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구약성경의 물신: 바알은 힘과 돈, 성의 우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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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1-20 | 조회수6,527 | 추천수1 | |
[구약성경의 물신] 바알은 힘과 돈, 성의 우상
오늘날 바알을 보는 의미
성경의 빛과 어둠
악은 선의 결핍일 뿐이라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통찰은 바알을 성찰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구약성경은 하느님의 빛이 환하게 비추는 양지를 드러내는 책이지만, 동시에 어둡고 축축한 응달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것은 마치 훌륭한 문학 작품이 인간의 추악하고 비루한 면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응달의 가장 어두운 곳에 우상이 있다. 바알은 우상을 대표하는 표상이다.
우상은 스스로 존재하는 권능이 아니라 그 자체로 결핍이다. 그래서 우상은 결국 인간의 모습이다. 응달은 빛을 가리는 물체의 형상을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알을 보는 것은 우리 자신을 보는 것이기도 하다. 구약성경을 읽기 전에 바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필요가 있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바알의 역사는 사실상 ‘바알 극복의 역사’이자, 바알을 물리친 ‘믿음의 영웅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기드온이나 엘리야나 호세아 등은 하느님 백성 안에서 바알 숭배가 성행했던 안타까운 시기를 살았다.
하지만 그들은 오직 하느님께만 의지하며 진리의 횃불을 들었던 영웅이었다. 그들이 우상과 싸운 역사는 지금도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구체적으로, 그들이 살던 시대에 인간은 왜 하느님을 외면했고 어떤 것에 빠져 허우적댔는지, 그리고 이 영웅들을 어떻게 탄압했는지, 이 영웅들은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승리하였는지, 우상을 극복하며 구약성경에서 어떤 신학이 자라났는지, 그런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등이 우상을 공부하는 의미가 될 것이다.
우상을 아는 것은 결국 우상을 극복하고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밝은 길을 비출 것이다.
하느님 백성 안의 바알
바알 이야기는 하느님 백성의 이야기와 얽혀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과 가장 친밀한 계약을 맺은 백성이고, 믿음의 선조들은 모두 하느님을 가깝게 느꼈던 사람들이다. 이스라엘인들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하느님을 가장 크게 실망시킨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들은 하느님이 이집트에서 끌어내시자마자 불평을 터뜨렸고(탈출 16,2), 하느님의 명을 받아 바알 제단을 허문 기드온을 색출하여 죽이려고 하였다(판관 6,29-30). 엘리야 예언자는 백성에게 “주님의 예언자라고는 나 혼자 남았습니다. 그러나 바알의 예언자는 사백오십 명이나 됩니다.”(1열왕 18,22)하고 외쳤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임금들 가운데는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하고 바알 숭배에 빠진 임금이 적지 않다. 솔로몬도 외국인 아내 때문에 ‘다른 신들’에게 마음이 쏠리지 않았는가(1열왕 11,4).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고대 국가에서 주님(야훼) 세력은 지배세력으로서 안정적인 지위를 누리지 못한 적이 많다. 오히려 바알 숭배 세력이 자주 임금과 중요한 직책을 꿰차고 주님(야훼)을 따르는 신앙인들의 존립을 위협했다. 하느님 백성 내부에서 이루어진 바알 숭배의 역사를 우리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구약성경은 하느님 백성이 언제든 안타까운 역사를 되풀이할 수 있다고 우리에게 경고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와 바알
바알 연구는 우리 교회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한국 천주교회는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독특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많이 받은 교회다. 선교사가 오기 전에 자발적으로 수용한 역사는 하느님의 자비와 섭리가 하느님 백성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역동적으로 일하신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례가 될 것이다.
우리는 모진 박해와 순교를 겪었지만, 결국 힘든 시기를 겪고 나서 크게 성장한 교회다. 서울은 대학살에 가까운 엄청난 순교가 이루어진 도시다. 하지만 이제는 성인과 복자가 세계적으로도 많이 탄생한 밝고 복된 도시가 되었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한 나라 가운데 경제발전과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드문 나라이다. 이런 배경으로 이제 한국교회는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 차원에서도 어느 정도 역할을 요구받는 교회로서 자라났다. 이런 우리의 역사를 돌아볼 때마다, 자부심과 감사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가만히 돌아보면 한국교회가 외형적으로 성장하고 부유하게 된 역사는 무척 최근의 새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1784년 이승훈 베드로의 세례로 시작된 우리 교회는 신앙의 자유를 얻은 1886년까지 102년 동안 큰 박해를 겪었다. 곧이어 일제강점기를 겪었고 한국전쟁 때는 공산 박해도 받아야 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야 교회의 외형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성장세는 가팔랐고, 급기야 1990년대 이후에는 교회의 중산층화가 일부에서 눈에 띄게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한국 천주교회 232년의 역사 속에서 교회가 넉넉해진 것은 최근 30년도 안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교회의 보수화, 공동화, 냉담교우의 급증 따위의 용어가 최근 교회 안팎에서 오르내린다.
