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묵상]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탈출 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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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명현숙 | 작성일2007-07-09 | 조회수931 | 추천수5 | 반대(0) |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탈출 4,2)
주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지팡이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을 땅에 던져라." 모세가 지팡이를 땅에 던지니, 뱀이 되었다.(탈출 4,2-3)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집트에서 억압당하고 고통 받는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건져내라’는 사명을 주셨다. 모세는 자신도 없고 걱정도 많았다.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고, 하느님을 만났다는 것을 헛소리라고 할까봐 전전긍긍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당장에 증거를 나타내 보이셨다. 오랫동안 모세의 손에 들려있었던 지팡이를 뱀으로 변하게 하셨다. 왜 하필 지팡이를 택하셨을까? 모세가 손에 들고 다니던 지팡이는 모세의 생계를 위해 매우 소중한 것이며 모세의 신분을 나타내는 척도가 되는 것이었다. 그것을 인간이 죄를 짓도록 유혹하였으며 가나안 사람들이 우상으로 숭배하는 뱀으로 변하게 하신다. 인간에게 꼭 필요한 듯이 보이며 중요한 것이라 여기던 것은 한순간에 가장 혐오스런 것으로 변화될 수도 있고, 또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가지고도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시기 위한 도구로 쓰이도록 하신다. ‘모세의 지팡이’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러 이집트로 들어갈 때에는 ‘하느님의 지팡이’(탈출 4,20)가 된다.
오늘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느님을 증거해야 하는 나에게도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하고 물으시니, 나는 무엇으로 하느님의 권능을 드러낼 것인가 고민해 본다. 나이가 들면서 다리가 약해지고 자꾸 다치게 되어 어렸을 때도 짚지 않았던 목발을 사용해야만 했다. 그러자 행동반경이 줄어들고 사람들도 덜 만나고, 의기소침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할 무렵의 일이 떠올랐다. 신부님께서 설명을 해 주셔도 잘 이해가 되지 않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성경구절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는데 제자들이 예수님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라고 하셨다(요한 9,1-3).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접을 받으며 고통 받는 사람들과, 마치 죄인 취급을 당하는 그들의 부모들을 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더구나 장애당사자인 나는 더욱 납득하기 어려웠다. 하필 나에게는 이런 역할을 주셨을까 원망하면서, ‘장애인이라서 하느님께 열심히 매달린다’는 편견의 소리들이 듣기 싫어서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려 했었다. 딸의 장애가 치유되면 하느님을 믿겠다던 아버지께서는 결국 하느님을 모르는 채 돌아가셨으나, 어린 시절 병원치료를 받으면서 나는 이미 충분한 재활치료를 받았다. 그곳에는 나보다 더욱 심한 장애를 갖고 고생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심지어는 부모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에 비하면 내 장애는 가벼운 것이었고,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으나 부모와 가족들이 있음으로 나는 행복했었다. 덕분에 육체적으로는 힘들어도 좌절하지 않으며 씩씩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덤으로 얻었다. 장애로 인해 자유를 잃었다고 원망했었으나 잘 생각해보니 하고 싶던 일들은 그런대로 다 할 수 있었다. 오히려 쓸데없는 일에 휩쓸리지 않아서 죄에 빠질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 것 같다.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학교에 다녔고, 직장생활도 하였다. 지난 해에는 오랫동안 염원했던 해외 성지순례(이집트, 이스라엘, 로마)도 다녀왔으며 교황님을 알현하는 영광도 누렸다.
하느님께서는 내 생각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시지는 않으나, 당신의 뜻대로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 한때는 내 역할에 대해 만족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나로 인하여 하느님을 욕되게 하진 않았는지,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하느님의 권능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살고 있는지 가끔씩 숙고하게 된다. 종종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묻고 계시기 때문이다. 내게 주시는 온갖 것들에 대해 인간적인 기준으로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 않으며, 그 어떤 것으로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충분한 도구로 쓰이기를 소망한다. 성체성사를 통하여, 성경 말씀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나를 지극히 사랑하고 계심을 깨달아 가는 기쁨 그것이 바로 행복의 원천이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2코린 12,9)
+ PS. 이 글은 예수회 후원회의 소식지 "이냐시오의 벗들"(2007년 1월)에 실렸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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