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신약 여행44: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사도 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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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4-17 | 조회수5,342 | 추천수0 | |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44)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사도 2,4) 성령이 함께하는 교회의 시대 열리다
- 페루지노 작 ‘그리스도의 승천’, 1510년경, 캔버스에 유채, 산세폴크로 두오모, 이탈리아.
“테오필로스님, 첫 번째 책에서 저는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처음부터 다 다루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분부를 내리시고 나서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다 다루었습니다.”(사도 1,1-2)
사도행전을 시작하는 첫 부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첫 번째 책은 루카 복음입니다. 루카의 두 번째 책인 사도행전은 승천과 그 이후의 사건들을 전합니다. 사도행전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어떤 형태로 복음을 전했는지, 초기의 신앙인들은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관한 내용입니다. 또 그 안에서 공동체들이 겪었던 어려움도 표현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는 새로운 국면에 처한 제자들과 신앙인들이 자신들의 믿음과 부활의 체험을 어떻게 삶으로 이어갔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사도들에게 가장 먼저 필요했던 것은 유다 이스카리옷의 자리를 채우는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사도 1,21-22) 베드로의 표현으로는 예수님 사건의 ‘목격 증인’이 바로 제자이고 사도입니다. 그리고 요셉과 마티아 중에서 주님의 뜻에 따라 마티아를 사도로 선택합니다.
열두 제자. 열둘이라는 숫자는 우리에게 친숙합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로 이루어졌고 열둘은 믿음을 가진 하느님의 백성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숫자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뽑으신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많은 전쟁을 치르고 유배를 경험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모든 민족이 함께 모여 산다는 것은 구원을 나타내는 표현과 같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구약에서의 하느님 백성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이지만, 신약에서의 하느님 백성은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열두 제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마티아 사도를 선출하는 것은 온전한 하느님의 백성을 구성한다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복음서에서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나타내는 용어는 ‘열둘’입니다. 이 숫자는 이미 상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마도 80년 정도부터 제자들에게 ‘사도’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도행전은 복음서에 비해 훨씬 자주 사도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 시기가 교회 공동체가 제 모습을 통해 체계적으로 발전되어가던 시기라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이러한 사도들과 초기의 신앙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만큼 중요하고 강한 체험은 바로 ‘성령 강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복음서에서 말씀하셨던 성령을 보내리라는 약속이 실현되는 사건이 바로 성령 강림입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사도 2,1-2) 유다인들의 오순절 축제 때에 일어난 것으로 소개되는 성령 강림은 새로운 시간인 성령의 시대를 시작하는 사건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령께서 내려오셨다는 것을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냅니다. 언어의 은사 역시 성령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예전의 방식으로 사람들과 함께 계시지 않습니다. 대신 성령께서 신앙인들을, 하느님 백성의 교회를 이끌어주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 강림은 서로 맞닿아 있는 사건입니다. 구약성경이 전하는 시대가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을, 복음서는 성자인 예수님과 함께 한 시간을 전한다면 이제 성령이 함께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됩니다. 교회의 시대라고도 부르는 이 시대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4월 16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성서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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