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예언자 에제키엘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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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2-06 | 조회수5,254 | 추천수1 | |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예언자 에제키엘은?
에제키엘은 누구인가?
우리는 에제키엘을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더불어 3대 예언자로 칭합니다.
에제키엘은 사제였지만 예루살렘 성전에서가 아니라 바빌론 유배지에서 예언활동을 합니다. 그 한 장면을 봅니다. “우리의 유배살이 제이십오년 연초 초열흘날, 곧 도성이 함락된 지 십사 년째 되는 해, 바로 그날에 주님의 손이 나에게 내리시어, 나를 그 도성으로 데리고 가셨다.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환시 속에서, 나를 이스라엘 땅으로 데리고 가시어 매우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셨다. 그 산 위 남쪽으로는 성읍의 건축물 같은 것들이 있었다.”(40,1-2)
예언자 에제키엘은?
혼인하여 살아가던 사제 예언자였습니다.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 성곽이 함락될 무렵에 그의 아내는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튿날 아침에 내가 백성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저녁에 내 아내가 죽었다.”(24,18)
유배지에서 에제키엘의 위력은?
유배지였음에도 그의 예언자로서의 힘이 대단했음을 다음 두 구절에서 엿보게 됩니다. “제육년(기원전 592년) 여섯째 달 초닷샛날, 나는 내 집에 앉아 있고 유다의 원로들은 내 앞에 앉아 있을 때에, 주 하느님의 손이 나에게 내리셨다.”(8,1) “제칠년 다섯째 달 초열흘날에, 이스라엘의 원로 몇 사람이 주님께 문의하려고 와서 내 앞에 앉았다. 그때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20,1-2)
에제키엘은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예언서를 두루 살펴 볼 때, 에제키엘은 예언자들 가운데서 아주 독특한 인물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그는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환시를 자주 접하며, 그러다가 어떤 때는 여러 날 황홀경에 들어가 있기도 합니다. “제삼십년 넷째 달 초닷샛날이었다. 나는 유배자들과 함께 크바르 강가에 있었다. 그때 하늘이 열리면서 나는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환시를 보았다.”(1,1) “그때 내가 바라보니, 북쪽에서 폭풍이 불어오면서, 광채로 둘러싸인 큰 구름과 번쩍거리는 불이 밀려드는데, 그 광채 한가운데에는 불 속에서 빛나는 금붙이 같은 것이 보였다.”(1,4)
또한 에제키엘은?
벙어리가 되거나(3,22-27), 집안에 있으면서 환시 속에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도 하며 여러 가지 상징적인 행동을 많이 합니다. 에제키엘의 이와 같이 특이한 모습이나 행동을 심리적 또는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설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심리적 또는 학술적 분석으로는 에제키엘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에제키엘이 심리적 대립, 갈등 등으로 극도의 내적 긴장상태에서 지내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에제키엘은 사도 바오로를 비롯하여, 아빌라의 대데레사, 리지외의 소화 데레사 등 많은 성인들이 겪었던 고통이나 내적 긴장상태를 연상케 해줍니다. “그 계시들이 엄청난 것이었기에…… 그래서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2코린 12,7)
어떤 이는 에제키엘의 마음속에는 영혼 둘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철저한 규범에 따라 살아가는 사제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 모든 규정이나 법규들을 뛰어넘어 살았던 예언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최고의 열정과 애정으로 설교하는 사제이면서 하느님 말씀을 정확하고 섬세하게 기록하는 저술 예언자였습니다. 에제키엘은 멸망을 선포하는 이른바 ‘저승사자’로서, 나아가 구원을 예고하는 ‘구원의 선포자’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황홀경이나 탈혼 상태에 쉽게 빠져들면서도 누구보다도 깔끔하게 이성적으로 논리를 전개하는 저술 예언자였습니다. 열정적이면서도 사려 깊었으며, 이상주의자처럼 늘 꿈속에 머무는 듯 하면서도 따뜻하고 냉정했습니다. 에제키엘은 멸망으로 치닫는 세계와 새롭게 피어오르는 세계를 동시에 바라보며 그 중간에 서서, 자신의 독특한 카리스마 안에서 주님께서 제시하시는 길을 끊임없이 힘차게 걸어간 예언자였습니다.
