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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예수님 이야기11: 예수님의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루카 2,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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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5-01 조회수8,137 추천수0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 루카복음 중심으로] (11) 예수님의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루카 2,40-52)


지혜가 충만해진 소년, 아버지의 집을 찾다

 

 

- 나자렛 전경. 예수님 시대에는 작은 산골 동네였으나 오늘날은 인구 7만이 넘는 도시이자 이스라엘 내 아랍인들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가운데 원뿔 모양의 건물이 나자렛의 대표적 성지인 주님 탄생 예고 대성당이다.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제공.

 

 

네 복음서 가운에서 루카복음만이 예수님의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유년 시절에 관한 내용은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2,40)는 짧은 문장이 전부입니다. 소년 시절과 관련, 루카는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한 일화를 소개한 후(2,41-51),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2,52)는 문장으로 마무리합니다.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해 갔다’는 표현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사람이 되신 예수님이 여느 인간과 마찬가지로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 혹은 영적으로 성장해 갔음을 의미합니다. 루카는 그러나 요한 세례자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에 관한 묘사에서는 언급하지 않은 ‘지혜의 충만’과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를 언급합니다. 요한 세례자와 예수님은 다릅니다. 어린 시절부터 차이가 납니다.

 

이제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갔다가 그만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사흘 만에 찾았다는 소년 시절의 일화에 대해 살펴봅시다. 

 

당시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차례, 파스카 축제(무교절) 때와 수확절(주간절, 오순절) 그리고 추수절(초막절) 때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순례해야 했습니다.(탈출 23,14-17; 신명16,16 참조) 하지만 거리가 멀거나 형편상 순례가 힘들 경우에는 한 번만 순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열세 살 이상의 남자는 모두 이를 지켜야 했습니다. 

 

나자렛에서 예루살렘까지 100㎞에 이르기에, 해마다 세 차례씩 예루살렘을 순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선지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에 예루살렘을 순례하곤 했다고 루카는 전합니다.(2,41) 예수님이 열두 살이 되던 해 파스카 축제 때가 되자 부모는 이번에는 아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순례합니다. 열두 살이면 아직 예루살렘을 순례할 의무가 없을 때입니다. 그렇지만 함께한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신앙 교육을 위해 데려갔을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가고 싶어했다고도 추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12라는 수가 완전함 또는 충만함을 나타낸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소년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할 만큼 성숙했다고도 풀이할 수 있겠지요.

 

축제 기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달이 났습니다. 소년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것을 모른 채 부모가 하룻길을 간 것입니다. 친척이나 친지들 사이를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자 부모는 부랴부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사흘이나 아들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함께 있는 아들을 발견합니다. 열두 살 소년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고 답변하기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했다”(2,47)고 루카는 기록합니다. 

 

하지만 부모에게는 그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흘이나 헤매다가 찾았으니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조심스럽게 꾸짖습니다.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그런데 아들 예수님의 답변이 기가 찹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2,48-49)

 

똑같이 ‘아버지’를 이야기했지만, 마리아는 요셉을 아버지로 지칭한 반면에, 아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주인이신 아버지 곧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열두 살 된 소년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말하면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셈입니다. 이 말은 루카복음에서 처음 나오는 예수님 말씀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라면서 지혜가 충만해진 예수님은 이제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자각하기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와 요셉은 아들의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합니다.(2,50)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이 부모와 함께 나자렛에 돌아와 부모에게 순종하며 지냈고 어머니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했다는 것으로 이 일화를 마무리합니다.(2,51)

 

 

생각해 봅시다

 

첫째, 아버지의 집. 루카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첫 말씀은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2,49)입니다. 이 말씀에서 핵심은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는 대목입니다. 성전은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곳입니다. 열두 살 예수님은 자신이 하느님 아버지께서 계시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대로 실행하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버지와 함께한다는 것이고, 이는 아버지와 하나가 되고 아버지의 뜻에 일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 또한 늘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도록 우리 마음에 자리를 내드려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에 우리 자신을 합치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 보이셨지만, 다시 나자렛으로 내려와 부모에게 순종하며 지내셨습니다. 

 

순종은 단지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듣고 그 뜻을 헤아리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알아둡시다 : 이스라엘의 3대 축제 

 

당시 이스라엘이 연중 크게 지낸 세 축제는 무교절, 수확절, 추수절입니다.(탈출 23,14-17; 레위 23,4-22; 신명 16,1-17 참조). 

 

무교절은 누룩 없는 빵을 먹는 축제입니다. 이 축제는 이스라엘이 한 해의 첫째 달로 지내는 아빕달(바빌론 식으로는 니산달이라고 부르는데, 지금의 3~4월에 걸치는 달) 열나흗날 저녁부터 스무하룻날 저녁까지 누룩 없는 빵을 먹습니다. 그런데 이 무교절은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파스카 축제와 결부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탈출 때에 이 무교절 첫날에 주님의 지시에 따라 1년 된 흠 없는 짐승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르고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을 함께 먹었습니다. 그때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 전역을 다니며 이스라엘 백성의 집을 건너뛰고 이집트의 모든 맏배를 죽였습니다. 이에 이집트 왕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도록 허락하고,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 약속된 땅으로 향하지요. 이를 기념하는 것이 파스카 축제입니다. 

 

수확절은 ‘주간절’ 또는 ‘오순절’이라고도 하는데, 무교절이 거행되는 기간의 안식일이나 파스카 축제가 거행되는 그날로부터 50일을 헤아려 새로 수확한 햇곡식을 바치는 축제입니다. 

 

추수절은 연말(가을)에 추수한 결실을 거둬들이면서 일주일간 지내는 축제로 나중에는 초막절이라고도 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4월 30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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