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구약성경의 물신: 바알 편의 신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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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4-20 | 조회수6,544 | 추천수0 | |
[구약성경의 물신] 바알 편의 신들
우가리트어로 쓰인 바알 신화에는 여러 조연이 등장한다. 조연을 맡은 신들을 이해하면, 주인공 바알의 성격을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런데 바알 신화는 이야기가 길고 복잡한 데다가 등장인물이 꽤 많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바알 편에 섰던 신들의 일부를, 다음 호에서 는 바알이 꺾은 신들을 살펴보자.
여전사 아나투
지난 호에서 다룬 바알의 두 아버지, 곧 엘과 다간이야말로 바알 편의 신으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알 신화의 줄거리 전개상 바알에게 가장 직접적이고 큰 도움이 된 신은 단연 아나투다.
아나투는 여전사이다. 그녀는 활과 칼을 들고 싸운다. 바알을 위해서라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과감히 맞서 승리한다. 아나투가 얼마나 용맹한 전사인지 잘 보여 주는 대목이 바알 신화에 나온다. 일부만 옮겨 본다.
“(아나투는) 바닷가에서 백성을 쳤다./ 해 뜨는 곳에서 사람들을 침묵시켰다./ 그녀 아래에 머리가 공[球]들처럼 (쌓였고),/ 그녀 주위에 손이 메뚜기 떼처럼/ 전사들의 손이 잘려 산더미처럼…/ 군인들의 피에 그녀는 두 무릎을 담갔다./ 전사들의 내장에 엉덩이를”(KTU 1.3:Ⅱ:35-40).
위 인용문에서 ‘바닷가’는 서쪽을, ‘해 뜨는 곳’은 동쪽을 의미한다. 곧 동에서 서까지, 온 세상을 피바다로 만든 것이다. 구약 성경에는 이토록 잔혹한 묘사로 주님의 승리를 노래하는 구절이 없다. 하지만 바알 신화에는 이런 내용이 곧잘 등장한다.
바알 신화의 줄거리는 신전이 없는 바알이 신전을 얻는 것이다. 신전의 건축 허가는 최고신 엘의 권한이다. 그런데 왠지 엘은 머뭇거린다. 그러자 아나투는 엘의 궁전으로 직접 찾아가 감히 최고신 엘을 겁박한다.
“나(=아나투)는 너(=엘)의 정수리를 치리라./ 나는 네 흰머리에 피가 흐르게 하리라./네 흰 수염에 창자가(흐르게) (KTU 1.3:Ⅴ:24-25).”
엘은 서슬 퍼런 아나투의 기세에서 눌린 듯, 아나투를 달래며 결국 신전 건축의 허가를 내준다. 고대 근동 학자들은 이런 묘사에, 최고신 엘의 권능이 바알로 옮겨 가는 시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한다. 이 밖에도 아나투가 활약한 것을 꼽으라면 끝이 없다.
아나투는 전쟁의 여신이고 군인의 수호자요 바알의 충실한 조력자이다. 아나투는 시리아 · 필리스티아 지역은 물론이고 고대 이집트까지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신이었음이 문헌학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 확인되었다.
구약 성경의 아나투
히브리어는 우가리트어의 주격 어미(-u)가 없어서, 우가리트어 ‘아나투’의 히브리어 이름은 ‘아낫’이 된다. 구약 성경에는 아낫과 관련된 인명과 지명이 많이 나온다.
판관기는 에훗 다음에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판관을 “아낫의 아들 삼가르”로 기록한다(판관 3,31; 5,6). 아마도 ‘아낫의 아들’이란 이름은 군인 가문의 상징적 호칭일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의 판관은 군사적 지도자를 겸하곤 했기 때문에, 판관 가운데서 이 호칭이 발견되는 것 같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지역을 차지하고 지파별로 땅을 나눌 때, 벳 아낫, 곧 ‘아낫의 집’이란 성읍은 납탈리 지파의 몫이었다(판관 1,33). 이런 지명은 본디 가나안인들이 붙였을 것 같은데, 벳 아낫에는 아나투의 신전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낫은 여성형의 이름이기에, 복수형으로 하면 ‘아나톳’이 된다. 이스라엘인들 가운데 이런 이름을 쓰는 사람이 있는데(1역대 7,8; 느헤 10,20), 아마 군대와 관련된 직업을 가졌거나 군인 가문일 가능성이 있다.
아나톳은 지명으로도 자주 나온다(에즈 2,23; 느헤 7,27). 아나톳은 레위인의 성읍이었고(여호 21,18; 1역대 6,45), 훗날 아시리아의 공격 경로였는데(이사 10,30), 이스라엘 백성은 유배에서 돌아와서도 그곳에 자리 잡고 살았다(느헤 11,32). 또한 다윗의 부하들 가운데 아나톳 출신이 제법 있다(2사무 23,27; 1열왕 2,26; 1역대 11,28; 12,3; 27,12). 아나톳에도 아낫의 신전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다.
- 바알 신화가 기록된 우가리트어 여섯 토판 가운데 첫째 토판이다. 학문적으로 'KTU 1.1’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심하게 손상되었지만, 그래도 많은 정보를 전해 주는 귀한 자료이다. 적어도 기원전 12세기 이전에 완성되었다. ⓒinscriptiFact.com
아나톳 사람 예레미야
무엇보다 아나톳은 대예언자 예레미야의 고향이었다(예레 1,1). 예레미야는 고향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는 고향 사람들을 두고 “내 목숨을 노리는 아나톳 사람들” 또는 “아나톳 사람들 가운데 아무도 살아남는 자가 없으리니”(예레 11,21-23)등의 말씀을 남겼다. 하지만 고향의 인연은 끊을 수 없는 법이다. 그는 고향 아나톳의 밭을 사야 하는 구원자의 권한을 통해 이스라엘의 구원자에 대한 가르침을 전한다(예레 32,7-9).
