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바오로 영성의 주제들: 생태론자 바오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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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11-12 | 조회수4,801 | 추천수1 | |
[바오로 영성의 주제들] ‘생태론자’ 바오로
“우리의 공동 가정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환경 문제는 총체적 위기이며 세계 전체의 문제임을 지적합니다. 성경은 영적인 영역만이 아니라 현대세계의 긴급한 문제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생태론자’로서 바오로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바오로, 생태론자?
바오로는 생태와 조화를 이루며 산 고대 사람이기에 오늘날 생태론자들이 제기하는 것과 같은 문제를 제기하거나 학자들이 소개하는 생태학적 지식을 갖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삶을 보면 그가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력을 충분히 체험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의 선교활동은 한 도시나 집안이 아니라 대부분 긴 거리를 오가는 선교 여행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도 여행을 다녀오면 특이한 자연이 기억에 남지 않습니까? 당시에 바오로는 걸어서 또는 배로 여행하면서 자연에 대해 깊은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 자연과 하느님에 대해서 많이 성찰했을 것입니다.
바오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바오로가 자기 서간에서 가장 많이 인용한 책이 시편과 이사야서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바오로는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하느님 말씀, 특히 시편을 여행 중에 읽고 기도하면서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자연에 하느님이 계심을 알았을 것입니다.
이사야서에서도 하느님은 창조주이심을 거듭해서 말합니다.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줄도 지칠 줄도 모르시고, 그분의 슬기는 헤아릴 길이 없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주신다”(40,28-29).
바오로가 서간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듯이 자신의 자연에 대한 체험이나 성찰을 말하지 않지만, 그가 사랑했던 성경을 통해 끊임없이 하느님 앞에서 인간의 삶은 그분께서 창조하신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그 자연을 돌보는 것임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의 창조주 하느님
교황은 「찬미받으소서」에서 환경 위기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며 창조주이시라는 것을 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가르칩니다. 하느님에 대한 감각은 자연에 대한 감각과 연결된다는 것이지요.
바오로가 늘 드러내놓고 표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하느님 이해는 유다인들의 성경에 표현된 내용을 근거로 삼습니다. 바오로에게 하느님은 무엇보다 모든 피조물의 창조주이십니다.
바오로의 근본 사고는 하느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어 끊임없이 돌보신다는 신앙입니다.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바오로 세계관의 배경을 이룹니다(창세 1-2장; 2코린 4,6 참조). 유다 신학은 이방인의 사고와는 대조적으로 창조를 하느님의 은총 행위라고 이해했습니다. 창조는 본질에서 좋은 것인데, 나약한 인간의 죄가 창조를 망쳐놓았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시는 권능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늘에서 만물을 다스리시지만, 인간의 운명은 이 세상에 남아 온갖 문제와 투쟁하는 것입니다.
바오로의 선교 설교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개념은 바오로가 선교 여행을 하면서 특히 이방인들에게 한 설교에서 핵심을 차지합니다. 바오로가 리스트라(사도 14,15 참조)와 아레오파고스에서 한 설교(사도 17,24 참조)를 통해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바오로의 생각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세상의 주인이십니다(1티모 6,13.17 참조). 하느님께서는 한 사람에게서 온 인류를 만드셨습니다(사도 17,25-26 참조). 하느님은 비와 풍요로운 계절을 주시는 분(사도 14,17; 17,26 참조)이십니다. 그가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시는 분이시라고 말할 때 우리는 비를 내리고 풍산을 관장하며 농경물을 풍요롭게 하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지금까지 ‘창조주 하느님’과 관련하여 인용된 구절에서 우리는 몇 가지 사항을 관찰하게 됩니다. 첫째, 인간과 자연계 사이의 상호 의존성입니다. 인간이든 자연계이든 모두 기원은 같기 때문입니다. 둘째, 생태계 전체의 구조는 인간의 좋은 삶을 목적으로 합니다. 셋째, 절기와 계절 등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은 창조주의 존재, 힘과 선함을 인식하게 하려는 것입니다(사도 17,27 참조). 넷째, 인간은 하느님의 숨을 가진 존재이므로 자연 자원을 이용하고자 하느님의 창조 업적에서 명확한 역할을 갖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당신께서 창조된 것 안에 자신을 계시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로마 1,20 참조). 전체로서 하느님의 인격이 아니라 ‘하느님에 관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을 계시하십니다(1,19 참조).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숨어 계십니다.
본질에서 하느님은 비가시적이십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그분을 아는 것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바라봄으로써, 또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해 경탄하고 감상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우리는 자연에서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는 미학적인 체험을 하게 됩니다.
모든 피조물이 신음하고 있다
자연계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신약성경에서 가장 잘 표현한 본문은 로마서 8,19-23입니다. 바오로는 이 본문에서 종말에 하느님께서는 인간만이 아니라 심지어 자연도 손상된 상태에서 역전시킬 것임을 강렬하게 묘사하십니다.
