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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히브리어 산책: 담,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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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27 조회수6,861 추천수1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담, 피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히브리어로 피는 담이다. 담은 인간과 짐승의 붉은 혈액을 가리킨다.

 

- 담. 피를 히브리어로 ‘담-’이라고 한다. 달레트(d) 안의 하늘색 점은 일부 자음(bgdkpt)으로 음절이 시작할 때만 쓰이는 것으로(약한 다게쉬), 이  경우 d를 겹쳐 쓰지 않는다.

 

 

에돔 검붉은색

 

히브리어로 ‘아돔’은 ‘붉다’는 뜻인데, 담에서 나온 낱말이다. 그리고 ‘아돔’과 형태가 비슷한 말로 ‘에돔’이 있다. 이스라엘의 먼 친척 에돔족의 이름이다. 창세기는 에돔족의 조상 에사우가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에게 “저 아돔(붉은 것), 그 아돔(붉은 것) 좀 먹게 해 다오” 하고 말하였기에, 이름을 에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창세 25,30).

 

그런데 담(피)처럼 붉은(아돔) 것이라면 어떤 색에 가까웠을까? 토마토 같은 새빨간 색일까? 아닐 것이다. 오히려 피가 오래되어 엉긴 색으로서, 팥죽 같은 거무튀튀한 붉은색일 가능성이 크다. 에돔이 원한 음식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팥죽 같은 것을 좀 먹게 해 달라고 말했던 것 같다.

 

 

피는 생명이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피를 단순한 액체가 아니라 생명 그 자체요, 가장 근본적인 생명의 에너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짐승을 잡을 때면, 목을 따고 고기를 거꾸로 매달아, 굳기 전에 피를 땅에 모두 흘려보냈다. 피를 다 빼고 나서야 비로소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다(신명 12,15-24; 참조: 레위 3,17; 19,26 등). 땅에 피를 흘려보내면, 생명력을 받은 땅에서 풀이 돋아나고, 다시 그 풀을 먹은 짐승이 자라서, 창조질서에 합당하게 생명의 순환이 이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아돔. 담(피)에서 파생한 말로, 피의 색을 가리킨다. 피가 말라붙어 거무튀튀한 붉은색을 가리킨다.

 

 

고대 유목민의 소박한 체험과 지혜에 바탕한 이런 생각은 현대의 생태학과도 부합한다. 또한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리고, 인간은 오직 자신의 유한한 목적에 부합하는 만큼만 취하라는 가르침도 깃들어 있다. 그러므로 고대 이스라엘에 선짓국은 없었다. 고기를 피째 먹는 것은 죄에 속했다(1사무 14,31-35). 전통적인 유다인들은 지금도 이 규정에 따라 육류를 생산하고 유통한다.

 

 

피는 사악함을 물리친다

 

피는 그 자체로 생명이지만, 또한 악한 기운을 물리쳐 다른 생명을 지키는 역할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붉은 동지팥죽을 먹음으로써 사악한 귀신을 물리치고 새해의 복을 비는 풍습이 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붉은 피는 잡신이나 악령을 쫓아서 주변을 깨끗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모세와 아론은 예식을 행하기 전에 짐승의 피를 제단이나 속죄판이나 사제의 몸에 뿌리거나 바르라고 가르쳤다(탈출 29,11-12; 29,20; 레위 16,15-16). 이럼으로써 제단과 사제를 깨끗하게 만들었고, 하느님께 드릴 거룩한 의례의 합당한 준비를 하였던 것이다.

 

- 에돔. 에돔족의 이름이다. 창세기는 에돔족의 조상 에사우가 아돔(붉은 것)을 찾았기에 에돔이라 불렸다고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피

 

피에 대한 고대 이스라엘인의 독특한 종교심은 신약성경의 문화적·종교적 배경이 되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런 구약시대의 종교적 감수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구약의 첫째 계약과 신약의 새 계약에서 모두 생명의 피가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설명한다. 그는 “사실은 첫째 계약도 피 없이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히브 9,18)고 말하고, 뒤이어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다”고 고백한다(히브 10,22).

 

이렇게 피로써 모든 생명을 거룩하게 만든다는 생각은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서 사도들과 나누신 말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예수님은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르 14,24-25)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요한 복음에 나오는 대로,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를 마시는 사람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에 동참할 것이다(요한 6,54).

 

자신을 희생하여 타인을 이롭게 하는 이타적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스스로 피를 흘리심으로써 만물의 생명을 살리신 구세주를 고대하는 기간이 시작되었다.

 

* 주원준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6년 11월 27일,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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