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예수님 이야기5: 예수님의 탄생 예고(1,26-38) - 피앗(fia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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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3-13 | 조회수6,186 | 추천수1 | |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 루카복음 중심으로] (5) 예수님의 탄생 예고(1,26-38) ② 피앗(fiat) “주님의 종이오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 나자렛 주님 탄생 예고 대성당 안에 있는 주님 탄생 예고 경당.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게 나타나 예수님 탄생을 예고하고 마리아가 이를 받아들인 그 장소를 기념하는 경당이다. 제대 정면과 아래에는 대리석 위에 ‘이곳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마리아가 순명으로 응답한 순간 성령으로 말씀을 잉태하셨음을 알려준다.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제공.
나자렛 산골 처녀 마리아는 약혼한 처녀입니다. 직업이 목수인 약혼자 요셉은 그다지 내세울 게 없지만 “의로운”(마태 1,19)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에 찾아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1,28) 하고 인사를 건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 생각하는 마리아에게 천사는 더 놀라운 말을 합니다.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게 될 것인데 그 아들이 ‘지극히 높으신 분’(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불리게 될 것이고 그가 다스리는 나라는 끝이 없으리라는 것입니다.(1,31-33)
천사의 예고와 마리아의 반응
이 놀라운 전갈에 마리아는 이렇게 반응합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1,34) 성경학자들은 마리아의 반응을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1,18)라고 한, 요한 세례자의 아버지 즈카르야의 반응과 대비시킵니다. 즈카르야의 반응은 믿지 못하겠으니 표징을 보여달라고 요구한 것인 반면, 마리아의 반응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즉 마리아의 반응은 천사의 말을 믿으면서도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해명해 달라는 요청이라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 반응에 대한 천사의 설명은 더욱 놀랍습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라는 엄청난 말을 덧붙입니다.(1,35)
천사의 말을 다시 살펴봅시다. ‘성령’은 하느님의 영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은 ‘하느님’을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또 ‘거룩함’은 오롯이 하느님에게만 속하는 속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 때에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하고 하느님을 소리 높여 노래합니다. 그러니 천사의 말은 아기가 잉태되는 것은 하느님의 능력일 뿐 아니라 그 아기는 하느님과 마찬가지로 ‘거룩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믿음
천지가 개벽할 일입니다. 처녀가 임신하고 아들을 낳는데, 그 일이 남녀의 결합이 아닌 하느님의 힘으로 이뤄지고, 게다가 그 아기는 ‘거룩한’ 아기,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불리게 된다니요.
요즘 첨단 생명공학의 발달로 ‘복제 인간’이란 말도 심심찮게 들립니다만,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야말로 꿈에서도 상상조차 못 할 일입니다. 더욱이 하느님의 능력으로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그 사실이 주변에 알려진다면, 마리아는 하느님을 모독한 죄로 단죄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능력으로 아기를 잉태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더라도 사정이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처녀가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볼 때 간음의 증거가 됩니다. 그러면 그 당사자는 사람들의 돌팔매질에 맞아 죽는 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어쨌거나 처녀 마리아에게 좋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한술 더 뜹니다. 친척 엘리사벳이 아기를 낳지 못하는 나이에도 “임신한 지 여섯 달이나 되었다”면서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1,36-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천사의 마지막 말은 천사가 지금까지 한 말을 보증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산골 처녀 마리아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압박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느님이 하시는 것이니 그대로 이루어지고야 만다. 그런데 마리아, 너는 어떻게 할래?’라는 물음입니다. 어쨌거나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임신하게 되고, 그 사실이 드러나면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주님 탄생 예고 대성당 안에 있는 주님 탄생 예고 이콘 성화.
주님 뜻을 헤아린 마리아
루카는 천사의 이 해명에 대한 마리아의 마지막 반응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1,38) 천사의 말이 그대로 이뤄질 경우에 인간적으로 마리아에게 좋을 일이 하나도 없으리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피앗, fiat) 하고 응답합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응답하는 데엔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종은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합니다. 지혜롭고 충직한 종은 주인의 뜻을 헤아려 처신합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인사를 받은 첫 순간부터 주님의 뜻을 헤아렸습니다. 그리고 천사의 놀라운 얘기를 계속 들으면서 그것이 주님의 뜻임을 헤아리자 지체없이 ‘피앗’이라고 응답한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마리아의 응답은 인류 역사를 바꿔놓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는 놀라운 신비가 한 산골 처녀 마리아의 겸손한 순명을 통해 현실이 되었습니다.
되새겨보기
지난 호부터 살펴본 ‘예수님 탄생 예고’ 이야기는 여러 가지를 묵상하게 해줍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마리아의 모습을 통해 두 가지만 되새겨봅시다.
첫째, 곰곰이 생각하는 자세입니다. 요즘같이 바쁘게 움직이고 분ㆍ초를 다투는 세상에서는 ‘빨리빨리’ ‘즉문즉답’(卽問卽答)이 인정받지, 곰곰이 생각하는 자세는 별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가 어쩌면 지나치게 ‘빨리빨리’에 젖어서 생기는 것은 아닐까요?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할 여유를 지닐 때, 우리는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겉모습 너머에 있는 참된 진실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는 우리의 앞날을 지나치게 예단하려 합니다. 그래서 아직 벌어지지 않은 상황을 가능성만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고민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벌어지는 현실입니다. 마리아가 아이를 가진 후에 생길 수 있는 여러 상황을 자꾸 저울질했다면 결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매일 순간마다 벌어지는 일에서 하느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을 따르려는 노력입니다. 마리아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3월 12일, 이창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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