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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히브리어 산책: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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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10-22 조회수7,609 추천수1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감


'또한', 강조의 의미 … 구약성경에 700회 넘게 나와

 

 

- 감. 히브리어 감이다. 미묘한 뉘앙스를 전달하는 데 자주 쓰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옮기기 어렵다.

 

 

히브리어 감은 우리말로 옮기기 힘든 말이다. 전교주일을 맞아 성경 원문 공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옮기기 힘든 말

 

어느 나라 말이든, 외국어로 걸맞게 옮기기 힘든 단어가 있다. 영어의 even, 독일어의 doch, 불어의 donc, 우리말의 아이고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모국어 사용자는 쉽게 쓰지만, 외국어로 배우려면 무척 까다롭다. 대개 이런 말들은 짧고 변화하지도 않지만(그래서 이런 품사를 ‘불변화사’라고 한다)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사전을 펼쳐 보면 용례에 따라 갖가지 의미가 주욱 펼쳐진다. 하지만 그 미묘한 뉘앙스를 문맥에 적절하게 파악하려면 적잖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히브리어 감은 이렇듯 감을 잡기 힘든 말이다.

 

 

또한, 강조

 

감의 대표적인 뜻은 ‘…도’, ‘또한’이다. 창세기 3장에는 태초에 죄를 짓는 장면이 묘사된다. 우선 여인이 탐스런 과일을 보고 따서 먹고, “남편에게‘도’” 주었다(창세 3,6). 이 때 감이 쓰였다. 어색하지만 원문을 직역하면 “감 남편에게” 준 것이다. ‘또한(감) 남편에게’ 주었다고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또한’은 문맥에 따라 강조하는 데도 쓰인다. 창세기 27장을 보면 야곱이 에사우의 복을 가로채는 장면이 나온다. 에사우는 아버지의 축복이 동생에게 돌아간 것을 알고 비통에 차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저에게, 저에게도 축복해 주십시오”(창세 27,34).

 

에사우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아버지, 감 나(를) 축복해 주십시오”이다. 우리말 성경은 ‘저에게, 저에게도’라고 반복하여 옮겼는데, 감의 강조하는 느낌을 생생히 살리기 위한 것이다. 아버지의 축복을 간절히 원하는 에사우의 마음이 감을 통해 전달된다.

 

- 감 아니. 동생에게 복을 빼앗기고 에사우가 한 말의 일부다. ‘아니’는 1인칭 대명사로서 ‘나’(I)를 뜻한다. 비통에 차 큰 소리로 울부짖는 에사우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 우리말로는 “저에게, 저에게도”라고 반복하여 옮겼다. 연두색으로 표시한 선은 마켑(maqqef)이라는 것인데, 두 단어가 긴밀히 결합되어 있음을 표시한다.

 

 

애매한 감

 

감과 관련되어, 애매하기 그지없는 예를 하나 소개한다. 유다의 임금 여호사팟의 맏아들 여호람은 부왕을 이어 왕위에 올랐는데, 아우들을 죽이는 등 악한 일을 많이 저질렀다(2역대 21,1-6). 게다가 그는 “유다 산악 지방에 산당을 세워” 백성들을 “그릇된 길로 이끌었다”(11절).

 

이 대목의 원문을 보면, “감 그가 산당을 세웠다”로 나온다. 이를 어떻게 옮겨야 할까? 대략 세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또한 그가 (산당을 만들었다)’, 곧 ‘그’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니면 ‘또한 산당을 (그가 만들었다)’, 곧 ‘산당’을 강조한 의미로 새길 수 있다. 이도 저도 아니고 부사로 옮겨, ‘더구나 (그는 산당도 만들었다)’로 옮길 수도 있다. 세 가능성 모두 근거가 있다.

 

하지만 이 점에서 세계적인 석학들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는 형국이다. 영어·독일어·프랑스어 성경 번역본들을 비교해 보라. 위 세 가지 경우를 다 찾아볼 수 있다. 수천 년 전 사멸한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를 현대어로 가장 가깝게 옮기는 일은 절대 쉬운 작업이 아니다. 필자는 이런 구절을 보며 전 세계 성경 번역자들의 땀과 고뇌를 떠올린다. 감 같은 하나의 낱말을 놓고 수많은 밤을 하얗게 새웠을 그 분들의 노고에 공감하고 깊이 감사드린다.

 

- 아크. 아크도 감처럼 느낌을 전달하는 말로서, ‘예’, ‘그럼요’, ‘오직’, ‘그런데’, ‘하지만’ 등으로 다채롭게 옮긴다. 이런 작은 불변화사는 히브리어에 풍부하다. 이따금 한 문장에 이런 낱말이 두 개나 세 개가 섞여 나오면, 그 느낌을 온전히 번역하기는 불가능하다. 원문을 그대로 읽지 않는 이상 그 느낌을 가까이 알 수 없을 것이다.

 

 

전교와 경전공부

 

감은 구약성경에 700회 이상 등장한다. 히브리어에는 감칠맛 나는 뉘앙스를 표현하는 다른 단어도 많다. 그래서 성경 원문의 다채로운 느낌을 체험하려면, 원문을 직접 읽고 새기는 수밖에 없다. 공부에 왕도는 없지 않은가. 반복적으로 꾸준히 하지 않는 이상, 어느 외국어도 쉽게 잡히지 않는다. 게다가 성경은 수천 년 전 머나먼 땅에서 발생한 문서이고, 히브리어 성경이 한글로 직역된 세월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전교주일이다. 우리 민족에 불교와 유교가 전래된 역사를 떠올려 보자. 우리 조상들은 경전을 읽고 새기는 데 게으르지 않았다. 지금도 한반도에는 한문으로 된 불교와 유교 경전을 원문 그대로 읽고 해석하고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지식인들이 풍부히 존재한다. 반면에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나 라틴어 등으로 된 그리스도교의 수많은 원천 문헌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신앙인의 숫자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이런 상황에서 구약성경 히브리어를 우리 신앙인들에게 친근하게 소개하는 이런 기회가 평신도에 허락되어 필자는 무척 감사하게 느낀다. 부디 독자들이 구약성경 히브리어와 가까워지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며 연재를 이어갈 뿐이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6년 10월 23일,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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