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히브리어 산책: 넷째, 달레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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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11-10 | 조회수7,263 | 추천수1 | |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넷째, 달레트 생과 사, 구원의 모든 문은 하느님 손에 달려
히브리어의 네 번째 글자는 달레트이다. 히브리어로 문(門)을 델레트라고 한다. 달레트 글자는 문(델레트)을 형상화한 것이다.
- <그림1> 고대 이집트어의 달레트. 달레트의 가장 고대적 형태로 문짝을 형상화한 듯하다.
세모와 네모의 문
달레트의 가장 오래된 형태는 고대 이집트어에서 볼 수 있다. <그림1>을 보면, 문짝 한 개만 형상화했음을 알 수 있다. 세로로 서 있는 문짝이나 가로로 뉘어 놓은 문짝이다.
시간이 지나며 달레트는 <그림2>처럼 점차 네모형과 세모형으로 발전한다. 대개 네모형은 곧게 서 있는데, 세모형은 비스듬하게 묘사된다.
이렇게 세모와 네모로 분화된 이유는 농경과 유목의 주거형태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안정된 집이 있는 농경민은 직립의 네모 문짝을 설치했을 것이다.
- <그림2> 원셈어의 달레트. 원셈어에서 달레트는 ‘수직의 네모형’(왼쪽 검은색 두 글자)과 ‘비스듬한 세모형’(오른쪽의 파란색 세 글자)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풀밭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던 유목민의 천막 입구는 마치 커튼처럼, 비스듬한 삼각형의 형태였을 것이다. 대개 원셈어 계통에서 이렇게 기울어진 삼각형이 많이 나타난다.
다양한 진화
달레트는 <그림3>에서 보듯, 다양하게 진화했다. 우가릿어 쐐기문자를 보면, 문짝이 아니라 문 전체를 형상화한 것 같다. 현대 히브리어 글자는 직립의 네모 문짝에서 발전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스어의 네 번째 글자 델타의 대문자와 소문자는 원셈어의 세모형을 다양하게 변형시킨 것이다. ‘델타’라는 이름도 ‘달레트’에서 모음만 살짝 바뀐 것이다.
- <그림3> 다양하게 발전한 달레트. 현대 히브리어(붉은색)는 ‘수직의 네모형’이 발전한 것이고, 우가릿어 쐐기문자(초록색)도 문짝을 형상화한 듯하다. 한편 그리스어 델타(푸른색)는 원셈어의 ‘비스듬한 세모형’을 변형한 것이다. 이런 변형에서 소문자 d의 조상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에트루리아인 등과 일부 그리스인들은 <그림4>처럼 삼각형의 문짝을 완만하게 구부려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삼각형의 3획을 2획으로 줄였다. 결국 2획의 뚱뚱하고 실용적 형태가 라틴어의 D로 정착되어 유럽어에 전승되었다. 영어로 문을 뜻하는 ‘도어’(door)의 첫글자가 본디 문(델레트)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 재밌다.(이밖에 물고기 또는 여성의 젖가슴으로 이 문자를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 <그림4> 달레트의 라틴어로 진화하는 과정. 3획으로 써야 하는 ‘비스듬한 세모형’의 달레트를 2획으로 줄인 뚱뚱한 형태의 달레트는 라틴 문자 D로 전승되었다.
하늘과 바다의 문을 여시는 하느님
델레트는 구약성경에 비교적 자주 등장한다. 사람이 사는 집의 문(판관 16,3; 2사무 13,17)이나 성전의 문(1열왕 6,31.32 등)이나 성읍의 문(신명 3,5) 등에 쓰인다.
구약성경에는 하느님의 ‘델레트를 여닫는 권능’을 찬미하는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써진 당시의 세계관을 알아야 한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바다처럼 하늘에도 물이 차 있다고 생각했다. 하느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 둘째 날에 “궁창이 생겨, 물과 물 사이를 갈라놓아라”(창세 1,6)고 명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그래서 궁창 아래 바다에도 물이 차 있고, 궁창 위 하늘에도 물이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다. 하늘이 푸른 이유는 바다처럼 물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며, 우리는 물과 물 사이의 빈 공간에 산다고 믿었다.
윗물과 아랫물은 성격이 다르다. 아랫물인 바다는 자주 혼돈과 파괴의 힘을 상징했다. 한편 윗물은 비가 되어 대지를 촉촉이 적셔 만물을 살찌운다. 하느님은 “하늘의 델레트들을”(시편 78,23) 여시는 분으로서 풍요의 원천이시다. 동시에 하느님은 “델레트를 닫아 바다를 가두”시는(욥기 38,8) 분으로서 진정한 질서의 원천이시다. 이렇게 하느님은 아랫물과 윗물이 흐르는 길목에 델레트(문)을 두시어 세상을 다스리신다. 천상과 저승으로 가는 문도, 생사와 구원의 모든 문도 하느님의 손에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여닫으시는 문 주위에서 그분의 영광과 지혜를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잠언의 저자는 ‘날마다 하느님의 집 델레트를 살피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하여라!”(잠언 8,34)고 외친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6년 11월 6일,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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