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히브리어 산책: 빛과 어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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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3-30 | 조회수9,405 | 추천수0 | |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빛과 어둠 눈부신 생명도 무한한 암흑도, 모두 하느님 손에
오르는 빛이고 호셰크는 어둠이다.
- 하샤크. 호셰크의 어근이다. ‘어두워지다’는 뜻이지만, 문맥에 따라 다양하게 옮길 수 있다. 동사 어근을 표현할 때는 이처럼 어근만 대문자로 적지만 관습적으로 ‘아’(?)를 넣어 읽는다. 그러므로 위 글자는 ‘하샤크’로 발음한다.
대비
오르와 호셰크는 강한 대비를 이루는 말이다. 일찍이 하느님의 창조는 오르(빛)와 호셰크(어둠)를 가르며 시작되었다.(창세 1,4) 이집트 탈출 사건의 가장 결정적인 대목인 갈대 바다의 기적 사건에서도 하느님은 이집트 군대와 히브리 백성 사이를 가르시어 한 쪽은 호셰크하게(어둡게) 하시고 다른 쪽은 오르를 주셔서 밤을 밝히셨다.(탈출 14,20) 하느님은 빛과 어둠을 지배하시는 분이시다.
어둠
호셰크는 명사로서 ‘어둠’을 대표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동사형은 하샤크이다. 하샤크는 우리말에 정확히 대응하는 말이 없어서 문맥에 따라 조금씩 의역할 수밖에 없다. 대개 ‘희미해지다’, ‘어두워지다’, ‘빛을 잃다’ 등으로 옮긴다. 이를테면 빛이 하샤크하거나(욥기 18,16) 하늘의 해나 달이나 별이 하샤크한 것은 제 빛을 잃고 ‘어두워지는 것’이다.(이사 13,10; 욥기 3,9; 에제 32,8; 코헬 12,2) 밝은 빛을 보아야 할 사람의 눈이 하샤크하면(어두워지면) ‘보지 못하는 것’이다.(시편 69,24)
- 호셰크. 히브리어에 ‘어둠’을 표현하는 말은 여러 개가 있는데 호셰크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본성상 밝고 빛나는 것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호셰크나 하샤크는 대개 부정적인 문맥에서 사용된다. 하느님께서 “호셰크(어둠)를 드리우시면”(시편 104,20) 밤이 찾아온다. “도둑은 호셰크(어둠) 속에서 남의 집에 침입하고”(욥기 24,16), 호셰크(어둠)는 주님의 자애와 기적을 모르는 곳으로서 멸망과 망각의 무덤과 같다.(시편 88,12-13) 호셰크는 막장 끝의 어둠이고(욥기 28,3), 주님의 은총을 입지 못한 백성은 “호셰크(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사 9,1)으로서 암흑의 땅에 사는 백성과 같다.
빛
오르는 우리말의 ‘빛’과 쓰임새가 거의 같은 말이다. 불의 오르는 ‘불빛’(시편 78,14)이요, 등잔의 오르는 ‘등잔 빛’(예레 25,10)이요, 눈의 오르는 ‘눈빛’이다.(시편 38,10) 오르는 대개 낮의 빛을 뜻하는 말로 쓰이는데, 새벽의 여명을 가리키기도 했다. 그래서 오르를 ‘동틀 녘’(스바 3,5) 또는 ‘여명’(욥기 3,9)으로 옮기기도 한다.
- 오르. ‘빛’을 의미한다. 우리말의 ‘빛’과 쓰임새가 무척 비슷하다. 호셰크와 대비를 이루어 등장하기도 한다.
하느님은 빛의 원천이시다. 그래서 ‘주님의 얼굴은 환한 빛’이라는 표현이 시편에 이따금 등장한다. 이를테면 “주님, 저희 위에 당신 얼굴의 오르를(빛을) 비추소서”(시편4,7. 참고 119,135)라는 청원이나 하느님의 구원 업적은 그분 얼굴의 오르(빛)가 한 일이라는 고백을 들 수 있다(44,4). 축제를 기쁘게 지내는 백성은 당신 얼굴의 오르(빛) 속을 걷는 백성이다.(89,16) 또한 하느님의 빛은 곧 생명이었다. 주님의 생명의 샘에서 우리는 ‘그분의 오르(당신 빛)로 오르(빛)를’ 본다.(시편 36,10)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빛을 주신다’는 말은 생명을 주신다는 의미였다.(욥기 3,20)
빛과 어둠을 만드신 하느님
그런데 구약성경에는 하느님 주변이 컴컴하다고 말하는 곳이 있다. 십계명을 받을 때, 백성의 우두머리와 원로들은 “호셰크(어둠) 속에서 울려 나오는” 하느님의 소리를 들었다.(신명 5,23) 천지창조를 하기 전에도 “호셰크가(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창세 1,2)고 전한다. 하느님은 빛이시므로 하느님 주변은 환하고 밝아야 할 것 같은데, 왜 하느님 주변을 호세크(어둠)라고 표현했을까?
이때의 호셰크는 한없이 깊어서 빛이 도달할 수 없는 무한한 공간의 컴컴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천자문 첫머리에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天地玄黃)는 의미와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하느님은 오르(빛)의 주인이실 뿐만 아니라 호셰크(어둠)도 다스리신다. 일찍이 이사야 예언자는 “나는 빛을 만드는 이요 어둠을 창조하는 이다… 나 주님이 이 모든 것을 이룬다.”(이사 45,7)는 주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다. 마침 오늘 복음을 보니, 빛과 어둠을 다스리시는 분께서 눈먼 사람에게 빛을 되돌려 주셨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3월 26일,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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