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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 속의 지도자들: 섬기는 지도자 마르타와 듣는 지도자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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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20 조회수6,067 추천수1

[성경 속의 지도자들] ‘섬기는 지도자’ 마르타와 ‘듣는 지도자’ 마리아

 

 

성경 속의 인물 가운데 본받을 점이 참으로 많은 지도자가 있다. 그 가운데 일반인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만한 마르타와 마리아의 지도자의 모습을 복음서를 통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루카 복음서의 마르타와 마리아

 

예수님이라는 어마어마한 손님이 오셨으니, 당연히 가사를 책임지던 마르타는 정신이 없었다. 음식 준비와 집안 청소 등 손님을 집 안으로 초대해 본 사람들은 마르타의 수고를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동생인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있으니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가? 이때 동생이 자기를 도와주게 해달라고 예수님께 청하는 마르타는 당연히 화가 났으리라고 짐작한다.

 

보통 집안일을 하는 여자들끼리는 누가 일을 더 많이 했는지 하는 것으로 다투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루카 복음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마르타의 불편한 감정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예수님께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주십시오.”(10,40)라고 말한다.

 

이 상황에서 실제로 마르타가 정신없이 바쁜데 일을 하지 않는 마리아에게 짜증을 냈을까? 아니면 아직 철이 덜 든 어린 여동생을 걱정해서 올바르게 가르치려고 청한 것일까? 보통 집안의 어른 같으면 마리아에게 “바쁜 언니를 도와준 다음에 나와 이야기 하자.”고 답했을 것이고, 마르타 또한 그런 상식적인 말씀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전혀 다른 대답을 해주신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10,42). 예수님의 이런 말씀에 대한 마르타의 반응은 기록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상하여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어본다.

 

먼저, 마르타가 예수님의 말씀에 발끈해서 마리아에게 짜증을 내며, ‘그럼 나도 집안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또는 예수님의 말씀이 많이 서운하지만 꾹 참고 끝까지 시중들다가 예수님께서 가시고 나서 마리아에게 온갖 짜증을 내는 흔한 상황도 상상할 수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깨달은 마르타가 일을 마무리하고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 발치에 앉았을 수도 있다. 요한 복음 11장을 보면 마르타가 어쩌면 우리와는 좀 다른 선택을 했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요한 복음서의 마르타와 마리아

 

손님 접대 상황만 짧게 보여주는 루카 복음서에 비해 요한 복음서의 마르타와 마리아는 서로 돕고 협력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바로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지자 마르타가 마중을 나가고 마리아는 집 안에서 손님 접대에 힘쓰게 된다(11,20 참조). 루카 복음서에서 마르타가 부엌에 있었고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있던 상황과는 정반대다.

 

마리아는 먼저 마르타가 예수님께 한걸음에 가도록 도와준 셈이다. 똑같이 예수님을 사랑했으니, 마리아 또한 집에서 장례를 치르는 동안 다른 손님들을 접대하는 대신에 예수님께 달려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마리아가 양보한 것이다.

 

오빠를 잃은 마르타는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막무가내로 부탁한다.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11,22).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마르타에게 말씀하신다.

 

마르타는 이 말씀을 먼 훗날 부활 때 다시 살아난다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11,25-26)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마르타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한 뒤 집으로 돌아와 동생 마리아에게 “스승님께서 너를 부르신다.”(11,28)라고 가만히 말해준다. 이번에는 마리아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마리아가 급히 나가자 무덤으로 가는 줄 알고 유다인들이 따라가, 동네에 아직 들어가지 않으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결국 마르타와 마리아 그리고 유다인들은 라자로의 무덤으로 가서, 죽었던 라자로를 살리는 예수님의 기적을 보게 된다(11,39-44 참조). 예수님께서는 라자로를 살리는 모습을 마르타와 마리아를 통해서 유다인들이 똑똑히 보고 증언하게 하셨다.

 

마르타가 예수님께 드린 청은 분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마르타는 일상의 노동과 신앙을 조화롭게 통합시켰으며, 예수님 발치에서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의 ‘듣는 지도력’을 일깨워준 사람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지도력

 

사실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 때문에 교회 안에서 여성의 지도력은 상대적으로 축소되어 왔다. “나는 여자가 남을 가르치거나 남자를 다스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조용해야 합니다”(1티모 2,12).

 

또한 “여자들은 성전에서 잠자코 있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율법에서도 말하듯이 여자들은 순종해야 합니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서 남편에게 물어보십시오.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1코린 14,34).

 

하지만 가부장적인 바오로 사도도 여성들을 무조건 순종적인 대상으로 폄하한 것은 아니다. 여교우 포이베를 소개하면서 성도들의 품위에 맞게 그를 맞아들이고 그가 도움이 필요하면 무슨 일이든 도와주라고 당부하였다(로마 16,1-2 참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모습을 처음 보고 그 기쁜 소식을 전한 사람이 다른 제자들이 아니라 마리아 막달레나였다(마태 28,9-10 참조).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가부장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바오로나 다른 제자들과 달리 여성들을 단순히 남성에게 복종하는 종이 아니라, 깊이 사랑하는 동반자로 여겼다고 해석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위해 음식을 준비한 마르타와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었던 마리아, 그리고 무덤을 끝까지 지켜 부활의 증인이 되었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당시의 전통적 상식을 뛰어넘어 성경에서는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일반 여성 신자들은 순종하고 침묵하는 수동적인 여성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여성의 모습을 성경에서 찾아 깊이 묵상하려고 한다. 구약의 타마르, 나오미, 미르얌 등 진취적인 여성 인물들이 성경 곳곳에 있다. 다만, 그동안 가부장제로 사회가 그것을 부각시키지 못했을 뿐이다.

 

오랫동안 가부장제의 영향을 받아온 한국사회에서도 여성 지도자에 대한 기대가 큰 편이다. 하지만 남성 중심 사회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여성 지도자들도 있지만 남성보다 더 폭력적이고 미숙한 여성 지도자도 있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은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지만 여성들은 무의식 속에 숨겨놓기 때문에 오히려 훨씬 더 다루기 어렵고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 이런 여성 지도자들에게는 예수님을 영접했던 마르타의 ‘일상의 노동에 충실한 지도력’과, 겸손하게 침묵하면서 자신을 낮추어 예수님의 발치에 앉았던 마리아의 ‘듣는 지도력’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필자가 무모하게 일 년 동안 ‘성경 속의 지도자’라는 글을 쓰면서, 참으로 부끄러운 여러 말을 지면에 남긴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필자의 단견과 지식을 너그러운 독자분들께서 헤아려주시길 바라면서 이 지면을 마치려 합니다.

 

* 이나미 리드비나 - 심리분석 연구원. 한국 융 연구원 지도 분석가이며 서울대학교 외래교수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성서를 심리적으로 풀어본 슬픔이 멈추는 시간」, 「성경에서 사람을 만나다」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6년 12월호, 이나미 리드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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