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히브리어 산책: 자카르, 기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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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1-16 | 조회수8,607 | 추천수1 | |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자카르 말과 실천으로 하느님을 기억하고 찬미하다
자카르는 기억이다.
기억은 증언이다
독자들은 ‘기억’이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는가? 학창시절의 암기 과목을 떠올리시거나 신자로서 꼭 암기해야 하는 주모경이나 사도신경 같은 기도문을 떠올리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히브리어의 자카르는 지식을 머릿속에 꼭꼭 저장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자카르의 첫째 뜻은 ‘언급하다’, ‘(이름을) 말하다’이다.
‘말하다’가 ‘기억하다’를 의미하는 데는 깊은 의미가 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 어떤 기억이 있는지 없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말로 물어보고 답을 들어보는 방법이 가장 간단하고 효율적이다. ‘말하다’와 ‘기억하다’를 동시에 의미하는 ‘자카르’를 성찰하면, 태초부터 기억은 증언되어야 하고 증언은 기억되어야 하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교회 공동체가 신앙을 증언할 수 있는 것은 물려받은 기억, 곧 전승이 있기 때문이다.
노아의 홍수 때의 일이다. 150일 동안 물이 불어나 산들을 뒤덮었다(창세 7,6-24). 그러자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집짐승을 자카르하셨다(기억하셨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땅 위에 바람을 일으키시니 물이 내려갔다(8,1).” 하느님은 홍수 전에 노아와 맺은 약속을(7,1-5) 기억(자카르)하시고, 즉시 실천으로 옮기셨다. 세상을 가득 덮어버린 물을 내리신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기억은 머릿속에 꽁꽁 숨겨놓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증언하는 것이다. 증언은 그 자체로 훌륭한 실천 아닌가.
- 제케르. 자카르 동사의 명사형으로 ‘기억’을 뜻한다.
이름을 부르다
자카르가 ‘이름을 말하다’를 의미하는 구절을 몇 가지만 살펴보자. 우선 바알 신앙에 빠져 바람난 아내를 용서한 것으로 유명한 호세아 예언자이다. 그의 궁극적 목적은 하느님의 참된 자비와 사랑으로 바알 신앙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여자의 입에서 바알들의 이름을 치워 버리리니 그 이름이 다시는 자카르되지(불리지) 않으리라.”(호세 2,19)는 말씀에서, 바알의 이름이 자카르되지(불리지) 않는 날은 바알의 이름이 더 이상 기억되지도 증언되지도 않는 날이란 뜻이다. 즈카르야 예언자도 비슷한 말씀을 전한다.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다. 그날에 나는 이 땅에서 우상들의 이름을 없애 버려, 그들이 다시는 자카르되지(기억되지) 못하게 하겠다.”(즈카 13,2)
찬미하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기억하며 증언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자카르는 ‘하느님을 찬미하다’, ‘고백하다’는 뜻으로 쓰일 수 있다. 시편의 저자는 “저는 주 하느님의 위업을 칭송하며 들어가 오로지 당신의 의로움만을 자카르하렵니다(기리렵니다)”(시편 71,16)라고 고백한다. 여기서 시편 저자가 특별히 자카르를 사용하여 하느님을 찬양했기에, 이 구절은 하느님의 의로움을 ‘기억하고 동시에 증언함을 통하여’ 하느님을 찬미한다는 독특한 의미가 깃들어 있다.
즈카르야와 요한
- 즈카르야. 12 소예언서의 11번째 예언자 이름으로서 ‘야훼께서 기억하셨다’는 뜻이다. 엄밀히 말해서 주황색으로 두 번 쓴 윗첨자 e의 음가는 서로 다르지만, 초보자를 위해 이렇게 표기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즈카르야 예언자의 이름은 “주님(야훼)께서 자카르하셨다”는 뜻이다. 주님께서 기억하셨다는 뜻이니, 주님의 기억을 증언하는 예언자로서 퍽 적절한 이름이다. 즈카르야는 그 이름에 걸맞게 옛 예언자들의 표현을 풍부하게 사용하는 예언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의 기억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았다. 하느님은 즈카르야에게 미래에 일어날 일을 보여주셨고, 그는 장차 오실 메시아의 모습을 증언했다. 메시아는 양떼를 돌보시는 선한 목자이시며(즈카 11,4-17), 겸손하시어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시며(9,9; 마태 21,5), 찔려 죽은 그분을 위해 여자들이 따로 곡할 것임을 예언했다(12,9-14). 그는 구약성경 안에서 신약성경의 전망을 보여준다.
즈카르야의 예언에 가장 예민하게 공감한 사람은 아마도 세례자 요한일 것이다. 그는 신약성경의 서두에서 구약시대를 종합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이 증언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는 말씀은 구약성경의 모든 기억을 응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1월 15일,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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