에제키엘이 등장하던 시대는?
기원전 605년, 신바빌론 제국의 느부갓네살이 왕자의 신분으로 출정하여 가르그미스 전투에서 이집트 파라오 느고와 겨루어 대승을 거둡니다. 이 전투를 계기로 느부갓네살은 고대 근동지방의 패자로 군림하게 됩니다. 신바빌론 제국이 메소포타미야-이집트-시리아-팔레스티나 전역을 좌우하는 초강대국으로 우뚝 섭니다.
유다 왕국은?
유다 왕국은 여호야킴 임금 시절에 아주 작은 약소국이었지만 지정학적 측면에서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느부갓네살은 그 왕국을 반드시 차지하려 했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야킴의 아들 여호야킨이 왕위를 물려받은 지 3개월 남짓 되었을 때 곧 기원전 598-597년 느부갓네살은 유다왕국을 공격하여 점령합니다.
당시 쇠퇴해가던 유다 왕국의 임금 여호야킴은 그러한 내외정세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의로운 예언자를 죽이고 자신의 안전만을 쫓는 이기적이며 위선적 인물이었습니다. “불행하여라, 불의로 제집을 짓고 부정으로 누각을 쌓는 자! 그는 제 이웃에게 거저 일을 시키고 아무런 품삯도 주지 않는다. ‘나 자신을 위해 넓은 집을 짓고 널찍한 방들이 딸린 누국도 쌓아야지.’ 하면서 그는 제집에 창문을 만들어 달고 향백나무 판자를 붙인 다음 붉은색을 칠한다…… 그러나 너의 눈과 마음은 오로지 제 부정한 이익을 돌보고 무죄한 이의 피를 흘리며 억압과 폭력을 일삼는 일에나 쏠려 있다.”(예레 22,13-17)
오늘 우리 현실은?
유다 임금 여호야킴의 모습과 오늘 우리 지도자들의 모습이 꽤 흡사하지 않은지요? 하느님 뜻에 따라 사는 이들, 양심에 따라 바른 말과 바른 행동을 하는 이들, 예컨대 양심선언을 통하여 불의와 부패를 바로잡으려는 이들까지 박해하거나 질식시키려는 권력가들이 곳곳에 산재해있는 현실을 볼 때, 나라가 서있는 위치가 마치 풍전등화 같다는 느낌이 든다면 과장이겠습니까?
첫 번째 유배?
기원전 597년 유다 왕국을 점령한 느부갓네살이 한 첫 번째 일은 예루살렘 성전 기물들과 왕궁의 기물들을 빼앗아간 것입니다. 임금은 물론 왕비들도, 예루살렘 지도층 인사들도 바빌론으로 끌려갑니다. 바로 그때 유배 간 인물 가운데 사제가문 출신 예언자 에제키엘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때의 유배가 이른바 첫 번째 유배입니다.
두 번째 유배는?
스러져가던 유다 왕국은 한마디로 국가 최고지도자 찌드키야 임금의 부실과 무능으로 인해 급경사를 내리달리듯 미끄러져 내려갑니다. 그는 당시 초강대국 신바빌론에 등을 돌리고 오히려 쇠퇴해가던 이집트왕국에 기대를 걸고 친 이집트 정책을 펴나갔던 것입니다. 찌드키야는 친 이집트 정책을 폄으로써 신바빌론 제국에 빼앗긴 기물들과 주권을 되찾아오겠다는 환상에 젖어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기원전 587년 8월 예루살렘 성전은 불에 타 파괴되고 왕자들은 처형당하며 유다 임금 찌드키야는 두 눈이 뽑힌 상태로 바빌론으로 유배 가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이것이 이른바 두 번째 유배입니다. 이 역사적 현실은 오늘 우리에게 국가 최고 지도자의 지혜와 판단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요?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2월호,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용현5동성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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