는 이스라엘의 뿔이 꺾여 백성이 힘을 잃었다는 탄식도 나온다. 이스라엘 주변 민족들도 뿔을 힘의 상징으로 보아, 신들 머리에 장식하기도 했다.
제단 뿔이 이렇게 신성이 깃든 중심으로 여겨졌기에, 그걸 잡으면 하느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다만 흉계를 꾸며 살인한 경우에는 제단 뿔을 잡아도 소용이 없었다(탈출 21,14). 성경에서 제단 뿔을 잡은 대표적 경우는 솔로몬의 적수 아도니야와 아도니야를 지지한 요압 장군이다.
아도니야의 이야기
아도니야의 이름은 ‘야훼는 나의 주님’이라는 뜻이다. 아도니야는 헤브론에서 다윗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꽃미남’으로 유명했던 압살롬만큼 출중한 외모를 지녔던 듯하다(1열왕 1,6). 고대에는 왕족이 갖추어야 할 요건에 아름다운 용모가 포함되었다(다윗: 1사무 16,12; 임금 예찬 : 시편 45,2-3 참조). 다윗은 아도니야가 버릇없이 굴 때도 꾸짖는 소리 한번 하지 않고 키웠다고 한다.
이런 아도니야가 형들이 줄줄이 죽은 다음 장남 격이 된다. 맏형 암논은 누이 타마르를 욕보인 탓에 셋째인 압살롬의 손에 죽었다. 압살롬은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최후를 맞이하였다. 둘째인 킬압(2사무 3,3; 1역대 3,1에는 다니엘로 나온다.)은 존재가 미미하여 어릴 때 죽었거나, 그리 강한 왕자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아도니야는 왕권을 지레 자기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동생 솔로몬에게 기선제압을 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요압 장군과 에브야타르 사제가 서열 일인자로 보인 아도니야를 지지했지만(1열왕 1,7), 차독 사제와 나탄 예언자와 다윗의 용사들은 솔로몬을 지지했다(8절). 그러다 다윗이 나탄의 설득과 밧세바에게 한 약속(13절) 때문에 솔로몬을 후계자로 정하자, 아도니야가 성역으로 가서 제단 뿔을 잡은 것이다. 자신이 패했노라고 인정한 상태도 아니었기에, 성역을 떠나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었다.
아도니야는 심부름꾼을 통해 솔로몬과 협상하며 자기를 죽이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라고 요구한다. 이에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목숨은 살려주었지만, 맹세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도니야가 훌륭하게 행동해야 할 것과 악이 드러나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리라는 점을 조건으로 달았다. 곧, 솔로몬은 아도니야를 당장 처형할 수 있었지만, 제단 뿔을 잡은 그에게 자비를 베푼 것이다. 다만 조건을 붙였다는 점에서 그가 명민하고 조심스러운 인물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솔로몬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 사건은 압살롬과 다윗의 이야기를 연상하게 한다. 압살롬은 암논을 죽인 다음 아버지가 두려워 도망가지만, 요압 장군이 꾀를 써서 집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하지만 압살롬은 용서를 받고 자중한 것이 아니라, 왕위를 노리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본 솔로몬은 아도니야도 같은 길을 걷게 되리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아도니야는 압살롬 바로 아래 동생이었고, 둘 다 헤브론에서 태어났다는데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 의심은 결국 현실이 된다. 아도니야는 훈계 한번 받지 않고 자란 탓에 세상을 쉽게 보았다.
그래서 솔로몬이 풀어준 다음에도 아버지의 첩인 아비삭을 달라고 청하여 제 명을 재촉하는 어리석음을 보인다. 왕궁의 침소 점령은 왕위를 찬탈하는 대표적인 행위다. 압살롬도 궁전을 차지하자마자 옥상에 천막을 치고, 아버지의 여인들을 취하였다(2사무 16,21-22). 그러니 아도니야가 아버지의 첩을 요구한 것은 왕위에 대한 야망을 대놓고 드러낸 셈이다. 솔로몬은 이런 아도니야를 그냥 두지 않았다(1열왕 2,25).
요압의 이야기
요압은 츠루야의 아들로서, 다윗 군대의 총사령관이었다. 츠루야는 다윗의 누이다(1역대 2,16). 요압이 총사령관까지 올라간 데는 다윗의 혈연이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의 용맹함과 충성심이 무엇보다도 컸다.
요압은 다윗 군사들이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 군사들과 전쟁할 때, 처음 두각을 드러낸다(2사무 2,12-32).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할 때도 요압이 가장 먼저 올라가 여부스족을 침으로써, 다윗 군대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다(1역대 11,6). 암몬의 수도 라빠를 공격하여 왕성을 점령할 때는 다윗에게 전령을 보내, 그곳 성읍이 자기 이름으로 불리지 않게 먼저 점령하라고 할만큼 충성심이 깊었다(2사무 12,26-31).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 도망갔을 때 아들을 그리워한 다윗의 마음을 읽어낸 이도 요압이었다. 압살롬이 아비를 거슬러 반역하자 그를 진압한 이도 또한 요압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요압은 다윗의 명령을 무시하고 자기 식대로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아브넬이 다윗과 계약을 맺었는데도 그를 죽이고(2사무 3,39 참조), 아들을 죽이지 말라는 명령에도 압살롬을 처단했다. 다윗이 아마사를 높이 올렸을 때도 요압이 그를 죽였다(2사무 20,9-11). 다윗은 이런 행동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를 벌한 적은 없었다(1열왕 2,5). 그러던 요압이 아도니야를 지지하다가 궁지에 몰리고 만 것이다.
그가 제단 뿔을 잡은 것도 이때다. 하지만 솔로몬은 아도니야 때와 달리 요압을 즉시 죽게 했다. 탈출 21,14에 따르면, 악의로 살인을 저지른 경우에는 제단 뿔을 잡아도 소용이 없다.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것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였다. 다윗과 상관 없이 이루어진 일이었기에, 요압은 책임을 지고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만일 요압을 단죄하지 않으면 다윗이 그 살인에 연관되었다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 그러면 두고두고 왕실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문제다. 그래서 솔로몬은 요압을 단죄하여 아브넬과 아마사가 죽게 된 까닭을 분명히 하고 왕실 기반을 탄탄히 했던 것이다.
구원의 뿔
제단 뿔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공정하고 자비로운 성역이 되어 주었다. 이런 구원의 뿔이 신약 시대에는 성자 예수님으로 육화되기에 이른다(루카 1,69의 “힘센 구원자”를 직역하면 ‘구원의 뿔’이다). 그리고 위험에 놓인 이들을 구한 명동성당의 경우에서 보듯, 근대까지도 구약 시대의 제단 뿔의 의미가 이어졌다.
* 김명숙 소피아 -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구약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6년 8월호, 김명숙 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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