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열두 소 예언서와 호세아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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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5-09 | 조회수7,429 | 추천수0 | |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열두 소 예언서와 호세아서
열두 소 예언서란?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제키엘서 등 분량이 많은 예언서에 비해 예언서 길이가 짧은 열두 예언서들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곧 이들 열두 소 예언서는 예언서 각권의 내용, 예언자의 인품, 후대에 끼친 영향 등과는 상관이 없이 예언서 분량이 적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호세아서는?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는 북부 이스라엘 왕국 출신 예언자입니다. 북부 왕국 출신 저술 예언자는 호세아뿐입니다. 기원전 750년경에 아모스가 예언자로 발돋움 하였으며, 불과 몇 년 뒤에 호세아가 예언자로 등장합니다. 호세아가 어떤 사람인지 그의 사생활에 대한 구체적 사료는 없습니다. 그의 혼인과 관련된 가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 역시 상징적 의미로 말씀 선포의 일부일 뿐입니다.
시대적 배경?
예언자 호세아의 시대에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본 고대 근동지방의 국제정세는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가, 남쪽으로는 이집트가 강대국으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들 두 강대국이 자신의 세력을 키우려 할 때는 어김없이 이스라엘을 거쳐 가야 했습니다. 서쪽의 중국과 동쪽의 일본 사이에 끼어있어 이들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기 일쑤인 한국과 흡사하다고 보면 됩니다. 북쪽에 있는 시리아도 때로는 이스라엘에게는 위협이 되었습니다.
북부 이스라엘 왕국과 남부 유다 왕국은?
이들 형제 왕국 가운데 흔히 북부 왕국이 더 큰 세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한 쪽이 다른 왕국을 쳐들어가 삼켜버리려 하는 일 없이 기본적으로는 공존 공생의 관계 속에 지냅니다.
한 번의 예외는?
유다 임금 아마츠야가 선조들의 원수를 갚겠다고 북부 이스라엘 왕국을 침공하는 사건입니다. “그 무렵에 아마츠야가 예후의 손자이며 여호아하즈의 아들인, 이스라엘 임금 여호아스에게 사신들을 보내어 이런 말을 전하였다. ‘자, 우리 한번 겨루어보자!’”(2열왕 14,8)
그러나 “유다군은 이스라엘군에게 패배하여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도망쳤다.”(14,12) 그리하여 이스라엘 임금 여호아스는 예루살렘까지 쳐올라가 “주님의 집과 왕궁 창고에 있는 금과 은과 기물을 모조리 빼앗고, 인질까지 잡아 사마리아로 돌아갔다.”(14,14; 2역대 25,17-24 참조)
지혜로운 지도자들의 등장?
북부에도 남부에도 유능한 통치자들이 나타나 수십 년 동안 남북은 태평성대를 누립니다. 북 왕국에는 여로보암2세(기원전 787-747)가, 남 왕국에는 우찌야(기원전 781-740)가 등극하여 남북왕조는 서로 협력하면서 한동안 발전의 꽃을 피웁니다.
호세아의 시대에는?
다윗의 혈통으로 내려오는 남부 유다 왕국은 중단 없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북부 왕국은 잦은 정변으로 불안한 시대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쿠데타로 시작된 예후 왕조는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예로보암 이세가 세력을 확장하던 시기에 예언자 호세아가 활동 무대에 오릅니다. “(예로보암이)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바다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영토를 되찾았다.”(2열왕 14,25)
정치적 안정은?
임금이 나라를 잘 다스리면 나라는 안정되고 경제적 풍요가 뒤따릅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지정학적으로 교통의 중심에 서있습니다. 지중해 연안에 여러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동서를 오가며 무역을 했기 때문입니다.
본디 부족사회였던 이스라엘은 혈연으로 또 하느님과 맺은 계약 사상으로 결합되어 서로 도우며 평등하게 살아가던 민족이었습니다. 솔로몬 이래로 왕정이 본 궤도에 오른 지 200여 년이 지난 다음 호세아가 등장합니다.
호세아 시대의 사회상은?
절대 군주 제도가 이어지면서 왕족이나 귀족 같은 상류 계층이 생겨나고 상업과 도시의 발달로 빈부 격차가 커지게 됩니다. 상류층과 가진 자들이 하류층이나 없는 이들을 억압하고 착취하여 사회의 부정, 부조리, 부패가 심해집니다. 없는 자의 피땀으로 호화로운 삶을 향유하는 이들이 생겨납니다. 물질중심주의 곧 황금만능주의가 벌써 그때에도 사방에 퍼집니다.
예로보암 1세는?
솔로몬이 죽고 난 후 반란을 일으켜 북부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한 예로보암은 자기네 사람들이 남부 왕국 중심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떠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북쪽에 있는 단과 유다 왕국 부근에 있는 베델을 성소로 정하여 그 두 곳에 야훼 하느님 형상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제물을 바치도록 합니다. “예로보암은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쩌면 나라가 다윗 집안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주님의 집에 희생 제물을 바치러 올라갔다가, 자기들의 주군인 유다 임금 르하브암에게 마음이 돌아가면, 나를 죽이고 유다 임금 르하브암에게 돌아갈 것이다.’”(1열왕 12,26-27) 궁리 끝에 예로보암은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하나는 베텔에 놓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다.”(12,29)
예루살렘 성전의 절대적 의미가?
당시에는 아직 확립되지 않았습니다. 기원전 621년쯤 남부 유다 임금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단행하면서 지방 성소들을 없애고 오로지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하느님을 섬기도록 합니다(참조: 2열왕 23,4-20). 이렇게 볼 때 호세아 시대에는 단이나 베텔에 성소가 있다는 데 대하여 아직 예언자들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습니다. 문제가 되는 바는 예로보암이 단과 베텔에 하느님 모습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에게 경배하도록 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죄가 되었다. 백성은 금송아지 앞에서 예배하러 베텔과 단까지 갔다.”(1열왕 12,30)
가나안 토속 종교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지 몇 백 년이 흘러갔지만 아직도 바알 신앙을 비롯한 가나안 종교가 야훼 신앙을 위협합니다(참조: 1열왕 18-19장; 2열왕 10,18-27) “나는 바알들의 축제일 때문에 그 여자를 벌하리라. 그 여자는 바알들에게 분향하고 귀걸이와 목걸이로 단장한 채 애인들을 쫓아갔다. 그러면서 나를 잊어버렸다. 주님의 말씀이다.”(호세 2,15; 참조 4,13; 13,1-2). 풍요와 다산을 추구하는 가나안 사람들을 본 따서 성소에 창녀들을 두고 야훼신앙과 성을 뒤섞어버리기까지 합니다. “남자들이 창녀들과 함께 빗나가고 신전 창녀들과 함께 희생 제물을 바치기 때문이다.”(4,14)
호세아의 하느님 말씀 선포는?
북부 이스라엘 왕국은 30여년의 짧은 전성기를 뒤로한 채, 기원전 721년 사르곤 2세가 사마리아를 함락함으로써 역사의 무대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바로 그 즈음에 호세아가 몰락하는 자신의 동포들에게 영원하신 분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호세아의 아내는?
창녀로 나옵니다. “너는 가서 창녀와 창녀의 자식들을 맞아들여라. 이 나라가 주님에게 등을 돌리고 마구 창녀 짓을 하기 때문이다. 호세아는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메르를 아내로 맞아들였다.”(호세 1,2-3ㄱ) 여기서 ‘창녀 짓’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하느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김을 뜻합니다. 곧 호세아는 주님을, 고메르는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을 뜻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5월호,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용현5동성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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