바오로는 자연계를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곧, 피조물(ktisis)은 현재 인간의 죄 때문에 ‘허무’의 지배 아래 들었고, ‘멸망의 종살이’를 살게 되었다고 묘사합니다(로마 8,20-21 참조). 그러나 피조물이 겪는 고통은 죽어가는 피조물이 죽기 전의 진통이라기보다는 영광스러운 새 세상으로 이끄는 출산의 진통과 같습니다.
이 본문에는 유다 배경에 뿌리를 둔 묵시문학적 세계관이 담겨있습니다. 바오로는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고 믿었습니다(1코린 7,31; 필리 4,5; 1테살 5,2 참조). 바오로는 종말의 정확한 시간에 대해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메시지에는 종말이 다가온다는 긴박감이 담겨있습니다. 그는 또한 하느님께서 인간의 역사를 책임지시고 그 결과를 예정하셨으며(로마 8,28-30 참조), 마지막에는 승리하시리라고(8,18-25; 1코린 15,20-28 참조) 믿습니다. 이 본문을 성경의 묵시묵학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생태론적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요소들이 담겨있습니다.
첫째,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개인적인 인간의 영혼이나 새로운 공동체의 집단적인 구원만을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당신과 화해시키게 하셨습니다’(콜로 1,20 참조).
하느님의 우선권은 인간의 구원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에게서 자연을 올바르게 다스리고 돌보라는 소명을 받은 하느님의 사절이기 때문에, 인간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 나머지 피조물도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서 다시 회복될 것입니다. 세상을 지배하라는 구약의 개념은 파괴하라는 것이 아니라 간직하고 열매를 낳으라는 것이 바오로에게서 확인됩니다.
둘째, 인간은 자연과 근본적인 연대를 갖습니다. 우리가 죄의 결과에서 자유롭게 되기를 갈망할 때, 자연도 우리와 함께 그것을 갈망하며 탄식합니다(로마 8,22-23 참조). 우리는 영적인 존재이자 몸을 가진 존재입니다. 하느님께 구원된 백성의 운명은 멸망의 종살이에서 풀려나 부활한 몸을 가지고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로마 8,21; 묵시 21-22장 참조).
셋째, 하느님께 구원된 자녀들은 자연을 돌보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의 묵시문학에서 물질세계는 인간이 지은 죄의 희생자로서 고통을 겪습니다. 물질세계가 본디 악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영지주의에서는 물질세계가 악한 것이라고 말하나 그리스도교는 물질계에 대해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구약성경에서부터 물질세계도 하느님 백성의 종말론적 영광에 동참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이사 55,13; 65,17). 하느님께서는 손상된 피조물을 구원하시기를 계획하시기 때문에(로마 8,19.21 참조) 우리도 하느님의 이 계획에 따라 지금의 물질세계를 보호하는 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나아가 바오로의 그리스도론은 생태론을 풍요롭게 합니다. 바오로의 그리스도론은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입니다. 그리스도는 인간만이 아니라 바람, 산소 오존층, 바다의 움직임 등 자연의 모든 요소를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창조되었을 뿐 아니라, 나아가 그분 안에서, 그분을 통하여 구원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로마 8,19). 이 구절은 인간이 피조계에 지는 구체적인 책임을 암시합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해서 창조적인 활동을 하고 계신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피조계를 양육하고 보호하며 발전시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공동 협력자입니다.
그리스도인, 생태 보호에 앞장서는 사람
「세상을 바꾼 두더지」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땅속에서 날마다 굴만 파며 살던 두더지 몰이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다가 바이올린 연주에 홀딱 반해 바이올린을 사서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합니다. 마침내 땅속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나와 땅 위에서 싸우던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기적을 낳습니다.
저는 그 그림책을 읽고 인간은 모르지만 땅속에서, 숲에서, 하늘에서, 바다에서 엄청난 생명의 기적들이 날마다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인간은 자연과 대화를 단절하고 자신만의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맡기신 공동의 집, 세상은 정말 놀라운 장소입니다. 새와 나무, 바람과 숲, 바다와 하늘! 자연은 인간과 달리 어떤 소유욕이나 근심 없이 자유롭게 하느님께서 주신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생태 문제는 특별히 소수의 관심사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관심사입니다. 우리는 ‘생태론자’ 바오로에게서 창조주 하느님을 기억하고 그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생태 보호에 앞장서는 사람이 되라는 영감과 격려를 받습니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창공은 그분 손의 솜씨를 알리네”(시편 19,2).
* 임숙희 레지나 - 엔아르케성경삶연구소 대표이며, 대전가톨릭대학교 부설 혼인과 가정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영성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6년 11월호, 글 임숙희 · 그림 서소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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