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히브리어 산책: 가돌, 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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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10-19 | 조회수5,971 | 추천수1 | |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가돌, 크다 높고 크다는 뜻, 하느님의 위대하심 표현하기도
- 가돌. ‘크다’는 뜻이다. 이 연재에서 처음으로 다루는 형용사이다.
가돌은 ‘크다’는 뜻이다. 이 소박하고 기초적인 낱말을 짚어보며, 무엇이 가장 큰지 생각해 보자.
큰 것
가돌은 본디 외형적으로 큰 것을 가리킨다. 높은 산도 가돌하고, (“큰 산” 즈카 4,7) 높은 탑도 가돌하다(“큰 탑” 느헤 3,27). “큰 성읍”이나(창세 10,12) ‘큰 소리’에도(“고함” 창세 39,14) 가돌이란 표현을 쓴다. 가돌한 딸은 “큰 딸”이요(창세 29,16) 가돌한 아들은 “큰 아들”이요(창세 27,1) 가돌한 사람은 “어른”이다(창세 19,11). 예언자 요나를 삼킨 것은 가돌한 물고기이다(“큰 물고기” 요나 2,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75세에 고향 우르를 떠나(창세 11,31; 15,7)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향했는데(창세 12,4),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가돌한 민족을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큰 민족” 창세 12,2). 숫자도 크게 불어나겠지만 그 백성의 의미가 위대하리라는 의미일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이 접할 수 있었던 가돌한 강과 바다는 동쪽의 유프라테스 강과 서쪽의 지중해인데, 성경은 그저 “큰 강”(창세 15,18; 신명 1,7 등)과 “큰 바다”(민수 34,6)라고 칭한다. 사실 ‘지중해’나 ‘유프라테스’ 같은 세련되고 정확한 이름은 유럽인들이 후대에 고안한 것이다. 성경은 가난하고 작은 백성들이 생활 속에서 소박하게 느끼고 살았던 이름을 우리에게 전해줄 뿐이다.
- 하르 가돌. 하르는 산을 뜻하므로, 하르 가돌은 ‘큰 산’을 의미한다. 형용사와 명사의 위치를 주의하라.
종의 큰 권한
가돌은 추상적인 의미도 있다. 창세기 39장에 “요셉과 포티파르의 아내” 이야기가 있다(7-20절). 대개 이집트 문학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는 이 이야기에서, 요셉은 이집트인 포티파르의 충실한 종으로 나온다. 그런데 어느날 주인이 집을 비우자 포티파르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했다.
현명한 요셉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는 포티파르의 아내를 꾸짖지도 않고, 반항하지도 않았다. 모욕하지도,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다. 그가 맨처음 한 일은 주인이 자신에게 큰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점을 담담하게 밝힌 것이다. 자신은 비록 종의 신분이지만 이 집에서는 사실상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집에서는 그분도 저보다 높지 않으십니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을 직역하면 “그분도 저보다 가돌하지(크지) 않으십니다”(창세 39,9)이다. 이어서 요셉은 하지만 마님에 관해서는 권한이 없으며, 자신은 악을 저지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차분한 대응에서 그의 지혜가 빛난다.
- 콜 가돌. 콜은 소리란 뜻이다(영어와 어느정도 비슷하다). 콜 가돌은 큰 소리를 의미한다. 역시 명사와 형용사의 위치를 주의하라.
큰 권력
가돌은 큰 힘을 의미하는데 쓰였다. ‘큰 사람’은 권력자를 의미했다. 그러므로 ‘성읍의 큰 사람들’은 “성읍의 대관들”(2열왕 10,6)이나 ‘성읍의 높은 자’(1사무 5,9; 2열왕 23,2)로, ‘임금과 큰 사람들’은 “임금과 대신들”(요나 3,7)로 옮긴다. 페르시아 왕궁에서 모르도카이는 점점 가돌한 사람이 되어 갔는데, 이는 ‘왕실에서 막강해진다’는 의미이다(에스 9,4). 고대근동 세계를 호령하던 아시리아의 임금은 임금들 중에서도 가장 가돌한 임금, 곧 ‘큰 임금’이다(“대왕” 2열왕 18,19.28).
자연스런 우리말 번역을 위해서는, 가돌처럼 폭넓고 다양하게 쓰이는 말을 이렇게 맥락에 따라 유연하고 다채롭게 옮겨야 한다. 하지만 어색하더라도 히브리어의 직역을 읽고 성찰하는 경험도 이따금 유익할 것이다. 원문 그대로의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부디 이 연재가 독자들에게 그런 느낌을 전달하여 성경의 언어가 친근하게 느껴지는데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 후안 데 라 코르테 작품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다’
큰 행위, 업적
히브리 백성은 가난하고 소박한 말로 하느님을 찬미했다. 가돌은 하느님을 기리는데 자주 쓰였다. 하느님이 가돌하시다는 말은 대개 ‘위대하시다’로 옮긴다(시편 48,2; 86,10; 96,4; 99,2 등). 하느님 뿐 아니라 하느님이 하신 일들도 크시다. 그렇다면 하느님이 하신 대표적인 큰 일은 무엇일까? 바로 이집트에서 가난한 백성을 구원하신 일이다. 그런 일은 하느님의 가돌한 일(“위대한 일” 2사무 7,21.23)이요, 그 일은 하느님의 가돌한 힘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큰 힘” 신명 4,37). 모세는 이집트에서 백성을 이끌어내신 일이야 말로 크고도 경외로운 일(“크고 두려운 일” 신명 10,21)이라고 역설했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6년 10월 16일,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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