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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창세기 다시 읽기: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후손(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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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04 조회수5,992 추천수0

[창세기 다시 읽기(35)]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후손(15,1-6)

 

 

우리는 지금까지 하느님께서 아브람에게 하신 세 가지 약속 가운데에서 땅에 관한 약속과 복의 매개자가 되리라는 약속이 어떻게 실현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제, 가장 긴급한 약속으로 생각되었던 ‘후손’에 대한 약속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앞으로의 이야기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아브람과 사라이는 오랫동안 후손을 기다려 왔다. 그래서 그들이 인간적인 해결 방식(입양)을 찾아 나선 것에 독자들은 별로 놀라지 않을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아브람과 하느님 사이에 오가는 말씀과 아브람의 행동, 그리고 이에 대한 하느님의 대응으로 이루어져 있다(23쪽 표 참조).

 

6절(“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을 중심으로 앞뒤의 구문이(1-5절과 7-21절) 서로 병렬 관계에 놓여 있다. 두 부분은 구조적으로 동일하며 하느님과 아브람 사이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아브람이 하느님께 말하는 첫 번째 장면을 보게 된다. 모든 부분이 질문을 부르는 약속으로 시작되고 후손과 땅에 관한 주제를 담고 있다.

 

첫 번째 부분(1-5절): “주님의 말씀이 … 아브람에게 내렸다”(15,1)는 표현은 예언서에 자주 등장한다(1사무 15,10 2사무 7,4예레 1,2.4). 그리고 이 표현은 아브람의 이야기 전체를 통틀어 이곳에만 나온다(15,4 포함). 또한 “환시 중에”라는 표현이 덧붙여져 있는데 이 표현 역시 예언자들에게 종종 쓰였다(다니 2,19). 그래서 아브람은 “예언자”로 불리기도 한다(20,7).

 

아브람에게 내린 하느님의 말씀은 세 요소를 포함한다. 먼저 하느님께서 아브람을 안심시키는 말씀이 나온다. “두려워하지 마라”(15,1). 이것은 구원의 말씀이 시작되는 곳에 자주 나온다(이사 7,4 10,24). 아브람이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는 그가 아들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들을 약속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은 종종 등장한다(26,24). 이 형식은 신약성경에도 나온다.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마태 1,20),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루카1,13),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루카 1,30-31).

 

다음으로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아브람의 “방패”(magen)라고 소개하신다. 사실 이전 장(14장)에서 멜키체덱은 아브람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 주었다. “적들을 그대 손에(miggen) 넘겨주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14,20). 이렇게 아브람은 하느님의 보호로 다른 이들을 위한 구원의 샘이 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께서는 보상을 약속하신다. “너의 보상이(직역: 전사의 봉급이) 매우 클 것이다”(15,1 필자 직역). 14장에서 아브람은 전투에서 거둔 전리품을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소”(14,24). 그래서일까? 하느님은 그에게 큰 보상을 약속하신다.

 

이때 아브람이 하느님께 대답한다. “주 나의 하느님,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는 아무것도 없이(자식 없이) 떠나갈 터인데”(15,2ㄱ 필자 직역). 아브람은 아들 없이, 후손 없이 다른 큰 보상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묻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집안의 상속자가 다마스쿠스 사람 엘리에제르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15,2ㄴ). 그러면서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자식을 주지 않았기에 자기 종이 상속자가 되었다고 다시 한번 말한다(15,3). 아브람은 두 번 반복하면서 종이 상속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자 하느님 역시 두 번 후손을 언급하면서 아브람에게 대응하신다. “그자가 너의 상속자가 아닐 것이다. 너의 몸에서 나올 이가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15,4 필자 직역). 이런 형식은 나중에 예언자 나탄이 다윗에게 전한 하느님의 말씀을 연상시킨다.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2사무 7,12).

 

이어 하느님께서 아브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에게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의 숫자를 헤아려 보라고 말씀하신다(15,5). 아브람이 별들의 숫자를 다 헤아릴 수 없지만(불가능을),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후손을 많이 주시겠다고(가능함으로)약속하신다. 이런 비교의 말씀을 우리는 성경에서 종종 만나게 된다(22,17 26,4 신명 1,10). 아브람은 하느님께서 주시려는 보상이 셀 수 없이 많은 후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신학적 반성(6절): 하느님과 아브람 사이의 대화가 결론에 도달한다. 아브람은 하느님께 더는 반문하지 않는다. 아브람은 침묵한다. 이 침묵은 아브람이 여전히 의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아브람이 다시 하느님께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15,8). 그럼에도 창세기 저자는 아브람이 하느님을 분명히 믿었다고 말한다. “그는 주님을 믿었다”(15,6 필자 직역).

 

아브람의 믿음은 그가 하느님의 약속을 온전히 믿었고, 그분이 아브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실 능력이 있는 분임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된 믿음은 언제나 큰 위기 상황에서 확인된다.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이사 7,9). “그 크고 두려운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해는 어둠으로, 달은 피로 바뀌리라. 그때에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요엘 3,4-5).

 

이렇듯 창세기 저자는 아브람이 하느님의 약속을 정말로 믿고 받아들였다고 확언한다. 아브람이 하느님의 계획에 동의하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사람이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받아들이는 데 종종 실패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도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신명 1,32). “주님께서 카데스 바르네아에서, ‘올라가서 내가 너희에게 준 땅을 차지하여 라.’ 하시며 너희를 보내실 때에도,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의 분부를 거역하고 그분을 믿지 않았으며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신명 9,23).

 

창세기 저자는 이스라엘의 불순종 역사를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더더욱 아브람이 모든 신앙인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15,6ㄴ)고 덧붙였다. 이 믿음이 심판 날에 구원을 보장한다. 의인은 그의 행동과 하느님께 순종하는 태도를 통해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사도 바오로는 사람이 믿음으로 의화된다고(로마 4장) 강조하였는데, 아브람의 믿음은 행동을 수반하는 믿음이다. “내가 그를 선택한 것은, 그가 자기 자식들과 뒤에 올 자기 집안에 명령을 내려 그들이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여 주님의 길을 지키게 하고, 그렇게 하여 이 주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그대로 이루려고 한 것이다”(18,19). 야고보서의 저자는 행실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점을 무척이나 강조하였다(야고 2,14-26). 우리는 아브람의 믿음이 어떻게 성장하고 완성되는지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서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될 것이다.

 

* 정용진 신부는 로마 우르바노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제품을 받았다.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성서신학을 공부했고, 현재 청주교구 새터 성당에서 사목하며 교구 성서사도직을 맡고 있다.

 

[성서와함께, 2016년 11월호, 정용진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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