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묵상]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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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명현숙 | 작성일2008-10-16 | 조회수758 | 추천수3 | 반대(0) |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 37)
대학교 3학년 때 강원도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소풍이나 수학여행에 별로 가본 적이 없는 나는 으례히 못 가는 것이려니 했다.
그런데 과의 여학생 대표를 맡고 있었으니 행사를 준비해 놓고 빠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복학생 형 두 분이 우리 집에 와서 엄마를 설득시켰다. 책임질 테니 나를 수학여행에 보내 달라고..... 이건 아무래도 주객이 전도 된 것 같다.
우리 엄마가 형들에게 얘좀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건데, 우리 엄마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될까봐 내가 수학여행에 가는 것을 반대하셨다. 형들은 준비는 다 해 주고 못가는 나를 위해서 우리 집에 와서 우리 엄마를 잘 설득했다. 덕분에 나는 수학여행다운 수학여행을 처음으로 가게 되었다.
당시 지도교수님은 여자 교수님이셨다. "잘 되었구나. 나랑 같이 산 아래에 있으면 되겠다." 말씀은 감사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첫날 비룡폭포에 갔다. 2km 남짓 내가 꽤나 잘 걸어갔다. 친구들이 놀랄 정도로....... 가는 길에 자갈길, 계곡, 비탈길, 등등 내가 걷기에 불편한 곳도 있었지만 경사가 완만한 길이어서 다행이었다.
한 친구에게 손 좀 잡아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땀 나서 싫어." 하고 한마디로 거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CCC에 아주 열심인 개신교 신자였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단호히 거절을 할 수 있을까?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나는 무척 슬펐다.
다음 날에는 금강굴에 가는데 500m 라고 해서 그까짓거 했는데 아니 이게 웬일이람,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라니..... 나는 이제 그만 올라가겠다고 했더니 형들이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면 안된다며 업어서라도 데리고 가겠단다.
그래서 업혀서 갔는데 조금 가다가 다른 형이 와서 너무 힘이 들테니 교대해 준다고 해서 여럿이 나를 기어이 금강굴까지 데려다 주었다.
무안해 하는 나에게 누구의 등이 가장 편했냐고 물어보며 무안하고 어색한 마음을 풀어주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복음을 읽을 때마다 그때의 일들이 생각났다. 오빠 친구들, 우리과 형들, 손바닥에 땀이 난다는 친구, 여자 교수님, 그리고 우리 엄마.
엄마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의식했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는 것을 제일 질색하셨다. 그래서 언제나 어디를 가는 것에는 반대였고 나는 그런 엄마를 피해서 몰래 몰래 친구들과 돌아다녔다.
나는 오랫동안 그 친구를 미워했었다. 그러다가 그 친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되었다. 서울에서 내려와 공부하던 그 친구는 약간 뚱뚱했었다. 산에는 가본 적이 있었을까? 자기도 걷기 힘든데 내가 손까지 잡아달라고 하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나도 힘들어서 못 도와 주어 미안해"라고 했으면 나한테 상처는 주지 않았을 것을......
내가 신자가 되기 전에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저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믿는 사람으로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되었고 그러고 나서 나는 그 친구를 진심으로 용서하였다.
나를 도와준 형들의 성실한 봉사는 참으로 고마웠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으며 때로 나를 고무시켜 그들처럼 행하도록 자극했다. 교수님을 통하여 좋은 마음으로 하는 말이 진정으로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면 별로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마음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 모두는 소중한 나의 이웃이다. 진정한 마음으로 나를 대해 주었던 분들의 사랑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
복음은 듣고 아는 데서 그쳐서는 안된다. 아는 것을 그대로 살아가야 함을 마음 깊이 새겨본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루카 1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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