참으로 절묘한 시기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한국을 방문하셔서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셨다. 교황님은 “번영의 시기에 오는 위험, 유혹이 있습니다.”라고 하시면서(한국 주교들과 만남, 2014년 8월 14일) 신약성경의 두 가지 이야기를 예로 드셨다.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인들을 꾸짖는 대목과(1코린 11,17) 야고보 사도가 부유한 교회들을 꾸짖는 대목이다(야고 2,1-7).
필자는 교황님이 사도들을 인용하시는 대목에서 깊은 느낌을 받았다. 교황님은 하느님 백성이 하느님의 빛을 드러내기보다 자칫 어둠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위험성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려고 하신 것 같았다.
교황 방한의 감격 속에서 필자는 그동안 차근차근 진행하던 바알 연구가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므로 이 글은 교황님께 일부 영감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최근 중산층화된 교회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이런 우리에게 물신과 풍요의 우상이 고대 이스라엘에서 어떻게 해악을 끼쳤고, 그런 우상을 극복하고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정리해 보는 일은 분명 의미 있을 것이다.
바알 연구의 큰 그림
- 풍우신을 묘사한 히타이트의 비석. 풍우신은 황소를 타고 양손에 무기를 들고 있다. 이스라엘의 바알도 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묘사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알레포 박물관 소장. ⓒ Verity Cridland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는 바알이라는 우상을 잘 모른다. 바알이 어떤 신인지(바알의 정체성), 이스라엘 안팎에서 어떻게 숭배를 받았는지(바알의 역사), 왜 신앙인들에게 위험한지(신학적 의미)등이 종합적으로 소개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바알의 정체성에 대해서 쉽게 서술하려고 한다. 고대 근동 세계의 풍우신(風雨神)유형의 신들이 각 지역에서 최고신이 되는 과정과 시리아-필리스티아 지역의 풍우신 바알이 최고신으로 등극하는 의미를 살펴보려고 한다. 바알은 이스라엘 외부에서 발생하여 하느님 백성 내부에 스며든 신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알의 두 아버지를 살펴보겠다. 최고신 엘과 풍요의 신 다간을 둔 바알의 이중의 부성(double fathership)은 바알이 권력과 풍요를 물려받았음을 뜻한다. 또한 바알 신화에서 바알의 편을 드는 전쟁의 여신 아나투와 바알의 풍요의 상징들을 살펴본다. 결국, 아버지들로부터 풍요와 권력을 물려받고, 하위신들이 승리를 보장해 주는 매혹적인 바알의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바알 신화의 줄거리는 바알이 혼돈의 신 얌무와 죽음의 신 모투를 꺾고 승리하는 이야기이다. 혼돈을 꺾었으니 질서의 신이요, 죽음을 꺾었으니 생명의 신이다. 곧 바알은 세상의 질서와 생명을 주관하는 신이다. 우리는 이런 바알의 모습을 보며 물신과 우상은 얼마나 강력한 모습으로 다가오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 내부에 퍼진 바알 숭배를 알아볼 것이다. 구약성경은 바알 사제, 바알 신전, 바알 의례 등에 대한 단편적 정보를 전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가장 큰 역사인 이집트 탈출 사건에 도전하는 바알 숭배자들의 논리를 2단계에 걸쳐 알아볼 것이다. 첫째 단계는 ‘반(反)탈출’의 단계로서 이집트 탈출을 부정하는 것이지만, 후대에는 오히려 바알이 ‘이집트 탈출의 하느님’으로 둔갑하는 과정을 보겠다.
이스라엘 내부에서 이루어진 바알의 역사는, 바알을 극복한 믿음의 영웅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바알 여사제를 아내로 맞이하고 용서한 호세아 예언자, 바알 사제들과 겨루어 극적인 승리를 이룬 엘리야 예언자, 모든 우상을 쓸어버린 요시야 개혁 등의 의미를 새롭게 돌아보겠다.
영웅들은 빛의 원천 하느님을 드러내려고 했다. 그리고 독특한 신학을 발전시켰다. 하느님 중심의 신학을 체계화시킨 신명기 신학은 우상숭배를 가장 격렬히 고발하는 책이기도 하다.
연재를 시작하며
필자는 그간 한님성서연구소에서 「우가릿어 문법」과 「우가릿어 사전」을 펴내어 바알 신화를 해석하는 기초 작업을 마쳤다. 그리고 현재 바알에 대한 단행본을 집필 중이다. 앞으로 한 해 동안 연재할 내용은 집필을 마무리하는 책의 선행 요약으로서, 이 책의 주제에 대해 신앙인들과 나누는 귀중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대를 사는 신앙인들에게 물신과 우상에 대해서, 그리고 구약성경의 가르침에 대해서 되짚어보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 주원준 토마스 아퀴나스 -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고대 근동과 구약성경을 연구하는 평신도 신학자이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이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 위원이다. 저서로 「구약성경과 신들」과 「신명기 주해」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7년 1월호, 주원준 토마스 아퀴나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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