예레미야는 고향 사람들이 ‘하늘 여왕’에게 제물을 바친다고 고발하곤 했다. 아나톳 사람 예레미야는 구약 성경에서 하늘 여왕 숭배를 고발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하늘 여왕에게 과자를 만들어 바치려고 아이들은 나무를 주워 모으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아낙네들은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다”(예레 7,18).
그런데 ‘하늘 여왕’이란 누구일까? 고대 근동 문헌에 따르면, 아나투의 대표적인 호칭이 바로 ‘하늘의 여주인’이다. 그래서 ‘아나톳 사람 예레미야’가 고발한 하늘 여왕이 아낫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러므로 이제 바알 연구를 통해 예레미야를 더 깊이 해석할 수 있다. 아낫은 바알의 가장 큰 조력자이니, 예레미야의 고발은 궁극적으로 바알 숭배를 향한 것이다.
바알의 세 딸
우가리트 신화에 따르면, 바알은 딸을 셋 두었다. 그 이름은 ‘탈라유’(이슬비), ‘피드라유’(이슬), ‘아르차유’(안개)이다. 모두 하늘에서 내리는 촉촉한 습기를 상징한다. 지금도 중동 지역은 물이 귀하다. 건조한 기후에 내리는 이슬과 안개는 생명을 위해서 꼭 필요한 존재요, 풍요의 전조였다. 만일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으면, 그것은 재앙이었다(1열왕 17,1; 하까 1,10).
딸은 아버지와 친밀하다. 우가리트 신화에서도 세 딸은 바알과 무척 친하게 묘사된다. 바알은 세 딸의 사랑을 칭송했고, 바알 자신이 세 딸의 모습으로 현현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습기의 신인 세 딸은 바알의 하위 신이요, 바알의 능력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바알은 하늘에서 내리는 모든 습기의 아버지이기도 하니, 메마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바알은 더욱 매혹적 존재였을 것이다. 욥기의 저자는 바로 이 점을 비판하였다. 욥기의 한 구절을 보자.
“비에게 아버지가 있느냐? 또 누가 이슬방울들을 낳았느냐?”(38,28)
이슬을 히브리어로 ‘탈’이라 하는데, 이 이름은 바알의 첫째 딸인 ‘탈라유’(이슬비)를 연상시키는 이름이다. 또한 ‘이슬방울들’이라고 복수형으로 표현한 것도 눈길을 끈다. 그러므로 이 대목에서 분명 고대의 독자는 고대 우가리트의 바알 신화를 연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욥기의 저자는 분명히 말한다. 이슬(탈)은 하느님께서 내려 주시는 것이다. 이슬(탈)같은 것들을 낳은 바알 같은 존재는 없는 것이라는 비판적 성찰이 이 구절에 깃들어 있다.
다른 조연들
나머지 신들은 지면의 한계 때문에 자세히 다룰 수 없어 안타깝다. 다만 그 이름과 성격만 언급하는 선에서 지나가자. 장인(匠人)의 신 ‘코싸루와하시수’는 바알의 충실한 종이다. 그 이름은 ‘솜씨 좋고 슬기로운’이란 뜻으로 고대 근동에서 인기가 높았던 신이다.
그는 바알이 원하는 것을 뚝딱뚝딱 잘 만들어 낸다. 결국 코싸루와하시수는 바알 신전을 지었다. ‘구파누와우가루’는 바알의 충실한 전령이다. ‘포도 덩굴과 들’이란 뜻의 이름에서 풍요의 하위 신으로 볼 수 있다. 바알 신화에는 이 밖에도 여러 하위 신들이 등장하여 바알을 돕는다.
바알의 권능과 매력
바알 신화를 들여다볼수록 주인공 바알을 매혹적인 모습으로 그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바알은 풍요와 권력의 아버지들을 두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용맹하고 강한 여전사가 바알을 충실히 돕는다. 바알은 아름다운 습기의 딸을 셋이나 두었다. 가장 솜씨 좋고 슬기로운 신은 바알이 원하는 것을 척척 만들어 낸다. 결국 바알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셈이다. 이런 바알의 모습에 일부 이스라엘 사람들은 마음을 뺏겼을 것이다.
바알과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다르다. 바알은 마치 훈장과 화려한 장식을 주렁주렁 달아 놓은 부자요 군주의 모습처럼 묘사된다. 이에 비해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소박하고 단출해 보이신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고통받는 종들의 편이 되어 주셔서 화려한 군주(파라오)에 맞선 분이시다.
바알은 흥미롭고 매혹적인 조연에 둘러싸인 주인공이기에, 관객은 그저 이야기를 즐기고 빠져들면 다 될 것 같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홀로 당신의 가르침을 들려주시면서 우리에게 근본적인 도전과 회개를 요구하시는 메시지를 전하신다(계속).
* 주원준 토마스 아퀴나스 -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고대 근동과 구약 성경을 연구하는 평신도 신학자이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이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 위원이다. 저서로 「구약성경과 신들」과 「신명기 주해」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7년 4월호, 주원준 토마스 아퀴나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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