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히브리어 산책: 베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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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08-15 | 조회수6,786 | 추천수1 | |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베트 집을 형상화한 글자… 일하고 자고 먹는 ‘삶의 자리’
- <그림1> 원셈어의 베투. 베투의 가장 오래된 형태로, 집을 묘사한 것이다. 방, 벽, 울타리가 보인다.
히브리어 알파벳의 두 번째 글자는 ‘베트’다. 우리말의 ‘ㅂ’에 해당하는 소리가 난다. ‘집’을 의미하는 베트는 삶과 질서와 상상력을 의미한다. 이번호에서는 알파벳 탄생의 의미도 짚어보자.
집을 형상화
셈어 알파벳의 조상인 원셈어로 <그림1> 같은 글자들이 출토되는데, 이들이 베트의 기원이다.
이 글자들은 모두 ‘집’을 형상화한 것으로서, 방, 벽, 문, 울타리 등을 묘사한다. 집 안에 점을 한두 개 찍은 것은 화덕을 표시한 것 같은데, 집의 중심이 부엌이었기 때문이다. 원셈어로 집을 ‘베투’(betu 또는 bitu)라고 읽기 때문에, 이 고대의 글자를 흔히 ‘베투’라고 부른다.
삶과 질서와 상상력
두 번째 글자 베투에 얽힌 세 가지 의미를 나눠보자. 첫째, 베투(집)는 자연과 구별되는 인간적 삶의 공간이다. 일하고, 자고, 먹고, 말하고, 낳고, 기르는 ‘삶의 자리’가 집이다.
둘째, 베투는 구별과 질서를 의미한다. 집은 집 밖과 집안을 구별 짓고, 집안에서도 사람과 가축의 공간이 나뉜다. 화덕을 중심으로 삶의 순서와 위계가 펼쳐지는 공간이 집이다.
셋째, 베투는 상상력의 글자다. 원셈어 베투의 시선은 하늘이다. 실제 육안으로 체험된 건물이 아니라, 하늘에서 본 것처럼 집을 묘사하였다. 곧, 베투라는 글자는 상상도다. 집은 삶과 질서의 공간일 뿐 아니라, 동경하고 꿈꾸는 대상이다. 어쩌면 베투는 ‘지금 사는 공간’이라기보다는 ‘꼭 살고 싶은 집’을 형상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 <그림2> 우가릿어와 페니키아어의 베투. 왼쪽 우가릿어는 쐐기문자로서 토판에 찍은 것이고, 나머지 두 글자는 선형문자로서 그린 것이다. 선형문자 베투는 점차 이처럼 고정된 형태로 발전한다.
발전의 길
베투는 점차 발전했다. 이스라엘과 멀지 않은 우가릿이라는 도시국가에서는 <그림2>의 첫째 글자처럼 쐐기문자로 이 글자를 표현했는데, 역시 네모꼴의 집을 형상화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글자는 고대 페니키아에서 <그림2>의 둘째와 셋째 글자처럼 고정화된다. 삼각형의 폐쇄된 공간과 울타리가 있음을 볼 수 있다.
고대 아람인들은 <그림3>처럼 이 글자를 발전시켜, 폐곡선이 전혀 없는 개방적 형태의 집 모양을 탄생시켰다. 이 글자가 현재 우리가 배우는 구약성경 히브리어의 ‘베트’가 되었다. 한편 그리스인들은 페니키아 문자를 적극 수용했지만, 글자의 방향을 바꿔버렸다. 그리스어 두 번째 글자 ‘베타’라는 이름은 셈어 알파벳의 이름 ‘베투’(bet-u)에서, 주격 어미 ‘-우’(-u)를 탈락시키고, 자신들의 어미 ‘-아’(-a)를 붙인 것이다. ‘알푸’가 ‘알파’가 된 방식과 동일하다.
- <그림3>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의 형태. 왼쪽은 본디 아람어 문자인데, 현재 우리가 성경 히브리어의 ‘베트’로 배운다. 울타리가 터 있는 개방적 형태의 집이라고 할 수 있다. 가운데는 그리스어 ‘베타’이고, 오른쪽은 라틴어의 형태이다. 이 글자들은 페니키아 글자를 회전시키거나 방향을 바꾼 것이다.
알파벳의 고향은 좁은 땅
이런 고대셈어 알파벳의 탄생의 역사를 돌아보면, 소박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극단적 실용정신을 볼 수 있다. 알파벳이 탄생한 레반트 지역은 고대 근동에서 땅이 가장 좁은 곳이어서 큰 제국을 세우지도 못했고 오히려 늘 주변 큰 나라들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던 곳이었다. 이스라엘은 레반트 지역에 비교적 늦게 등장한 나라다.
예를 들면 메소포타미아 남부는 수메르, 바빌론 등이, 메소포타미아 북부는 아시리아가 발원하여 고대근동 세계를 호령했다. 아나톨리아 반도는 히타이트 제국의 고향이었고, 이집트는 전통적 강국이었다. 강대국들은 쐐기문자나 선형문자로 자신들의 고유하고 복잡한 문자체계를 발전시켰는데, 매우 어릴 때부터 체계적 교육을 받지 않으면 제대로 쓰고 읽기가 힘들었다.
소박하지만 실용적인 ‘가갸거겨’
레반트 지역의 작은 나라들은 스무 개 남짓한 알파벳으로 세계의 모든 글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알파벳을 탄생시켰다.
이웃 강대국의 문자와 전혀 다른 글자였다.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는, 극단적인 실용글자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이 글자들의 이름을 ‘알파벳’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우리는 알파벳이라는 이름을 쓴다. 알파벳은 ‘알파, 베타…’하는 글자의 순서를 지칭한, 마치 ‘가갸거겨’ 같은 소박한 이름이다.
황소를 가둔 집
베투는 알레프에 대한 인간의 대응이다. 셈어의 첫 글자 알레프(황소)는 최고신의 상징으로서, 신적 권능과 신적 질서를 뜻한다.
반면 두 번째 글자 베투는 인간적 질서와 인간적 상상력을 의미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극단의 실용정신을 발휘하여 알레프를 베투에 가두었다. 신을 집에 모시자, 누구나 쉽게 익혀 쓰는 알파벳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6년 8월 14일,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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