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히브리어 산책: 금과 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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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2-28 | 조회수7,322 | 추천수1 | |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금과 은 하느님을 경외하라… ‘부와 권력’ 경계하는 가르침
자하브는 금이고 케세프는 은이다.
- 자하브. 금을 의미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귀금속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명예, 지혜, 겸손, 경외 등이 금보다 소중하다는 가르침이 성경에는 많이 있다.
하느님이 주신다
자하브(금)와 케세프(은)는 예부터 가장 값진 물건이었다. 황금이 많은 사람은 부자였고(집회 8,2), 금과 은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욥기 3,15)
하느님은 이집트에서 탈출한 백성에게 풍요를 약속하셨다. 약속한 땅에 들어가면 가축이 불어나고 “너희에게 케세프와 자하브(은과 금)가 많이 생기며, 너희가 가진 모든 것이 불어날”(신명 8,13) 것이다. 물론 돈만 악착같이 추구해서는 참된 복을 얻을 수 없다. 모세는 가장 먼저 하느님을 찾으라고 역설한다.(신명 6-9장)
하느님의 뜻을 먼저 따르고 나서, 그다음에야 물질적 부를 얻을 것이라는 가르침은 예언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앞으로 오실 메시아의 날은 고난의 날이요 심판의 날이지만,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민족들의 재물, 곧 매우 많은 자하브와 케세프(금과 은)”(즈카 14,14)가 모일 날이기도 하다. 일찍이 “아브람은 가축과 케세프와 자하브(은과 금)가 많은 큰 부자였다.”(창세 13,2) 그가 ‘은과 금’이 많은 이유는 하느님께서 복을 내려주셨기 때문이다.(창세 24,35)
은과 금
자하브(금)보다 케세프(은)가 더 오래되고 귀한 것이었다. 은이 금보다 얻기도 쉽고 가공하기도 쉽기 때문에 훨씬 먼저 쓰였고, 일찌감치 귀금속의 대명사가 되었다. 고대 이스라엘보다 2000년 이상 오래된 수메르 문명부터 케세프(은)는 화폐의 역할을 했다. 기원전 19세기 함무라비 법전도 벌금은 모두 케세프로 지급하라고 명시한다. 자하브(금)가 부의 상징으로서 케세프(은)를 제친 것은 비교적 후대의 일이다.
- 케세프. 은을 의미한다. 금보다 먼저 ‘귀금속의 대명사’요 ‘화폐’ 역할을 했다. 구약성경에는 금보다 은이 더 자주 등장한다. 카프(k) 안에 하늘색으로 찍은 점은(약한 다게쉬) 일부 자음(bgdkpt)으로 음절이 시작할 때만 사용된다. 이런 경우에 k를 겹쳐쓰지 않는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케세프와 자하브(은과 금)’로 쓴 구절이 ‘자하브와 케세프(금과 은)’로 쓴 구절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본다. 실제로 우리말 성경을 검색하면, ‘은과 금’(51회)이 ‘금과 은’(22회) 보다 2배 이상 자주 나온다. 한마디로 성경은 ‘금과 은’ 보다 ‘은과 금’이라는 표현에 더 익숙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성경은 고대의 언어 습관을 우리에게 전하는 책이기도 하다. 성경을 주의 깊게 읽는 독자라면 이런 고대의 관습을 일부 눈치챘으리라.
‘은과 금’으로 쓰인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앞에서 인용한 아브람 이야기에서는 줄곧 ‘케세프와 자하브(은과 금)’라고 쓰였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모세도 ‘케세프와 자하브(은과 금)’로 만든 혐오스러운 것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신다.(신명 29,17)
이민족과 전쟁을 벌여서 전리품을 얻거든, 절대 사유화해서는 안 되고 하느님께 바쳐야 한다. 하느님께서 도와주셔서 얻은 재물을 하느님께 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따라 여호수아는 전리품을 얻으면, 모든 ‘케세프와 자하브(은과 금)’를 하느님께 바쳤다.(여호 6,19.24; 22,8) 다윗 임금도 “그가 정복한 모든 민족들에게서 거둔 케세프와 자하브(은과 금)”를 주님께 바쳤다.(2사무 8,11) 그의 아들 솔로몬도 “케세프와 자하브(은과 금)와 기물들을 가져다가 주님의 집 창고에 넣어 두었다.”(1열왕 7,51) 이런 언어습관은 유배 이후에도 이어져 에즈라는 온 백성에게 주님의 집을 재건하기 위해 ‘케세프와 자하브(은과 금)’를 후원하라고 독려했다.(에즈 1,4.6)
금은보다 값진 것
성경은 금은보화보다 더 값진 것에 마음을 쏟으라고 권유한다. 잠언은 참된 명성이 ‘케세프와 자하브(은과 금)’보다 낫다고 하고(잠언 22,1), 지혜문학의 정점인 욥기를 보면 참된 지혜와 겸손은 황금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욥기 28,17; 31,24.25 등) 시편의 저자는 주님의 경외함이 순금보다 낫다고 노래한다.(시편 19,10.11)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오랜 가르침을 쉽고 단순하게 요약하셨다. 오늘 복음을 보자.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그리고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는 말씀은 일찍이 모세가 가르쳤던 내용과 정확히 일맥상통한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2월 26일,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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